이용섭 광주광역시 시장이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친애하는 이용섭 시장님께.

아시다시피 '광주형 일자리'와 관련해 광주시와 현대자동차의 협상이 난항에 빠졌습니다. 4일 '광주형 일자리' 협상과 관련해 전권을 위임 받았다던 광주시가 현대차와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밝혔을 때만 해도 '광주형 일자리'는 오랜 부침을 끝내고 마침표를 찍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현대차는 다른 말을 했습니다. 현대차 관계자에 문의하니 "종전과 비교해 진일보한 이야기가 오간 것이지 광주형 일자리에 잠정 합의한 건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한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라는 우려는 협상 결렬로 결론 났습니다.

5일 광주시청에서 열린 노사민정협의회는 우려를 현실화했습니다. 4일 광주시와 현대차가 잠정 합의한 협정서엔 '노자협의회 결정사항의 유효기간은 조기 경영안정 및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해 누적 생산 목표대수 35만대 달성까지로 한다'는 조항이 포함됐습니다. 신설법인 공장의 현대차 위탁 물량이 연 7만 대 규모임을 감안할 때 5년 동안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열 수 없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앞서 5월 잠정 합의안에 담긴 '노사협의회에서 결정한 사항은 최소 5년간 유효성이 보장되도록 한다'는 내용이 노동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온 바 있는 만큼 노동계는 이 잠정 합의안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노동계는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막는다'는 이유로 잠정 합의안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고, 다급해진 노사민정협의회는 3가지 수정안을 현대차에 제안했습니다. 현대차 역시 수정안 모두에 '노(NO)'라는 답변을 내놨죠. 그렇게 문재인 대통령 참석까지 예정됐던 광주형 일자리 조인식은 수포로 돌아갔고, 광주형 일자리 협상은 동력을 잃고 지금도 표류 중입니다.

사실 잠정 합의안 가결에 걸림돌이 됐던 임금·단체협약 협상 5년 유예 논란의 '35만대 문구'는 사실상 법적 효력이 없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입니다. 현행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참법)은 노사협의회를 3개월마다 열도록 하고 있고, 노동조합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역시 단체협역 협상 개최 시한을 2년이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합의문 만을 근거로 실정법을 위반하면서까지 5년을 버틸 수 있을까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단정해 말할 순 없지만 어렵지 않을까요. 외려 현대차가 ''35만대 달성'에 대한 보장 없이는 협상은 없다'고 나서야 하는 게 아닐까요. 물론 이 경우라도 '단체 교섭권을 침해한다'는 노조의 반대는 막을 수 없겠죠. 

'광주형 일자리'의 시동이 꺼진 후 숱한 뒷말이 새어 나오고 있습니다. '10조 땅도 사는 현대차가 530억 투자는 못하냐'부터 '역시 귀족노조'라는 말까지. 현대차와 현대차 노조 그리고 광주지역 노조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현대차는 단순 투자자고, 현대차 노조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광주형 일자리' 사업의 종속변수 아닌가요. 광주형 일자리의 주체이자 '상수'는 엄연히 광주시입니다. 그런데 전권을 위임 받았다며 투자 상대방과 맺은 잠정 합의안을 만 24시간이 안 돼 뒤집는 건 '양치기 소년'에 가까운 행보 아닌가요. 신뢰가 없는 협상의 끝은 항상 정해져 있습니다. '결렬'.

늦게나마 시장님이 직접 나선 건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9일 열린 긴급기자회견에서 시장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협상 당사자 간의 신뢰회복과 투자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시장인 제가 직접 나서겠다"며 "투자협상팀의 단장을 맡아 현대차-노동계 및 각계각층의 뜻을 모아 최적의 투자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말이죠. 그리고 시장님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현대차와 노동계 간 입장 차가 워낙 커 이를 조정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혼선과 오해도 있었다"며 "투자협상팀이 이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KDB자동차는 어떤지요

시장님의 진의를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의 협상일정조차 잡지 못한 현 상황에서 얼마나 유의미한 결론을 이끌어낼지 우려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안드립니다. 차라리 'KDB 산업은행 자동차'는 어떠신지요.

잘 아시겠지만 광주형 일자리를 위한 법인 설립에 모두 7000억 원의 자금이 필요합니다. 이중 4200억 원은 은행 대출이고 나머지 2800억 원은 자본 투자로 구성하죠. 자본 투자금 2800억 원 중 광주시가 21%인 590억 원을 현대차가 19%인 530억 원을 투자하고, 협력업체들이 20%인 560억 원을 책임지는 구조죠. 여기에 나머지 40%인 1120억 원은 재무적 투자(FI)로 채워지죠.

이용섭 광주시장(왼쪽)이 하부영 현대차 노조위원장으로부터 광주형 일자리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건네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 재무적 투자 중 15%인 420억 원을 KDB 산업은행이 분담하죠. 현행 은행법상 개별 기업에 할 수 있는 재무적 투자 한도가 15%임을 감안할 때 산업은행은 한도까지 채워 투자한 셈이죠. 여기에 광주시는 4200억 원에 달하는 은행 대출 역시 산업은행에 요청했고요. 지방정부인 광주시와 중앙정부격인 국책은행 산업은행의 투자분은 무려 5210억 원입니다. 법인 설립 자금 7000억 원의 무려 74.4%에 달합니다. 중앙과 지방정부가 재원의 3/4를 출자한다면 사실상 공공기관과 다름없죠.

'광주형 일자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볼 때 민간 투자를 이끌어내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단연 신뢰입니다. 사실상 공공기관과 다름 없는 '광주형 일자리'를 살리는 길은 신뢰가 무너진 광주시가 아닌 사업주체를 산업은행으로 바꾸는 것도 선택 가능한 대안입니다. 은행법이 재무적 투자 한도를 15%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또한 돌파구가 있습니다. 금융위원회가 의결하면 됩니다. 금융위가 의결하면 최대 40%까지 지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광주형 일자리'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만큼 금융위 의결도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죠. 산업은행이 재무적 투자 비율을 40%까지 늘린다면 총 사업비 7000억 원 중 지방과 중앙정부가 분담하는 자금은 모두 5910억 원으로 전체 자금의 84.4%를 차지하게 됩니다.

'광주형 일자리'보다 'KDB 산업은행 자동차'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지만, 어찌됐건 노동자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투자자들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업주체를 원하고 있습니다. 광주시민과 국가 경제를 위한 시장님의 혜안과 결단을 기대합니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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