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강남구청 13일 0시부터 출입 통제·입주민 퇴거 조치
가로·세로 90㎝사각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원형기둥으로 시공돼
주차장 입구 높이도 법에 저촉돼...감리·행정기관 승인 의심돼
강남구청 건물소유주·임차인 회의 장소 마련했지만 전달 못받았다는 임차인도

[한스경제=박재형 기자]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대종빌딩’에서 ‘붕괴 위험’이 발견돼 출입제한 및 건물 입주민들에 대한 퇴거 조치가 내려졌다. 강남구청은 12일 붕괴 위험에 노출된 서울 삼성동 소재 대종빌딩을 ‘제3종시설물’로 지정하고 13일 0시부터 출입을 제한했다. 

13일 0시부터 서울 삼성동 소재 대종빌딩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다./사진=박재형 기자

테헤란로에 멀쩡하게 서있던 빌딩이 순식간에 ‘위험빌딩’으로 전락한 것이다. 1991년 준공된 대종빌딩은 지하 7층, 지상 15층 규모로 사무실과 상가 80여개가 입주했던 건물이다.

지난 6월 용산 국제빌딩 주변 제5구역 상가, 7월 라오스 댐, 9월 상도동 유치원 건물 붕괴 등에 이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건물 붕괴 위험’이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이에 기자가 직접 대종빌딩을 찾아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시공부터 감리, 행정기관까지 허술한 업무처리 꼬리 물어

우선 대종빌딩은 기둥이 설계도면과 달리 시공된 것으로 밝혀졌다. 설계도면에는 애초에 가로·세로 90㎝사각 철근 콘크리트 기둥으로 설계됐지만 실제로는 지름 90㎝ 원형기둥으로 시공된 것이다. 사각형태의 기둥이 도면과 달리 원형으로 시공되면서 단면적이 줄어 힘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강남구청 관계자도 12일 현장 브리핑을 통해 “사각형태 기둥이 원형으로 시공되면서 내력 자체가 20% 정도 부족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당시 지어진 건물의 내력 자체가 80% 성능으로 지어졌는데 기둥을 까서보니 철근 이음새나 시멘트 피복 상태 등도 부실했고 이런 상태에서 점점 힘을 받다보니 현재 내력이 50% 아래로 내려앉았다”고 설명했다.

13일 대종빌딩 지하 주차장의 모습. 한쪽은 사각기둥이, 다른 한쪽에는 원형 기둥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사진=박재형 기자.

이에 건물 준공을 허가한 행정기관과 공사를 관리·감독했던 감리업체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관계 기관과 기업의 허술한 일처리로 인해 사태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현행 ‘주차장법 시행규칙’ 제6조 제1항 제5호 가목에 따르면 지하식 노외주차장의 차로 높이는 주차바닥면으로부터 2.3m 이상이어야 한다. 이 규칙은 1979년 주차장법이 만들어진 이후부터 계속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확인한 대종빌딩 주차장 입구 높이는 2m에 불과했다. 주차장 입구 높이가 법령보다 낮다는 것이 안전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가 될 수 는 없지만 건물이 지어질 당시 이를 관리·감독해야할 감리업체와 건물 사용승인을 내린 행정기관의 업무가 허술했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

대종빌딩 지하주차장 입구. 관련 법령에 따라 주차장 입구의 최소 높이는 2.3m지만 대종빌딩 지하주차장은 2m다./사진=박재형 기자.

기자가 직접 둘러본 지하 주차장에는 곳곳에 이상 징후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 이를 본 한 건축업계 관계자는 “자세히 확인해봐야겠지만 육안으로 보기에도 구조체에 문제가 있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몇 군데는 구조체 균열을 통해 물이나 습기가 들어가 철근이 부식되고 부피가 늘어나면서 피복 콘크리트가 떨어져 발생한 문제들이다”고 설명했다. 공사 당시 보호 콘크리트 피복 두께가 적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종빌딩 지하주차장 곳곳에 나타난 문제들. 한 건축업체 관계자는 보호 콘크리트 피복 두께가 적정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했다./사진=박재형 기자.

이어 그는 “공사를 진행하면 설계부터 감리업체부터 행정기관까지 이를 관리·감독하고 승인하는 절차가 있다”며 “시공사와 감리업체는 견제 관계라고 할 수 있어 일반적으로는 감리자가 철저하게 점검을 하기에 대종빌딩과 같은 문제가 흔히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현재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종빌딩 주차장 문제도 허가가 불가한 부분을 눈감고 넘어갔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안전점검도 미흡... 입주민이 문제 밝히기 전까지 몰라

대종빌딩은 지어진지 27년이 지난 건물이다. 붕괴가 시작될 만큼 오래된 건물은 아니지만 안전점검을 통한 사전대책이 미흡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었다. 이날 오전 대종빌딩 입구에서 만난 무역회사 사무실을 임차했던 A씨는 “그동안 관리비 명목으로 매달 걷어간 돈이 얼만데 사태가 이렇게 커지자 갑자기 나가라고 하는 것은 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대종빌딩은 지하 7층 지상 15층인 이 건물은 15층 이하 소규모 시설물에 해당해 그동안 법적 안전관리대상(최소 16층 이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대종빌딩은 지난 2월 자체 육안 안전점검 결과를 강남구청에 제출했고 3월 강남구청은 육안점검 결과 특이사항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종빌딩은 안전 점검 결과로 ‘양호’ 수준인 B등급을 받았다. 이어 6월에 제출된 보고서에도 강남구청은 ‘문제없음’이란 결론을 내렸다.

13일 대종빌딩에 붙어 있는 안내문들./사진=박재형 기자

결국 대종빌딩의 균열 문제는 건물 입주민에 의해 직접 밝혀졌다. 어렵사리 통화가 연결된 한 대종빌딩 관계자는 “빌딩 2층에 입주해 있던 삼성전자가 나가며 기둥 인테리어를 원복하는 과정에서 균열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며 “만약 삼성전자가 늦게 나갔거나 나가지 않았더라면 큰사고가 발생 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강남구청은 지난달 26일 대종빌딩 균열이 발생했다는 최초 제보를 접수했지만 담당 공무원은 일반적인 안내만 했고 지난 8일 균열이 심각하다는 신고를 재차 받고서야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임차인들에게 피해 전가됐지만 행정기관 미숙은 계속 이어져

시공부터 감리, 행정, 안전관리까지 더해져 발생한 문제는 오랜시간 감추고 있던 모습을 결국 드러내고야 말았다. 이렇게 커져버린 파장은 얼마 전까지 건물에 입주하고 있던 임차인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전가했다.

대종빌딩에 사무실을 임차했던 건설업체 대표 B씨는 “건설사 특성상 결산, 자본, 실적 등 연말에 처리해야 될 업무들이 많다”며 “당장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회사에도 치명적일 수 있는데 갑자기 퇴거명령이 떨어지니 관련 서류 일부만 겨우 챙겨 나온 상황이다”고 밝혔다.

B씨를 비롯해 대종빌딩에 사무실을 임차하고 있는 임차인들은 하루 빨리 사무실 문제가 해결 될 수 있기를 원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강남구청은 대종빌딩 사용 가능 여부를 판단할 ‘정밀안전진단’에 2개월가량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정밀안전진단에는 건물주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대종빌딩은 건물주가 110여명에 달해 동의 절차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에 입주자들의 불편도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강남구청은 13일 오후 2시 대종빌딩 건물소유주들과 임차인들을 위해 각각 삼성2동 주민센터와 대치4동 주민센터에 관련 논의를 할 수 있는 회의실을 마련했다고 했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 임차인은 이에 대해 아무런 공지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사진=박재형 기자.

행정기관의 업무 처리 미숙 문제도 있었다. 이날 오전 강남구청 관계자는 브리핑을 통해 건물 소유주들과 임차인들을 위해 삼성2동 주민센터와 대치4동 주민센터에 회의 공간을 마련하고 대책을 논의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방문한 두 곳의 회의장에는 강남구청이 발표한 회의시간이 지나도 건물 소유주와 임차인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B씨는 “회의와 관련해 아무런 공지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강남구청이 회의실을 제공한다는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임차인들의 관련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박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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