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서울대 화공과 70학번 동기...함께 운동할 정도로 두터운 친분
각각 롯데케미칼, LG화학 입사 후 회사·화학업계 발전 기여
1957년생 후배에게 자리 물려줘

[한스경제=이성노 기자] 허수영 롯데그룹 화학BU장(부회장)과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이 나란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국내 화학업계 1, 2위를 다투는 롯데케미칼과 LG화학 수장을 지내며 펼쳤던 선의의 경쟁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마무리하게 됐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허 부회장은 19일 단행된 롯데그룹 정기임원인사를 통해 화학BU장을 김교현 롯데케미칼 대표 사장에게 물려줬다. 

이로써 국내 화학업계 1세대 경영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허 회장의 '영원한 맞수'이자 '48년 지기'인 박 부회장 역시 지난달 42년간의 기업활동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결정한 바 있다.  

허 부회장과 박 부회장은 대학 동기 동창이라는 것을 비롯해 ▲회사 입사 나이 ▲40년 넘게 화학업에만 종사해 소속 회사는 물론 국내 석유화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 ▲업계 산증인이라 불리는 점 ▲정상의 자리에서 박수칠 때 퇴진한다는 점에서 닮은 점이 많았다. 그리고 1957년생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까지 '48년 지기' 절친은 마지막까지 '함께'였다. 

허수영 롯데그룹 화학BU장(부회장)과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나란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사진=롯데그룹, LG화학

 ◆ 서울대 화공과 70학번 동기, 나란히 26세에 화학업계 진출

허 부회장과 박 부회장의 평행이론은 1970년에 시작됐다. 나란히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하면서 '70학번 동기'라는 울타리에서 우정을 쌓았다. 한 살 터울(허수영 부회장-1951년생, 박진수 부회장-1952년생)에도 '화학'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있었기에 친분을 유지했고, 사회에서도 인연은 이어졌다.

둘은 공적인 자리 외에도 개인적으로 함께 운동하며 반세기에 가까운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박 부회장이 "허 부회장과 운동도 같이하고 자주 만난다"라고 할 정도다. 

롯데그룹 관계자 역시 "두 분이 대학 동기로서 현재까지도 친하게 지내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 동기지만 사회 진출은 허 부회장이 1년 빨랐다. 허 부회장은 1976년 당시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 입사했다. 그리고 1년 뒤 1977년, 박 부회장은 당시 럭키(현 LG화학)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입사 연도, 입사 회사도 달랐지만 허 부회장, 박 부회장 모두 나란히 26세라는 나이에 '화학'을 천직으로 삼기 시작했다.    

◆ 같은 자리서 40년 넘게 한우물만 판 화학업계 산증인

허 부회장과 박 부회장은 각각 롯데케미칼(롯데그룹)과 LG화학에서 40년이 넘게 화학업에 종사하며 각 회사는 물론 국내 화학·소재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업계에서 '화학업계 산증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업계 한 관계자는 "두 분 모두 업계에서는 베테랑이고 업계 발전에 한 축을 담당하셨다"며 "직·간접적으로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았는데 이번 인사는 다소 아쉬운 결과가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허 부회장은 지난 1976년부터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으로 입사해 롯데대산유화, 케이피케미칼, 롯데케미칼 대표를 역임했다. 롯데케미칼 대표를 지내면서 삼성 유화사 인수, 말레이시아 타이탄 인수, 미국·우즈베키스탄 사업을 지휘하며 롯데케미칼의 글로벌 사업에 크게 이바지한 점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그룹 화학BU장으로 선임됐다. 

허수영 부회장과 박진수 부회장은 서울대 화공과 동기로 각각 롯데케미칼과 LG화학을 그룹 캐시카우로 성장시켰다. /사진=연합뉴스

특히 2016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LG화학을 제치고 국내 화학업계 영업이익 실적 1위를 차지하더니 이듬해까지 정상을 지켰다. 2016년 롯데케미칼 영업이익은 2조5442억원, LG화학은 1조9919억원이었으며 지난해엔 롯데케미칼이 2조9297억원, LG화학은 2조9285억원이었다.

그룹내에서 위상도 달라졌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5조8745억원의 매출을 올려 그룹 전체 매출(약 96조원)의 17%를 책임졌다. 그룹이 향후 5년간 50조 투자 계획 가운데 화학·건설이 20조원(40%)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허 부회장 입지 역시 탄탄하게만 보였다. 그는 이달 진행된 신동빈 회장의 베트남·인도네시아 출장길에 그룹 4명의 BU장 가운데 유일하게 동행했다. 때문에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인사에서 허 부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박 부회장은 1977년 당시 럭키에 입사해 여천 스티렌수지 공장장 상무, 특수수지 사업부장 상무를 거치며 현장 감각을 익혔다. 이후 현대석유화학의 공동 대표이사, LG석유화학 대표이사,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장(사장)을 거친 뒤 2012년 12월 LG화학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2년 뒤에는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박 부회장은 기초소재에만 주력하는 허 부회장과 달리 사업구조 고도화와 에너지, 물, 바이오 및 소재 분야 등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로 LG화학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2012년 말부터는 LG화학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하며 매출액 28조원 규모로 성장시키며 글로벌 톱10 화학기업으로 발전을 주도했다. 

지난 7월 미국 화학학회 ACS(American Chemical Society)가 발행하는 전문잡지 C&EN(Chemical & Engineering News)이 최근 매출과 영업이익 규모 및 증감률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발표한 '2017 글로벌 톱 50'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해 보다 두 계단 상승한 10위를 기록했다. 국내 화학기업 가운데 첫 '톱10' 진입이었다.

C&EN은 LG화학에 대해 "배터리 사업 등의 성장세로 연구·개발(R&D) 인력을 대폭 확대하고 있으며 재료·바이오 등 새로운 영역 확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허수영 부회장과 박진수 부회장의 후임으로 내정된 김교현(왼쪽) 사장과 신학철 부회장은 1957년생이다. /사진=롯데케미칼, LG화학

◆ 박수칠 때 떠난 화학업계 두 거장…후임은 1957년생 동갑내기

화학업계 전성기를 이끌었던 서울대 화공과 70학번 동기는 정상의 자리에서 박수칠 때 떠나게 됐다.

업계 내에서도 허 부회장과 박 부회장의 인사를 예상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롯데케미칼과 LG화학 모두 지난해까지 최근 매년 호실적을 달성했고, 신사업 진출 및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과 LG화학은 지난해 각각 2조9292억원, 2조9285억원의 영업이익을, 영업이익률은 11.4%, 18.4%를 기록하는 등 호실적을 달성했다. 두 업체 모두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떠날 때에 떠나는 것"이라며 아름다운 이별임을 강조했다. 20일 오전 롯데호텔서울에서 열린 '한국석유화학협회 제2회 이사회 및 제1차 임시총회'에서 박 부회장은 대학 동기와 동반 퇴진에 대해 "둘 다 그만 둘 나이가 된 것"이라며 "어떤 식으로든 할 일들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박 부회장의 퇴진 소식에 "저도 이제 나이가 다가오니 준비를 해야한다"고 밝혔던 허 부회장은 이날 은퇴 소감에 "시원섭섭하지만 시원이 더 크다"면서 후배들에게 "항상 열정과 성실로 임하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박 부회장은 지난달 인사 발표 이후 "40년 이상을 근무하며 LG화학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일조하고 명예롭게 은퇴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며 "후배들이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계속 이어가 우리 모두가 함께 성장시켜온 LG화학을 앞으로도 영속하는 기업으로 발전시켜 주길 바란다"고 당부한 바 있다. 

우연의 일치일까. 국내 화학업계를 이끌었던 서울대 화공과 70학번 동기생의 후임자 모두 1957년생이다. 롯데는 허 부회장 후임으로 김교현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사장을, LG는 박 부회장을 대신해 신학철 3M 수석부회장을 LG화학 수장으로 내정했다. 

수장 타이틀을 반납한 허 부회장과 박 부회장은 그룹에 남아 고문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이처럼 1970년 서울대에서 시작된 허 부회장과 박 부회장의 동행은 마지막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성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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