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디폴트 옵션 등 도입 필요
국내 최초 행태경제학적 연구 결과 발표돼
금감원 연구결과 적극 활용해 감독정책에 반영 계획

[한스경제=박재형 기자] 금융당국이 퇴직연금 가입자의 상품 운용 개선을 위해 행태경제학적 연구를 시행하고 이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행태경제학적 연구 결과를 금융감독정책에 활용한 국내 최초 사례다.

이 같은 연구결과에 따라 퇴직연금 가입자들에게 의사 결정을 위해 디폴트 옵션 제도(자동투자제도), 쉽게 활용 가능한 정보와 핵심정보, 다양한 방식의 금융 교육 제공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금융당국은 이를 감독정책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

◆퇴직연금 가입자 91.4% 상품 운용에 소홀한 것으로 나타나

금융감독원이 7일 발표한 ‘퇴직연금 가입자의 상품 운용 행태 개선을 위한 행태경제학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2018년 9월말 기준 172조1000억원(DC형 46조4000억원)으로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운용 수익률은 연 1.88% 수준(2017년 기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금융감독원.

특히 가입자의 상품 선택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은 83.3%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되거나 가입자의 91.4%가 초기 포트폴리오를 변경 하지 않는 등 상품 운용에 매우 소홀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 DC형 가입자들의 불합리한 운용 행태 개선을 위해 김덕규 독일 만하임대 교수, 김상현 연세대 교수, 신은철 카이스트 교수 등이 참여한 외부 교수진과 행태경제학적 행동 실험 연구에 들어갔다.

해외에서는 은퇴 후 주 소득원인인 퇴직연금이 가입자의 무관심 등으로 저조한 가입률·수익률을 보임에 따라 행태겨제학적 연구를 통해 디폴트 옵션 제도(자동투자제도) 등을 도입했다. 미국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차드 세일러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급여 인상 시 자동으로 퇴직연금 저축률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호주는 최적의 금융 상품에 연금 자산을 자동 운용하는 디폴트 옵션을 활용하는 것 등이다.

◆금융소비자 비합리적 의사결정 보여...개선 위한 방안 필요해

금융감독원은 우선 한국갤럽을 통해 선정한 DC형 퇴직연금 실제 가입자 630명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교육 ▲수익률 표준편차 ▲물가 상승률 등을 반영한 실질 수익률 ▲중수익·중위험의 상품을 자동 구성하는 디폴트 옵션 등 정책 변수를 선정해 각각의 경우 가입자의 변화를 관찰했다.

연구결과 퇴직연금 관련 금융교육 제공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유의미한 효과를 가져다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금융 정보를 단기간 형식적으로 제공하는 금융 교육보다는 체험형 교육과 같은 다양한 방식의 금융 교육을 꾸준히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수익률 표준편차를 추가 제시하는 경우도 가입자들의 상품 선택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유사한 정보를 중복 제공하는 등 과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되는 핵심 정보만을 제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진=pixabay.

실질수익률을 제시한 경우와 명목수익률을 제시한 경우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 연구진은 실질수익률을 제시하면 실제 수익을 보다 정확히 인식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예상대로 참가자들이 보다 고수익 상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동일한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제시 형식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프레이밍 효과’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를 통해 실질수익률처럼 가입자가 쉽게 활용 가능한 정보에 대한 제공 필요성이 부각됐다.

또 가입자의 무관심에 따른 불합리한 선택에 대한 개선을 위해 디폴트 옵션의 도입도 적극 고려가 필요하다는 결론도 도출됐다.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구성된 디폴트 옵션을 제시하는 경우 운용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이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와 같이 참가자들은 디폴트 옵션의 상품 구성을 크게 바꾸지 않아 디폴트 옵션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보다 고수익 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다만 제시된 디폴트 옵션 상품 구성에서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이에 대한 책임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도입 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연구를 통해 금융소비자가 합리적 존재이지만 상황에 따라 ‘현상유지 편향’, ‘프레이밍 효과’ 등에 영향을 받는 등 ‘제한된 합리성’을 보인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퇴직연금 관련 제도 개선 시 가입자의 행태편향 관점에서 이를 최대한 완화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거나 가입자의 합리적 선택을 적극 도울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지난달 ‘퇴직연금 상품 제안서 표준서식’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이 행동 실험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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