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심석희, 조재범 성폭행 혐의로 추가 고소
파벌과 성적지상주의가 낳은 모순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심석희가 조재범 전 코치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양인정 기자]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 간판 심석희(한국체대)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로부터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가운데 빙상계에 만연한 '비정상적인 사제 관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앞서 컬링 국가대표팀인 팀 킴도 코치와의 갈등으로 고질적인 빙상계의 문제를 드러냈다. 

코치들이 절대 권력을 가진 빙상계는 오래 동안 체벌과 갑질을 용인해왔다. 성적 지상주의가 낳은 폐단이다. 

내부적으로 곪은 비정상적인 환경은 오래전부터 밖으로 새어 나왔다. 

2004년 쇼트트랙 여자 대표팀 주축 선수 6명은 코치진의 심각한 구타와 폭언에 시달리다 태릉선수촌을 집단 이탈했고, 2005년엔 코치진 선임에 반발한 남자 대표선수들이 태릉선수촌 입촌을 집단으로 거부했다. 평창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한 경북체육회 여자컬링 ‘팀 킴’은 자신들을 지도해온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 김민정·장반석 감독에게 폭언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고 폭로하며 이대로 훈련할 수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코치진의 폭력행위와 선수들의 고통은 계속 밖으로 나타났지만 변화는 없었다. 문제를 일으킨 코치진은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빙상계로 복귀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좋은 지도자로 인정받는 빙상계 풍토도 문제다. 

제자 성추행 등 심각한 행위를 한 지도자들이 버젓이 자리를 지키는 상황도 빙상계가 폭행과 폭력에 얼마나 관대한 집단인지 보여주고 있다. 

2013년 제자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경기도 한 자치단체 실업팀 감독은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영구 제명 처분을 받았지만, 이듬해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재심사를 통해 3년 자격정지로 감경됐다.

국내에서 지도자 생활이 막힌 몇몇 지도자들은 해외에서 코치 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조재범 전 코치도 이와 비슷한 사례다. 

조 전 코치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심석희를 상습 폭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영구 제명 처분을 받자 곧바로 중국 대표팀을 맡기로 했다. 

심석희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것은 조 전 코치가 이전 가해자들처럼 빙상계의 암묵적인 보호 아래서 다시 빙상계로 복귀할 수 있는 무서움 때문이다. 

심석희의 이번 성폭행 고소 사건은 성적 지상주의가 불러온 왜곡된 사제관계가 핵심을 이루고 있다. 

빙상계는 견고한 파벌로 이뤄진 조직으로 이미 널리 알려졌다.  

해당 파벌에서 제외되면 선수 생활은 물론, 향후 지도자 생활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더군다나 심석희처럼 어릴 때부터 특정 코치에게 지도받은 선수들은 지도자의 심각한 체벌과 불법 행위를 당하더라도 쉽게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심석희 측 법무법인 세종은 "조재범 전 코치는 상하 관계에 따른 위력을 이용해 심석희가 만 17세 미성년자일 때부터 평창동계올림픽을 불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때까지 약 4년간 상습적인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전했다.

세종은 "범죄행위가 일어난 장소는 태릉 및 진천선수촌 빙상장 라커룸 등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시설이 포함돼 있다"라며 "선수들이 지도자들의 폭행에 쉽게 노출되어있지만, 전혀 저항할 수 없도록 억압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심석희가 미성년자 때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체육계의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전면적인 조사를 펼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편 조재범 전 코치 측은 폭력행위에 관해선 인정했지만, 성폭행 혐의는 부인하고 있다.

양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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