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십년 전 필자가 의대 학생 시절 국립정신병원에 파견 실습을 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에게 배정된 필자 또래의 20대 젊은 남자 환자가 있었다. 당시 그 환자는 과대망상증으로 입원한 상태에서 의사를 포함해서 만나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종이 조각에 큼지막하게 00억이란 글을 쓰고는 수표라며 건네주면서 마치 자신이 재벌이라도 된 듯이 의기양양해하곤 했다. 
당시 그를 둘러싼 모든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은 그에게 ‘아니야, 당신은 재벌이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해"라고 끊임없이 그가 재벌이 아님을 확인시키는 치료를 하고 있었다. 
 당시 필자는 의료진들이 그 젊은 청년에게 집요하게 현실 속으로 돌아오게 하려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 청년이 잘 치료가 되어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재벌이 아니라는 현실을 깨닫는다면 그 청년이 과연 행복해질까라는 의구심이 강했던 것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인구 고령화 시대를 맞아 치매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 중 치매 환자로 인해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곤 한다. 
 
온 나라의 치매에 대한 공황적 현상을 보이면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치매라는 질병 자체보다 치매에 걸림으로써 자식들이 고생하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더 큰 듯 싶다. 
젊은 사람들 역시 자신의 부모님들이 치매에 걸릴 경우 하루 24시간 내내 그분들을 간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것처럼 보인다. 
치매라는 병명이 생기기 전에는 나이 들어 정신이 온전하지 않으면 노망들었다고 무시하곤 했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노년기의 정신적 장애가 특정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노망이 아닌 누구에게라도 올 수 있는 현상임을 알고 있다. 이러한 치매는 정상적으로 생활해오던 사람이 다양한 원인에 의해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이전에 비해 인지 기능이 지속적으로 저하되어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이 나타나는 상태를 뜻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0년에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율이 7% 이상인 고령화 사회에 도달하였다. 또 2017년에는 노인 인구의 비율이 14% 이상인 고령사회가 되고, 2026년에는 노인 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이행하는 데 17년, 고령사회에서 초고령 사회로 이행하는 데 9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국가로 손꼽히고 있다. 이러한 급속한 고령 사회로 진행되면서 치매의 발생 비율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12년 치매 유병률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노인 인구에서 차지하는 치매 노인의 비율은 2010년 8.7%에서 2020년 10.4%로 증가하고, 2050년에는 15.1%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3년 기준 우리 나라의 치매 노인은 약 57만 명이며, 배우자·자녀·손자녀를 포함한 치매 노인의 가족은 약 23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물론 이러한 자료는 정부의 치매 조사에 따른 수치로 그러한 통계 조사에 누락된 인구를 포함시킨다면 더 많아질 것이다. 어쨌던 현재의 추세로는 노인의 수의 빠른 증가로 인한 치매 환자의 수도 매우 많아져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것이다. 치매는 장기적인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에, 치매 노인 및 그 가족이 상당 기간 동안 관련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2,030만원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토대로, 치매 노인의 수를 고려하여 치매관리에 투입되는 직·간접 비용을 추산하면 2013년 기준 11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치매는 원인 질환에 따라 알츠하이머성 치매, 혈관성 치매, 루이체 치매, 전측두엽 퇴행, 파킨슨병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치매에 투입된 우리나라 정부의 총예산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300억원 대를 유지하다가, 2014년에는 785억 2,600만원이 편성되었다. 이처럼 치매의 발생은 매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비용도 매우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치매에 대처하는 정부의 노력과 관심도 많이 증가했지만 아직까지 일반 국민들의 치매에 대한 두려움은 상상 이상으로 높은 실정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치매 환자를 의료 기관보다 가정에서 부양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부양하는 과정에서 부양자들은 짜증이 많이 나고 성격적으로 급해져 심리적 안녕 상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아직까지 치매의 완전한 치료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치매가 올 수 있고 그 발생률도 높아지고 있는 지금 우리가 치매로 인한 고통을 덜 수 있는 현실적 해결책은 무엇일까? 물론 의학계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치매를 치료하기 위한 많은 연구 중 이지만 아직 그 치료법이 없는 이순간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일단 치매 치료는 의사들에게 맡겨두고 치매 환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다시 생각해보자. 일례를 들어 우리는 어머님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굴 때 심한 충격과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어머니의 모습이 과연 슬프기만 한지 다시 생각해보자. 글머리에 과대망상증 환자에 대해 이야기 했듯 환자 당사자는 자신의 상태에 대한 슬픔이나 고통은 느끼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환자 당사자들은 행복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의 생각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사랑하는 부모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 그 사랑하는 부모님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의 눈앞에서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재롱을 부리지 않는가?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슬픔이 아닌 행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자. 과거로의 퇴행 속의 부모님이 아직도 고통과 슬픔의 대상인가? 우리의 관념을 바꾸는 것이 우리 마음으로 인한 불행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올림픽 병원장 이재훈(정형외과 전문의), 201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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