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엽(왼쪽)-구자욱. /사진=김주희기자

"영광이다. '뜨는 별'과 '지는 별'인데."

이승엽(40·삼성)이 후배 구자욱(23·삼성)에게 악수를 청했다. 선배의 농담에 얼굴까지 붉어진 구자욱은 이승엽의 손을 잡았다.

1995년 삼성에 입단해 올해로 프로 22년차를 맞은 이승엽은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지난해 각종 신인상을 휩쓸었던 구자욱은 '포스트 이승엽'으로 꼽힌다.

함께 뛰고 있는 프로야구의 '전설'과 '미래'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삼성의 스프링캠프가 진행 중인 일본 오키나와에서 이승엽과 구자욱을 만났다. '까마득한 후배' 구자욱은 "제가 감히 선배를 뛰어 넘을 수 있겠습니까"라며 몸을 낮췄지만 이승엽은 "넌 야구를 정말 잘 한다. 자신감을 가져라"며 후배를 응원했다.

◇구자욱 “선배 말씀은 귀에 쏙쏙”

-서로가 보는 서로가 궁금하다.

이승엽(이하 '이') "부럽다. 나도 좋은 시절이 있었는데. 젊고 혈기 왕성한 플레이를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도 그 시기를 거쳐왔으니까 앞으로 힘든 생활이 될 거란 것도 안다. 유혹도 많을 것이고. 야구 실력으로는 전혀 걱정은 안 된다. 자욱이는 삼성의 얼굴이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의 얼굴이 돼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

구자욱(이하 '구') "과찬이신 것 같다. 선배는 야구를 계속 잘 해오셨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부럽다."

-데뷔 전 구자욱이 본 '선수 이승엽'은 어떤 모습이었나.

구 "내가 어릴 때부터 승엽 선배님은 스타이시지 않았나. 정말 멋있었다. 나도 '같이 야구를 할 수 있을까. 내가 프로 선수가 될 순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봤던 것 같다."

-선수 대 선수로는 언제 처음 만났나.

구 "상무에 입대 하기 전 경산 볼파크에서 선배님이 훈련하시는 걸 뵙고, 인사도 드렸다. 2011년 11월인가 12월이었다."

이 "인사를 했다고?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웃음) 지난해 스프링캠프 때 처음 봤다. 캠프에 왔더니 다들 '구자욱, 구자욱' 하더라. 속으로는 '프로가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네가 얼마나 잘하겠나' 했다. 캠프 때 보니까 잘 하더라. 그런데 시즌까지 이렇게 잘 마칠 줄은 몰랐다. '선수들도 많은데 주전이 될까' 싶었는데 빈 자리를 메워서 했다. 사실 그게 프로다.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가야 한다. 많지 않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아 냈기 때문에 아주 대견스럽다. 앞으로는 더 성장할 것 같다. 충분히 그런 실력을 갖고 있고. 자만만 하지 않았으면 한다."

구 "평소에 같이 밥 먹을 때도 '자만하면 안 된다,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 해주신다. 선배 말씀은 귀에 쏙쏙 들어온다.(웃음) 자만이 아닌 자신감을 가져야 된다는 생각을 나도 갖고 있었지만, 선배에게 듣고 배운 부분도 크다."

▲ 이승엽. /사진=한국스포츠경제DB

◇이승엽 “나를 뛰어 넘어라”

-선배 '이승엽'은 어떤가.

구 "최고다.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시고, 잘 챙겨주신다. 밥 먹을 때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많이 한다. 선배가 농담도 많이 하시고 편하게 해주신다." 

-구자욱에게 '포스트 이승엽'이란 수식어가 달리는데 서로에겐 어떤 느낌인가.

구 "저는 좋은데, 선배가 안 좋으실까 봐."

이 "나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돼야지. 그렇게 해줘야 한다."

구 "감히 선배를 뛰어 넘을 순 없지만 뛰어 넘으려고 노력하겠다."

이 "아니다. 뛰어 넘을 수 있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워낙 자질이 있고, 노력을 하는 선수다. 나는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더라. '나'를 목표로 해서 플레이를 한다는 게 기분 좋다."

-서로에게 한 가지씩을 빼앗아 올 수 있다면.

이 "얼굴?(웃음) 빼앗아 오고 싶은 게 많다. 주력, 컨택트하는 능력, 볼도 잘 친다. 히트 존이 더 크다. 그런 능력이 부럽다. 이제 1군에서 1년을 했는데 타율 0.349를 쳤다. 굉장한 재능이 있다는 거다. 그런 재능을 본받고 싶다. 그런데 이런 (마른) 몸은 본 받고 싶진 않다. 잘 먹지도 않더라."

구 "선배가 많이 사주셔서 많이 먹고 있다. 선배가 안 드시고 나에게 양보도 해주신다. 홈런을 잘 치시는 게 부럽다. 스윙을 본 받고 싶다. 몸이 좋으신데 그런 체격도 가져오고 싶다. 여유가 느껴지는 부분도 그렇고."

◇구자욱 “마흔 한 살 때도 선배처럼”

-구자욱은 올해 우리 나이로 스물 네 살이 됐다. 스물 네 살 때가 생각나나.

이 "크. 스물 네 살. 내가 두 번째 MVP를 받았을 때(1999년)다. 54홈런 치고."

구 "와, 스물 네 살에 54홈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운이 좋게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 내가 신인 때 이만수 감독님과 김성래 수석 코치님이 모두 부상을 당하셔서 '땜빵'으로 들어갔는데 그 공백을 잘 메워 지금까지 온 거다. 그때 생각하면 아주 행복했다. 돌아가고 싶다니까."

-이승엽은 올해 마흔 한 살이 됐다. 구자욱이 그리는 마흔 한 살의 모습은 어떤가.

구 "나도 과연 이렇게 마흔 넘어서까지 야구를 할 수 있을까. 상당한 관리가 필요할 텐데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힘든 길을 얼마나 묵묵히 걸어 오셨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당연히 이승엽 선배처럼 되고 싶다."

이 "넘어서라. 넘어서야 된다니까."

구 "나도 선배님 나이까지 야구를 하고 있으면, 잘 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나. 꼭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이다."

-서로에게 궁금한 점은.

구 "왜 2년 뒤에 야구를 그만두려고 하시는지가 궁금하다. 2년 후라고 해도 기량이 떨어질 것 같지 않으신데."

이 "더 이상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욕심인 것 같다. 내가 빠짐으로 인해 후배들이 올라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사실 2년 뒤에 은퇴를 하는 것도 늦는 거다. 아주 행복한 생활을 했다. 좋아하는 야구를 갑자기 그만두면 허탈감이 클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준비를 하고 그만두면 새로운 인생을 살 때 마음이 더 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구자욱에게 궁금한 점은.

이 "쉴 때 뭘 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골프도 치고, 애들하고 놀아주기도 하는데. 여자친구는 있나."

구 "평범한 20대처럼 생활한다. PC방도 한 번씩 가지만 눈이 나빠질까 봐 2시간 이상은 안 한다. 주로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이 "여행은 안 가나. 난 어렸을 때 여행도 못 갔다. 친구들끼리 외국도 한 번씩 가봤으면 좋았을 텐데."

구 "계획은 하고 있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선배님은 많이 노셨습니까."

이 "난 야구 했잖아.(웃음)"

▲ 구자욱. /사진=한국스포츠경제DB

◇이승엽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

-서로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구 "은퇴까지 2년 밖에 안 남았는데 다치지 마시고, 최고의 2년을 만드셨으면 좋겠다."

이 "올 시즌에 잘 했으면 좋겠다. 본인이 목표한 수치를 뛰어 넘고, 전 경기, 전 타석을 라인업에서 쳐줬으면 좋겠다. 크게 보면 우리나라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 2020년 올림픽에는 나라를 대표해 나갈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사명감을 갖고 해주길 바란다"

(구자욱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이승엽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올 시즌 삼성은 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이 "화가 난다. 우리 팀은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통합 5연패를 놓쳤지만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간 팀이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가는데. 한편으로 마음 편한 건 있다. 항상 '삼성의 대항마는 누가 될까'하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삼성이 쫓아가는 입장이다. 좋은 선수들이 빠져나가 분명히 타격은 있겠지만 또 젊은 선수, 좋은 후배 선수들이 많아 잘 메울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구자욱이 그리는 삼성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

구 "한국에서 가장 강한 팀이 됐으면 좋겠다. 그 중심에는 나도 있었으면 좋겠고. 한국 야구하면 삼성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

-구자욱에게 '이승엽'이란.

구 "꿈을 키워준 한 선수. 어렸을 때 선배님을 보면서 컸다. 선배를 보면서 훈련하고, 따라도 해보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그게 내 꿈을 키워줬다."

-이승엽에게 '구자욱'이란.

이 "내가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싶게 한 선수.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은 위치라는 걸 알고, 야구장 안에서만큼은 더 자신 있게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 야구 잘 한다니까. 늘 이야기하잖아. 부럽다. 올림픽도 가야하고.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도 가야 하고. 잘 할 거다. 걱정하지 마라."

오키나와(일본)=김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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