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인터뷰] KLPGAㆍLPGAㆍJLPGA 상금왕 꿈꾼다... 신지애의 30년 회고록
[와이드인터뷰] KLPGAㆍLPGAㆍJLPGA 상금왕 꿈꾼다... 신지애의 30년 회고록
  • 박종민 기자
  • 승인 2019.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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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애, 본지와 단독 인터뷰에서 지난 30여년 인생 회고
"2003년이 골프 인생의 전환점"
"행복의 다른 말은 '감사'"
"골프는 내 인생의 ‘바탕 화면’"
서른을 갓 넘은 신지애(31)가 지난 30년을 돌아봤다. /신지애
KLPGA와 LPGA, JLPGA에서 활약한 신지애(31)가 지난 30년을 돌아봤다. /신지애

[한국스포츠경제=박종민 기자] 고(故) 김광석의 곡 ‘서른 즈음에’에는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라는 가사가 나온다. 사람들은 서른 전후가 되면 한번쯤 인생을 되돌아본다. 골퍼 신지애(31)의 지난 30년 인생도 파란만장했다. 황금돼지의 해 그는 한국인 사상 최초 한미일 투어 상금왕을 꿈꾸고 있다. 올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상금왕을 거머쥘 경우 대기록은 완성된다. 최근 서울 당주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 인생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 내용은 자서전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선수 인생 전환점은 2003년

30년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양궁 선수였던 초등학교 3~4학년 때가 먼저 떠오른다. 그땐 훈련을 많이 했지만 자세 교정이 잘 안 됐다. 골프와 인연이 되려고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마침 19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오픈에서 박세리(42) 선배님이 우승했다. 아버지께선 그때 나를 골프 선수로 키우기로 결심하셨다. 목표는 세계랭킹 1위였다. 아버지 밑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5학년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는데 학교 오전 수업을 끝내고 오후부터 골프연습장이 끝나는 밤 10~11시까지 훈련했다. 귀가해선 퍼팅 매트 위에서 아버지께서 내주신 과제를 소화했다. 오전 1시가 돼서야 잠이 들곤 했다. 수면도 회복시간이라 골프 훈련의 한 부분이라 여겼다. 지금 키(156cm)가 그때 키였다. 그땐 왜 그렇게 혹독했는지 아버지가 미웠던 부분도 있다. 하지만 사실 아버지는 나를 위해 인생과 자존심 등 모두를 희생하셨다. 그걸 끌어 올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지금은 사이가 참 좋다.

신지애(왼쪽)가 19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오픈 박세리의 우승 이후 골프 선수로 첫 발을 내디뎠다고 밝혔다. /신지애
신지애(왼쪽)가 19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오픈 박세리의 우승 이후 골프 선수로 첫 발을 내디뎠다고 밝혔다. /신지애

선수로서 전환점은 2003년이었다.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전까지 골프의 장점은 다음날 새롭게 18홀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기회가 왔을 때 놓쳐도 또 기회가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중요한 순간들을 흘려 보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시간과 기회를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에 이후부턴 후회할 결과를 내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지 4개월 만인 2004년 봄 주니어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일궈냈다. 그 기억으로 지금도 우승 순간이 왔을 때 최대한 신중하게 된 것 같다.

 

◇한국→미국 vs 미국→일본 ‘달랐던 마음가짐’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목표했던 바들을 이루고 2009년 미국으로 갔을 땐 부담이 컸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회원이 되기 전 이미 3승 거둬서 주위의 기대가 컸다. 그래도 LPGA 무대를 밟는다는 자부심은 있었다. 다행히도 가서 잘 풀렸다. 프로 데뷔 4년 만에 꿈의 무대에서 세계랭킹 1위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그렇게 빨리 목표를 이룰 줄 상상도 못했다. 성적이 좋을 때 자만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내 위주로 돌아가는 일상을 당연하게 느낀 적이 있다. 골프는 혼자 잘 할 수 없는 종목인데 그땐 왜 그렇게 생각이 짧았는지 반성하고 있다.

이후 한동안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돌연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로 선회했다. 다 보여주지 못하고 일본으로 방향 틀어서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중위권으로 대회를 마무리해도 만족하고 안주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게 너무 싫었던 탓도 있다. ‘우승도 습관’이라 생각하는데 미국에 계속 있다간 우승 습관과 내 골프를 잃어버릴 것 같아서 도전을 결심했다.

LPGA 생활은 ‘골프밖에 없는 생활’이다. 여가시간이 없는 삶이다. 세계를 돌아다니고 대회도 주 4일간 펼쳐진다. 다양한 코스 환경을 마주하면서 실력은 늘게 될 수 있지만, 초반에 목표를 다 이루고 나니 대회도 일상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 생활의 일부로 느껴졌을 뿐이다. 골프를 어떻게 만들어가야겠다라는 그런 의식이 사라졌다. 일본으로 간 이유였다. 그래도 꾸준히 좋아해주시는 팬 분들이 있다. 나는 참 복 받은 사람 같다.

그간 경쟁했던 선수들도 고맙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의 발전도 없었을 테니깐. 물론 경기 막판엔 스스로에게 집중했다. 승부처일수록 나만의 골프에 빠지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골프를 하면 결과가 어찌됐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고, 그대로 플레이 해야 내가 원하는 결과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경험이 쌓일수록 생각도 많아졌다. 때문에 경기장에 빨리 들어가 공을 치고 싶었다. 밖에 있으면 결과에 대한 많은 생각만 하게 되기 때문이다.

신지애는 체력 훈련 때 고관절 운동을 주로 한다고 말했다. /신지애
신지애는 체력 훈련 때 고관절 운동을 주로 한다고 말했다. /신지애

훈련은 단점을 상쇄할 수 있는 장점을 키우는 식이었다. 다만 체력 훈련은 약점을 보완하는 쪽으로 했다. 전체적인 균형이 중요했다. 고관절 운동을 많이 해 하체 안정성, 움직임을 극대화했다. 하체 균형이 좋아지니 스윙 리듬이나 균형도 좋아졌다. 체력이 타고났다는 얘기를 듣는데 사실 의지와 멘탈이 강해서 유지되는 부분도 있다. 노력의 산물이기도 했다. 8년째 체중변화가 없다. 10년 전과도 3~4kg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체형이 바뀌었을 뿐이다. 나에게 맞는 체중을 유지하려 한다.

◇행복의 다른 말은 ‘감사’

대회 기간이 3일인 JLPGA 생활을 하면서 월요일은 여유가 생겼다. 나를 위한 시간, 그 고요한 시간이 요즘은 즐겁고 편안하다. 미국에선 혼자 있을 때 불안하고 외로웠지만, 일본에선 청소하고 빨래하고 책을 읽는 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이런 게 행복이 아닐까. 행복의 다른 말은 ‘감사’인 것 같다. 바쁜 것도, 골프하면서 느끼는 우승에 대한 압박도 감사하다. 원하는 목표에 가까워져 있다는 증거이니깐. 원하는 게 있다는 것에도 감사하다.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스트레스도 고맙다. 승부처에서 긴장감이 생기면 ‘반응하라’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긴장감과 부담감도 환영이다. 내가 전진할 수 있게 하는 것들이다.

정상을 향해 가는 과정에선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했다. 주변을 돌보지 못했고 내가 잘못하면 다 무너질 것 같아서 불안했다. 하지만 넘어졌더니 일으켜 세워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어렸을 땐 몰랐던 행복을 많이 깨달았다. 나중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미루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의 나를 혹사하면서 ‘미래에 행복할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다. 지금 먹고 있는 커피 한 잔이 맛있다면 그것도 기쁨이고 감사다. 행복이란 기준을 너무 크고 멀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소소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찾아야 나중에 큰 행복이 왔을 때도 그걸 즐길 수 있다. ‘너무 행복해서 불안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큰 행복도 사실 행복의 일부다.

신지애는 혼자만의 시간도 충분히 즐기게 됐다고 언급했다. /신지애
신지애는 혼자만의 시간도 충분히 즐기게 됐다고 언급했다. /신지애

◇골프는 내 인생의 ‘바탕 화면’

내 성취감과 행복감에서 ‘연애’라는 항목은 빠져있다. 물론 이상형은 있다. 바빠서 만나기보단 통화를 자주해야 하니 목소리가 좋아야 한다. 또 이성을 볼 때 말하는 것을 주의 깊게 보는 편이다.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사용할 수 있는 사람, 말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내가 책을 좋아하기도 한다. 책은 글과 글 사이에 생각을 넣을 수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 사는 동안 영어, 일본어를 하면서 오히려 우리말에 대한 애정과 갈증이 커졌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들의 생각을 단어 하나 하나를 통해 새롭게 느낀다. 작가들이 수 없이 고민해 선택한 단어들이다. 글이 소중하고 그러다 보니 책도 소중하다. 그 안에 내 생각을 넣을 수도 있다. 최근 읽었던 ‘침묵의 기술’이라는 책이 기억에 남는다. 침묵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말에 대해 준비하는 과정이며 말이 많았을 때 조율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참 공감이 갔다.

아울러 나는 ‘만약’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선택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이기 때문이다. 골프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뭐 하고 있을 것 같느냐는 질문들을 받는데 돌아 돌아서 결국 선수가 돼 있을 것 같다. 그게 내 운명 같다. 아직 은퇴 계획도 없다. 나를 있게 해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기부를 하는 것도 어릴 때 내가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그분들의 삶과 꿈에 힘을 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골프는 내 인생의 ‘밑그림’이자 ‘바탕 화면’이었다. 내가 컴퓨터라면 골프라는 바탕 화면 안에 많은 프로그램들을 넣을 수 있었다. 골프로 인해 많은 기회를 얻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골프는 내게 ‘인생의 바탕’ 같은 존재였다. 올해 겨울전지훈련은 베트남에서 한다. 14년 차가 된 올해 JLPGA 상금왕을 향해 달려가고 싶다. 후배들에게 좋은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선배가 되는 것도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