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GM 북미공장 폐쇄 등 인력 구조조정 단행
도요타 "죽느냐 사느냐 갈림길" 위기 경영 선언
재규어 CEO "위기가 무더기로 몰려오고 있다"
파업에 참가한 근로자가 머리끈을 동여메고 있다. 연합뉴스

[한스경제=박대웅 기자] 세계 자동차업계가 한마디로 대혼돈의 시대다. 미국과 일본, 유럽의 완성차 브랜드는 중국에서의 판매감소와 각국의 환경규제 강화 충격 등 숱한 악재에 생사를 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시동도 못 건 상태다.

새해 첫 날부터 일본의 도요타는 구조조정 소식을 전했다. 임원을 종전 55명에서 23명으로 줄였다. 상무·부장·차장을 '간부'라는 이름으로 통폐합했다. 도요타의 영업이익은 역대 최고치로 예상되지만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지각변동에 대비해 조직을 개편했다. 아키오 도요타 CEO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갈림길에 있다. 100년에 한 번 있을 만한 변혁기"라며 '위기 경영'을 선언했다. 닛산 역시 멕시코에서 1000명을 감원했다.

◆ 도요타 닛산 포드 등 앞다퉈 구조조정 돌입

태평양을 건너 미국도 마찬가지다. 포드자동차는 10일(현지시간) 유럽 공장 15곳에서 수천 명을 감원한다고 밝혔다. 스티븐 암스트롱 포드 유럽·중동·아프리카 담당 사장은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유럽지역에서의 사업 변화를 위해 결정적인 조치를 하고 있다"며 "구조적인 비용 개선은 근로자든 시간제 근로자든 모든 기능에 걸쳐 잉여 인력을 줄이는 것에서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제너럴모터스(GM)은 지난해 연말 북미사업장에서 인력 1만여명을 줄이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폭스바겐은 독일에서만 7000명을 줄이겠다고 밝혔다가 노조의 강한 반대에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프리미엄 자동차 제조업체인 재규어랜드로버 또한 중국에서의 수요감소와 유럽에서의 급격한 디젤차 판매 감소로 최고 5000명의 인력을 감축할 계획을 갖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앞다퉈 선제적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로봇팔이 자동차 생산 라인에서 용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혼돈의 배경은 단연 강화 추세인 환경 규제와 중국을 포함한 세계시장의 자동차 판매 급감 여기에 전자·IT 기업의 잇따른 자동차 시장 진출을 꼽을 수 있다. 랠프 스페스 재규어랜드로버 CEO의 말을 빌리자면 "심각한 위협이 무더기로 몰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유럽 업체들은 환경 규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10월 유럽의회는 2030년까지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40% 줄이도록 지침을 정했다. 폭스바겐, BMW 등 업체는 "비현실적 목표"라고 반대했지만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 구조조정 시동도 못 건 한국

대혼돈의 시기, 한국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구조조정의 시동도 못 걸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업체와 똑같은 상황에 처한 한국이지만 GM의 북미공장 폐쇄처럼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단적으로 국내 1위 현대자동차그룹은 노조와 협의 없이 생산물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기 어렵다. 공급과잉이 우려되더라도 손해를 보더라도 차는 만들어야 하는 셈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인력 구조조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현대차는 지난해 상용차 판매 감소로 전북 전주공장 트럭 생산설비의 시간당 생산량(UPH)을 기존 12.39대에서 8대로 30% 이상 줄이고 300명에 가까운 인원을 전환배치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더 큰 문제는 글로벌 경쟁 업체들이 자율주행·모빌리티 등 미래전략 강화와 신사업 개척에 속도를 내며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에 비해 한국은 전략조자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정의선 현대차 총괄수석부회장은 지난해 9월 인도서 열린 '무브(MOVE)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업체로 변신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구글(웨이모)·GM(크루즈) 등 정보통신기술(ICT) 업체와 완성차 업체들이 자율경쟁 플랫폼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독자기술을 고집하는 현대차는 다소 동떨어진 행보를 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친환경, 자율주행, 플랫폼 등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발맞춰 투자 범위 역시 확대되는 등 비용이 증가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 있다. 한국 역시 낮아진 수익성을 개선하고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구조조정은 점점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글로벌 선두기업들이 미래 시장을 겨냥한 장기 비전과 전략으로 선제적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지금, 강 건너 불구경 한다면 격차는 더 벌어질 수 밖에 없다는 자동차 업계 안팎의 주도적인 시각이다.

박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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