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영화 속 CG라고 하면 흔히 ‘어벤져스’나 ‘쥬라기공원’ 같은 블록버스터를 떠올리게 되지만, 사실 CG는 대중이 눈치채지 못 하는 작품 구석구석에까지 스며 있다. 화면에 보이는 로고를 지우거나 시대 배경에 따라 풍경에 변화를 주는 등 대중이 잘 눈치채지 못 하는 부분의 작업들을 흔히 ‘생활 CG’라 하는데, 영상 제작 회사 HEF의 김재호 대표는 꼼꼼하고 세심한 작업 스타일로 이 분야에서 큰 신뢰를 받고 있다. 최근 개봉한 ‘말모이’부터 ‘택시운전사’ 등 여러 작품의 CG 작업에 참여한 김재호 대표에게 영화 작업의 비하인드와 콘텐츠 산업의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콘텐츠가 미래의 먹거리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이 가능성을 일찍부터 본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그런 비전 같은 걸 뚜렷이 보진 못 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서 만화가나 화가 쪽으로 진로를 꿈꾸다 애니메이션 학과에 진학하게 됐다. 그러면서 CG라는 분야에 대해 알게 됐다. 전문대를 나왔는데 조금 더 깊게 이쪽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학원을 알아봤다. 그 때 처음 VFX(시각적인 특수효과, 비주얼 FX) 분야를 알게 돼서 시작하게 됐다.”

-처음부터 영화 쪽에서 일을 했나.

“처음에는 콘서트 무대 영상 같은 일을 건으로 받아서 아르바이트 식으로 일을 했다. 이승환 콘서트 영상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회사에 들어가게 됐고, 그 때부터 영화 쪽에 발을 담그게 됐다. 처음으로 영화에 참여한 건 ‘해운대’다.”

-‘택시운전사’ CG에 참여한 걸로 알고 있다. 상당히 난이도 높은 작업이라고 들었는데.

“리얼리티 기반의 CG를 ‘생활 CG’라고 한다. 대놓고 ‘나 CG다’ 하는 작품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CG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다. ‘택시운전사’도 그런 느낌이었다. 촬영은 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영화 속 시대 배경은 1980년대라 결과물에서 현대의 느낌을 지워야 했다. 그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영화에서 주인공 만섭(송강호)이 한강을 건너는 장면이 있다. 이정표를 보면서 건너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 차 안에 있는 카메라로 촬영이 된 거라 흔들림도 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로 이정표와 한강 다리, 현대 빌딩, 앞에 가는 최신식 자동차 등을 다 지워야 했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을 다 컴퓨터에 데이터화시켜야 했는데, 정말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었다. 예를 들어 도로 이정표가 미세하게 흔들렸다고 생각해 보자. 관객들이 ‘왜 흔들리지? CG야? 튀네’라고 생각할 것 아닌가. 그런 걸 눈치채지 못 하게 하기 위해 정말 노력했다. 그 장면이 2초 정도였는데 작업을 다 하는 데까지 한 달 정도 걸렸다.”

'택시운전사' CG 작업 장면.

-작업물을 보면 대체로 만족하는 편인가.

“장면마다 조금씩 성격이 다르다. 예를 들어 내 생각이 별로 필요가 없는 장면들이 있다. 기계적으로 하면 되는 것들. 그런 작업은 완벽하게 한다. 만족스럽게 끝내는 편이다. 크리에이티브를 요하는 장면은 얘기가 좀 다르다. 폭파 장면 같은 걸 예로 들면 그런 건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지 않겠나. ‘흐릿하게 연기를 좀 더 깔까’라든지 ‘파편은 어느 정도로 튀게 할까’라든지 1초 단위로 훅 지나가는 그 한 장면을 위해서 고민을 정말 많이 한다. 그런 장면들은 작업을 끝내도 100% 만족하진 못 하는 것 같다. 계속 고민이 되고 아쉽기도 하고 그래서 끝날 때까지 계속 만진다.”

-최근 유튜브 편집 시장에도 진출한 걸로 알고 있다.

“안정적으로 일을 하면서 이쪽으로 발을 걸치고자 한 건 유튜브 시장의 미래를 봤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발전할 것이고, 이 시장이 망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유튜브 편집은 영화와 비교해 어떤가.

“유튜브 쪽은 크리에이티브를 요하는 작업이 많다. 작업 자체도 크리에이티브 하고 편집자가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고, 또 자체적으로 수익도 생산할 수 있는 재미있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편집을 넘어 자체 콘텐츠 제작에도 무게를 많이 두고 나갈 생각이다.”

-1인 미디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원래 전부터 작업을 하면서 인터넷 방송을 많이 봤다. 그러다 개인적으로 팬심을 가지는 BJ가 생겼는데, 그 BJ에게 편집 아이디어를 주면서 자연스럽게 이쪽에 발을 들이게 된 것 같다.”

-영상 분야로의 진출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온라인 아카데미도 운영하는 걸로 안다.

“입문하고 배우는 친구들이 느끼는 어려움에 공감이 되더라. 그래서 견학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고 템플릿 같은 걸 만들어서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친구들에게 정보를 알려주면 좋겠다 싶어서 온라인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수익화가 되지 않는 일에 힘을 쓰는 이유가 있나.

“솔직히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웃음) 사실 오랫동안 앞만 보고 일만 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알게 되고, 주변도 돌아보게 됐다. 그러면서 ‘나 혼자 잘나서 이 자리까지 온 게 아니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도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고, 좋은 멘토들을 만났다. 그 분들도 나한테 뭐 떨어질 걸 기대하고 날 도와주진 않았을 것 아닌가. 또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도와준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영상이라는 분야의 문이 많이 열려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문턱이 낮아지면 낮아지는 대로 부작용도 있다고 본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내가 조금이라도 입문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상 분야 진출을 꿈꾸는 이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1인 미디어의 특성 가운데 하나자 짧고 빠른 시간에 결과물을 얻어내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뭔가가 잘됐을 때 ‘내가 잘나서 그래’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 혼자 잘나고 내가 잘해서 잘된거라는 생각을 시작하게 되면 자신이 만든 프레임에 빠지기 쉽다. 주변의 이야기들도 귀에 잘 안 들어올 거고. 그래서 최대한 귀를 열고 주변 사람들의 말도 많이 듣고, 레퍼런스도 많이 쌓아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자기 고집에 빠지지 않고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앞으로 사업을 어떻게 꾸려갈 계획인가.

“내가 아는 선에서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제공하는 일은 계속 하고 싶다. 내가 기술자다 보니 회사에 좋은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사업을 하다 보니 행정적인 분야라든지 필요한 부분들이 많더라. 그런 부분도 채워가고 싶다. 상반기 안에 내가 직접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하는 일은 끝내고, HEF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올리고 좋은 콘텐츠를 기획하는 데 집중하고 싶다.”

사진=HEF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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