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방탄소년단이 미국 빌보드 차트 정상에 깃발을 꽂은 지금 K팝은 더 이상 세계 무대에서 비주류가 아니다. 이미 국경을 넘어 많은 글로벌 팬들이 K팝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으며, K팝에 먼저 러브콜을 보내는 스타들도 숱하다. K팝의 힘은 나날이 막강해져 이젠 ‘할리우드’만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반가운 사운드가 종종 들리고 있다.

■ ‘강남스타일’, K팝 붐의 시작

2012년 전 누구도 예상하지 못 했던 깜짝 신드롬이 일어났다. 그 주인공은 바로 싸이. 싸이의 6집 ‘싸이6갑’의 타이틀 곡이었던 ‘강남스타일’은 흥겨운 멜로디와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랫말과 안무, 코믹한 뮤직비디오 등에 힘입어 순식간에 싸이를 ‘월드스타’ 반열에 올려놨다.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미국 빌보드의 메인차트인 핫 100에서 7주 연속 2위를 기록했다. 마돈나, 엘렌 드제너러스 등 많은 스타들도 ‘강남스타일’에 취했다.

미국 드라마에서 K팝을 조금씩 들을 수 있게 된 것도 이 때부터다. 2012년 방송된 미국 폭스TV의 드라마 ‘글리’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왔다. ‘글리’는 합창 클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고등학생들의 성장 스토리를 다룬 드라마. 시즌 5까지 제작됐을 만큼 미국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끈 작품이다. ‘강남스타일’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지역 예선전에 사용한 음악으로 전파를 탔다.

'판타스틱 베이비' 뮤직비디오 한 장면.

■ 조미료에서 신스틸러로

K팝에 대한 관심은 ‘강남스타일’에서 끝나지 않았다. K팝은 이미 동북ㆍ동남 아시아에서 탄탄하게 자리잡은 한류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세계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K팝이라는 카테고리가 세계 음악 시장에서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역시 같은 드라마인 ‘글리’에서는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가 배경 음악으로 사용된 적이 있다. 당시 ‘글리’의 주연이었던 케빈 맥헤일은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열린 빅뱅의 콘서트를 찾은 적이 있다. 맥헤일은 이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 태양, 승리에게 “‘글리’에서 ‘판타스틱 베이비’를 추겠다”고 알리기까지 했다. K팝이 팝 문화의 중심부로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준 일화다.

'루시퍼' 뮤직비디오 한 장면.

■ “K팝은 그 어떤 엑스터시보다도 강렬하다”

지난 해 공개된 미국 폭스TV의 드라마 ‘루시퍼’에서는 놀라운 대사가 나온다. ‘루시퍼’의 주인공 루시퍼 모닝스타(톰 엘리스)가 “K팝은 그 어떤 엑스터시들보다 강력한 마약”이라고 한 장면이 그것. ‘루시퍼’는 지옥의 군주로 살아가는 삶이 지겨워진 루시퍼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면서 형사를 도와 범죄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한 살인사건의 배후로 코리안 갱단이 지목되고, 이들이 ‘K팝’이라는 이름의 마약을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나온 대사다. ‘K팝’을 중독성 강한 마약에 비유한 점이 K팝 팬들에게는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이었다.

‘K팝’은 이 에피소드의 전체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시퍼가 코리안 갱단의 두목을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는 샤이니의 ‘루시퍼’가 흘러나왔다. ‘루시퍼’가 발매된 건 지난 2010년. 이렇게 예전 노래가 최신 미국 드라마에, 그것도 주인공 테마격으로 사용됐다는 점은 K팝의 강력한 영향력을 제대로 실감하게 한다.

K팝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될 때의 길이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미국 프리폼의 드라마 ‘더 볼드 타입’의 경우 시즌 1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그룹 블랙핑크의 ‘휘파람’을 무려 1분 여 동안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멜로디뿐만 아니라 한국어 가사까지 그대로 전달돼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CL의 ‘멘붕’의 경우 ‘루시퍼’ 시즌 1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의 시작부터 흘러나와 무려 3분 여 동안 재생됐다.

작품에 삽입된 노래들이 시너지를 일으켜 차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방탄소년단부터 블랙핑크, 여기에 핑크퐁 ‘아기 상어’까지 빌보드 메인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2019년 현재, K팝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날개를 달고 전 세계를 누빌 날이 머지 않았음을 예감하게 된다.

사진='강남스타일' MV, '판타스틱 베이비' MV, '루시퍼' MV 캡처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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