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삼성, '하이엔드(High-End)' 제품 주력
재고털이 나설 가능성↑…가격 경쟁 불가피
반도체 위기론이 나오는 가운데 업계 1위 삼성전자의 대응 전략에 시장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김지영 기자]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이 끝났다는 여론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어려울 때 진짜 실력이 나오는 것’이라고 발언해 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가격 하락 속도가 더딘 하이엔드(High-End·최첨단) 제품 개발에 집중해 2~3위 업체와 격차를 벌리고, 재고 털이를 위해 중저가 제품 가격을 낮추겠다는 의도로 해석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2019 기업인과의 대화’ 행사를 열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을 초청했다.

공식 행사가 끝난 후 이어진 산책에서 문 대통령은 “요즘 반도체 경기가 안 좋다는데 어떻습니까?”라고 이재용 부회장에게 물었고 이 부회장은 “좋지는 않습니다만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오는 거죠”라고 답했다.

이에 최태원 SK 회장은 “삼성이 이런 소리하는 것이 제일 무섭습니다”라고 유쾌하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SK가 2012년 인수해 키우고 있는 SK하이닉스는 세계 3위 규모의 반도체 업체다.

◆‘반도체 위기론’…수요 감소 아닌 가격 하락이 원인

반도체 업계는 최근 위기론에 시달리고 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전문 시장조사 업체인 가트너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이 총 4890억달러(한화 약 545조원)로 지난해 4770억달러(약 538조원)보다 2.6%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2017년 성장률 21.6%, 지난해 13.4%와 비교하면 폭발적인 성장은 끝났다고 볼 수 있는 수치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은 충격적이었다.

삼성전자 지난해 4분기 매출액은 전분기보다 9.87%, 전년 동기보다 10.58% 감소한 59조원이었으며 영업이익은 전분기의 38.53%, 전년 동기보다 28.71% 감소한 10조8000억원이었다. 이는 2017년 1분기 이후 7분기 만에 분기 영업이익이 14조원에 미치지 못한 성적이다.

충격적인 삼성전자의 실적에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치도 낮추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는 SK하이닉스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을 5조1964억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분기 최고 실적을 기록했던 3분기보다 약 19.7%가량 감소한 수치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절대 수요가 줄어든 것이 아닌 가격 경쟁 때문에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는 반응이다.

최태원 회장이 문 대통령과의 산책에서 “반도체 수요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라며 “가격이 좋았던 시절이 이제 조정을 받는 겁니다”라고 설명한 것이 이 같은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과 대화하는 이재용 부회장(첫 줄 좌측)/사진=연합뉴스

◆삼성발 ‘가격 인하’ 경쟁 서막 열린다

삼성전자는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초(超)격차’ 전략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겠다는 포부다.

삼성전자의 주력 품목은 D램(대용량 기억장치)과 스마트폰에 주로 사용되는 낸드플래시인데 이들 제품은 올해 가격 하락폭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전문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는 D램의 경우 올 1분기 20% 가격 하락을 예상했으며 같은 기간 낸드플래시는 10% 가격 하락이 예상된다.

이에 삼성전자는 주력 상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 대신 인공지능(AI), 5세대(5G) 이동통신 시장 성장에 대비한 기술 확보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최신 기술이 적용된 반도체는 더딘 속도로 가격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내년까지 6조5000억원을 투자해 경기 화성캠퍼스에 극자외선(EUV) 생산라인을 구축, 반도체 초미세화 공정 등 최신 기술력 강화에 나섰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재고 털이에 나설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업계 1위 삼성이 공격적인 가격 인하에 나설 경우 다른 업체들도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 이렇게 너도나도 가격을 낮추면 자금력을 갖춘 업체만 생존하게 된다.

반도체 위기론이 대두되는 현 시점에서 ‘어려울 때 진짜 실력이 나오는 것’이라는 이재용 부회장의 발언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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