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 플레이’가 생명인 스포츠 세계에도 ‘수저론’은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학생 선수들이 꿈을 키우는 ‘학원 스포츠’이다. 부모를 잘 만난 선수들은 우대받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남몰래 눈물을 삼켜야 한다.

아들을 야구 선수로 키운 한 학부형과 연락이 닿았다. 그는 익명을 전제로 학원 스포츠에 만연한 ‘수저론’을 폭로했다.

-부모가 야구부에 돈을 많이 내는 학생 선수는 어느 정도 혜택을 받는가.

“초-중-고-대학 모두 마찬가지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대부분 학생들의 실력이 엇비슷하기 때문에 감독들이 이왕이면 돈을 많이 내는 학부모의 아들들에게 출장 기회를 준다. 고교와 대학에서는 대학 진학과 프로 입단 등 진로와 관련해 재력 있는 학부모와 감독들이 유착돼 있다.”

-실제로 경기 출장에 영향을 미치는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들이 야구부 학부모회의 회장과 총무 등 집행부를 맡는다. 그들의 주요 업무는 감독을 뒷바라지하는 것이다. 감독은 회장 아들은 1번 타자, 총무 아들은 3번 타자, 이런 식으로 경기에 내보낸다. 한 경기에서 못 해도 그 선수들은 다음 경기 출장이 보장되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잘 해도 다음 경기 라인업에서 빠진다.”

-고교와 대학에서는 특히 선수 생활의 진로가 결정되는데.

“고교 선수들은 대부분 프로 입단을 원한다. 그러나 프로 지명을 못 받으면 대학을 가기 위해 고교 감독을 통해 대학 감독들에게 로비를 한다. 그 비용은 학부모 몫이다. 어떤 고교 감독은 ‘선수 진학을 위해 대학 감독을 만났다’며 학부모들에게 접대 비용을 요구한다.”

-아들을 야구 선수로 키우려면 돈은 얼마나 드는가.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고교는 대체로 한 달에 60만~70만원을 낸다. 원정 경기나 전지훈련을 가면 학부모가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대학은 한 달에 30만~40만원선이지만, 해외 전지 훈련을 떠나면 한 번에 300만~400만원을 내기도 한다.”

-피해를 입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불만이 클 텐데.

“학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들한테 더 큰 불이익이 갈까 봐 그냥 참고 쉬쉬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돈에 좌우되는 학원 스포츠의 병폐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말에만 해도 서울시내 대학 야구부 감독과 관계자들이 입시 비리로 줄줄이 입건됐다. 한 대학 감독은 고교 야구부 후원회장 출신을 통해 한 학부모로부터 “아들을 입학시켜달라”는 청탁과 함께 4,000만원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다른 대학 감독은 고교 시절 4할대 타율을 기록한 타자를 떨어뜨리는 대신 평균자책점 9점대의 투수를 입학시켰다는 혐의다.

이런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일까. 워낙 뿌리 깊은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어, 대한체육회나 대한야구협회 등 유관단체들도 확실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 행정단체들은 앞서 인터뷰한 한 학부형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감독한테 모든 힘이 몰려 있는 것이 문제다. 특히 대학에서는 감독의 거의 신(神)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와 지도자들 사이에 유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양측 관계에 선을 그어주는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 또 학교나 협회가 지원하는 금액으로 야구부를 운영하도록 정리가 돼야 한다. 감독 외에 코치를 2~3명 두다 보니 인건비 때문에 학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모 대학이 감독과 코치를 학교 직원으로 채용한 것은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신화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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