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학원에서 수업을 듣느라 늘 피곤한 상태로 지냈던 나의 학창시절. 4당5락에서 3당4락(하루 3시간만 잠자면서 공부하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고 4시간 이상 자면 불합격한다는 뜻)을 강조하던 그 시기, 소위 SKY로 지칭되는 명문대에 합격하기 위한 조건은 수면시간조차 압박할 만큼 그렇게 가혹한 것이었다.

마음껏 놀아야 할 10대, 놀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도 없었고 ‘미래를 위해서’라는 모두가 같은 목표아래 자유는 저당 잡힌 채 숨 막히도록 공부를 강요당해야만 했다.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면 인정받지 못했던 시간, 그랬다.

그런 시절을 겪었기에 ‘내가 어른이 되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런 기대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판타지인지도 모른다.

최근 드라마 ‘SKY 캐슬’은 성공이라는 욕망을 향해 내달리는 사람들을 농밀하게 그려내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부(富)가 대물림 되며 금수저론이 공고화 되고 있는 이때, 대한민국 상위 0.1%만이 누릴 수 있는 환경은 그에 해당사항이 없는 대다수 99.9%인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극대화시키며 관찰자를 자처하게 만들었다.

드라마 SKY 캐슬의 한 장면

SKY 캐슬에 사는 사람들의 욕망은 위선으로 가득하다. 그 욕망이 일종의 성(城)으로 형성되면서 보통 사람들의 삶과 차단되어 있다. 다른 이들과는 다른 ‘그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어려서부터 최고가 되기 위한 목표가 설정 되어야 하며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능력 있는 부모는 필수조건, 능력 있는 코디네이터의 전략은 성공으로 가는 중요한 디딤돌이 된다.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의 욕망을 학습시키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부가 대물림되기 위해서 욕망의 대물림은 필요충분조건이다.

본인의 잔소리에도 요지부동인 아이들에게 차민혁(김병철)은 급기야 피라미드를 거실에 들여놓으며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피라미드 꼭대기’의 삶을 강조한다.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사는 곳, SKY 캐슬의 상징성을 구체화 시키는 흉물스러운 도구가 아닐 수 없다. 욕망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성(城), 그곳에서 영혼은 실종됐다.

성공을 위해 영혼까지 팔아버리려는 자들에 대한 비판과 함께 누구나 잠재하고 있는 출세에 대한 욕망의 동조, 그리고 그들만의 리그에 구경꾼으로 편입된 후 느끼게 되는 럭셔리한 삶에 대한 동경까지, 이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느끼게 되는 복잡 미묘한 여러 감정들은 선(善)을 향하지도, 그렇다고 악(惡)을 정당화 시키지도 못한다.

‘스카이 캐슬’의 영향으로 잘 나가는 입시 코디네이터를 찾는 학부모가 급증했으며, 일명 예서 책상으로 불리는 스터디 큐브는 200만원이 넘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린단다. 서울대 의대를 가기 위해 예서(김혜윤)를 가둬놓는 또 하나의 성(城)에 자신의 자녀들을 가둬둘 셈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른바 성공을 위한 욕망 흉내 내기. 우리 모두는 승자독식사회를 지극히 혐오하지만 어쩌면 이제 그것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갖는 승자가 나 자신이 되기를 맘 속 깊이 소리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드라마는 마지막 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현실의 한 축이라면 그래도 결말은 끝까지 마지막 남은 ‘선(善)’으로 봉합되어야 하지 않을까? 욕망도 인간의 본성이지만 선(善)에 대한 의지도 그러한 것이기에.

 

●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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