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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신정원 기자] 이쯤 되면 '악역의 달인'이다. SBS '아내의 유혹'(2008) 신애리를 맡으며 독보적인 악녀 캐릭터를 구축한 배우 김서형은 JTBC 'SKY 캐슬' VVIP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 역을 통해 '국민 악역' 타이틀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한 올림머리, 무채색 정장이 합격률 100%를 자랑하는 김주영을 완벽히 표현해내며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경신한 것. 더군다나 '어머니,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감수할 수 있겠습니까', '혜나를 댁으로 들이십시오' 등의 대사는 패러디 열풍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뻔한 악역임에도 미워할 수 없는 것이 그 이유다. 역대급 나쁜 여자를 만들었지만,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김서형. 그는 "10년 만에 전성기가 올 줄 몰랐다"며 극에선 볼 수 없던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김주영'을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혜나를 집으로 들이라고 한 다음부터는 멘붕이었다. 다음 대본을 받기 전까진 앞으로의 전개를 모르니까 답답했다. ‘혜나를 들이고 김주영이 뭘 더 하지?’라는 건 대본이 나와야 알 수 있으니까. 혜나를 들이고 다음 회를 찍으러 갔는데 아무리 해도 감정이 안 올라오더라. 전개를 알 수 없으니 답을 못 찾겠더라. 그러고 나서 다음 대본을 봤는데, 이전의 김주영 패턴이 또 있어서 그것도 걱정이 됐다. 반복적인 전개에 시청자분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께서 '찍으면서 답을 찾자'해서 믿고 들어갔는데, 어느 순간 제가 알아서 연기를 하고 있더라. 그냥 그게 김주영이었던 거 같다."
 
-무채색 스타일, 올림머리는 애초에 설정된 콘셉트였나.
"'감수하시겠습니까' 대사를 보고 사극도 아닌 이 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생각했다. 현대물처럼 던지면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어서. 그래서 스타일링을 먼저 잡고 리허설을 했더니 '로봇연기'가 답이더라. 색상도 '블랙'으로 가자고 먼저 제안했다. 너무 한 옷 같지만 않아달라고 부탁했다. 감정선에 따라 가죽, 실크 등 원단을 다르게 선택해 입었다. 같은 검은색이지만 피팅만 4시간씩 걸렸던 기억이 난다. 올림머리는 흐트러짐 없는 성향이랑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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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내내 울면서 김주영을 바라봤다던데. 무슨 의미인가.
"종방연 때 작가님께 '절 너무 과대평가하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초한지'에서는 이덕화 선생님을 주사기로 찌른다던가 하는 악행을 저지르는 표현이 많았지만, 김주영은 모든 걸 감추고 사는 여자다. 왜 내가 다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주의자는 아니지만, 이전에 했던 캐릭터와 비슷해 보이기 싫었다. 냉소 짓는 게 나와서 씩 웃었더니 신애리 같아 보여서, 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비슷한 점이 드러날 수 있겠지만, 답습하기 싫었다. 저 혼자만의 트라우마였다. 작가님께 죄송한 말이지만, 어느 순간 김주영을 더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있다."
 
-'김주영 패러디'가 열풍이다. 본 적 있나.
"'감수하시겠습니까'. 사실 이 대사할 때가 가장 어려웠다. 긴장을 많이 했다. 한서진(염정아)을 내려다보는 느낌을 어떻게 줘야 할까 생각했다. 동선에 (한서진)어깨를 만지는 건 없었는데, 일부러 만진 거다. 정아 언니가 아무리 무릎을 꿇어도 제 기가 더 눌리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디테일까지 생각해야 했다.(웃음) 사람들이 열광하는 게 목소리 톤, 제스처 등도 있겠지만, 외모적인 마케팅도 잘 한 거 같다."
 
-'아내의 유혹' 신애리 다음으로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는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전성기가 10년 만에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김주영은 정말 어려웠다. '기황후', '자이언트', '샐러리맨 초한지'와 비슷한 신들이 있어서 연기할 땐 어렵지 않았는데, 뛰어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다.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 현실의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것처럼 표현해야 하는 게 괴로웠다. 또 제가 몽타주로 나왔을 땐 제 에너지를 폭발시켜야 했다. 케이가 탄 차를 쫓아갈 때도 소리를 엄청 지르면서 감정을 폭발시켰다. 신마다 요소가 극대화돼 있어 완급조절이 힘들었다."
 
-가장 눈에 띈 아역배우를 꼽자면.
"일단 예빈(이지원)이는 극 중 역할도 그렇지만, 실제로도 어른스러운 면이 있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 나왔을 때부터 팬이다. 처음엔 그 친구인 줄 몰랐는데, 알고 나서 깜짝 놀랐다. 영재(송건희)도 연기한지 얼마 안 됐다고 했는데, 감독님이 캐스팅을 잘 하신 건지, 왜 이렇게 잘하나 싶었다. 혜나(김보라)도 준비를 잘 해왔다. 하나 흐트러짐 없이 연기해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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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 지적이 있었다. 알고 있나.
"'아'와 '어'에 대한 발음이 뭉개진다, 시옷 발음이 샌다는 등의 지적을 많이 받았다. 인정한다. 늘 '발음에 더 신경 써야지'라고 다짐하고 촬영에 임하는 데 잘 안될 때가 있다. 호흡의 문제가 크다. 최대한 안 들키고 싶었지만, 잠을 못 자거나 밥을 못 먹는 날엔 티가 난다. 대사 전달도 중요하지만 느낌, 감정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다. 그럼에도 노력하는 부분이다."
 
-충직한 비서 조선생 역의 이현진 씨에게 한마디 한다면.
"외로운 사람들끼리 잘 버텨줘서 고마울 뿐이다. 19회 때 그나마 웃으면서 사진 찍었다. 그전까지는 말을 못 걸겠더라. 걸어도 '밥 먹었어?' 이 정도였다. 서로 지켜주는 마음을 유지하고 싶었다. 케이랑 만났을 때도 저한테 '엄마', '선배님 어땠어요' 묻는데, '더 아는 척하지 말자'라고 했다. 왜냐면 극에서 케이를 멀리서 지켜보는 입장이니까. 연기할 때 항상 그렇다. 캐릭터랑 부딪힐 때 공유를 많이 안 한다. 그래서 '섭섭해하지 마. 끝나고 많은 얘기 나누자'라고 했었다. 다들 외로웠을 텐데 옆에서 잘 지켜줘서 고마웠다."
 
-센 캐릭터로 각인돼서 차기작에 부담을 느낄 것 같다.
"사실 개인적으론 센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 악역 중에 '이리 와 안아줘' 박희영 빼고는 다 사연이 있는 캐릭터였다. 김주영도 어떻게 보면 한 많고 불쌍한 인물이다. 연기를 하고 나면 '나한텐 왜 이렇게 고독한 역할만 들어올까' 생각이 들면서 같이 우울해진다. 이렇게 많이 운 건 처음이다. 새벽 3~4시에 동네를 걸어 다니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다. 부담에 대한 고민은 없는데, 과대평가만 안 하셨으면 좋겠다.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가 다음에 또 들어와도 다르게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다."

신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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