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야기는 늘 진리다. 행복으로 시작해서 때로 불행한 종착역에 다다를지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영화 속 사랑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뻔한 스토리인데도 그저 마냥 부럽기만 하다. 누군가 그랬던가.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그런데도 애써 괜찮은 척 하기가 힘들다.

언제부턴가 지인들 사이에서 혼영(혼자 영화보기)의 아이콘이 돼버린 지 오래다. 늘 커피 한잔을 들고 극장을 찾곤 했는데 오늘은 그 쌉싸름한 맛보다 달달한 팝콘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촉각으로 전달되는 달콤함을 대신할 대체재를 미각에서 찾는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은 안쓰럽다. 왜 난 그 뻔한 스토리 하나 만들지 못할까 싶은 생각으로 보게 된 영화 ‘아이스’. 그 뻔함에 집중하고 유쾌한 기분에 부러움 만렙 상태로 미소 지으며 극장을 나서게 하는 꽤 괜찮은 팝콘무비다.

영화 ‘아이스’ 스틸 컷

일찍이 재능 없음 판정을 받았지만 “넌 챔피언이 될 거야”라는 엄마의 마법이 담긴 응원을 믿고 최고의 피겨선수가 된 나디아(아글라야 타라소바), 그리고 그녀의 파트너로 오로지 아이스컵 우승이 인생 최대목표인 레오노프(밀로스 비코비치). 경기 중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더 이상 피겨무대에 오를 수 없게 된 나디아는 그에게 매정하게 외면당하지만 똘끼 충만한 아이스하키 선수 샤샤(알렉산더 페트로브)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다시 선수로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급기야 샤샤와 나디아, 두 사람은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예상 가능한 결말의 러브 스토리지만 세 사람의 청춘이 그려내는 사랑과 배신이 각기 다른 캐릭터로 재미를 더하고, 나디아를 최고의 선수로 조련해주는 코치 샤탈리나(마리아 아로노바)의 때로는 무섭지만 또 때로는 코믹한 연기는 극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데 손색이 없다. 캐릭터 저마다의 각기 다양한 매력이 긴장과 이완을 통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일단 ‘아이스’는 왠지 무겁고 진지할 것 같은 러시아 영화에 대한 선입견에서 과감히 탈피한 작품이다. 뮤지컬과 스포츠, 로맨스가 결함돼 시종일관 장르 특유의 에너지가 넘쳐난다. 게다가 남녀 주인공들의 훌륭한 비주얼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뮤직비디오와 CF 감독출신인 ‘올레그 트로핌’ 감독은 지루할 틈 없이 스토리를 빠르게 전개해 나간다. 샤샤와 나디아의 만남과 재기, 사랑의 공간이 되어 준 바이칼 호수의 멋진 풍광과 경기에 임할 때 나디아가 선보이는 독특한 분장, 블루톤의 조명과 고난이도 기술이 접목된 화려한 아이스쇼는 보는 내내 황홀감을 선사하며 영화가 갖는 시각예술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또한 러시아의 아카데미라고 할 수 있는 ‘골든 이글 어워드’에서 ‘음악상’을 수상한 작품답게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어우러져 작품의 맛을 더해준다. 나디아가 역경을 극복해나가는 재활 프로그램 장면은 샤샤가 부르는 ‘Do like me’의 랩과 춤이 더해지면서 코믹하고 흥겹다. 예상 가능했던 눈물겨운 장면에 대한 재해석이다. 복귀 경기에서 레오노프에게 버림 받고 홀로 슬픔에 빠져있는 나디아에게 기적처럼 나타난 샤샤와 이 두 사람의 무대를 위해 기꺼이 노래를 불러준 관객들의 모습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판타지라는 해석보다 가슴 뭉클한 정서가 먼저 와 닿는 멋진 장면이다. 음악은 사랑이라는 감성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나디아와 샤샤의 뜨거운 키스로 해피엔딩을 이뤘으니 내년에 제작될 속편에서는 본격적으로 샤샤의 피겨선수 도전기가 한층 더 깊어진 사랑과 버무려지면서 아름답게 그려지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어쨌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동화에서나 가능한 결말이 이 영화는 참으로 잘 어울린다.

상남자 샤샤의 매력에 푹 빠지든 아름다운 나디아게 반하든, 영화 ‘아이스’는 이 겨울 동면(冬眠) 중인 당신의 연애세포를 깨워줄 알람시계가 돼 줄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 현재진행형이라면 ‘우리도 그들처럼’을 꿈꾸게 될 것이다. 물론 현실과 영화는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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