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을 읽고,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에 빠져 즐거웠던 때가 내게도 분명 있었는데, 사실 그게 언제쯤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동심(童心)이 자라나 어른의 눈을 갖기 시작하면서 불행하게도 차츰 순수함을 부정하게 된다. 아마도 그건, 그것이 세상 살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체득했기 때문일 터. 현실을 떠난 모든 건 불필요한 것이기에 상상의 눈은 닫혀 버리고, 웃음을 잃은 무거운 표정만이 남는다. 세상 살기 힘들다는 푸념과 함께. 삶의 무게에 짓눌려버린 어른은 그래서 행복하지 않다.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는 그런 현실에서 잠시 우리를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1930년대 대공황 시대, 대출받은 은행 빚을 갚지 못해 정들었던 집을 빼앗길 처지에 놓인 가장 마이클(벤 위쇼)의 막막한 삶만이 현실과 맞닿아 있다. 어린 삼남매와 불가능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보모 메리 포핀스는 판타지의 세계와 현실을 오가며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를 흥겹게(!) 해결해낸다.

‘메리 포핀스 리턴즈’ 스틸 컷

1964년 실사와 애니매이션이 최초로 결합된 영화였던 ‘메리 포핀스’는 55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더욱 화려해진 볼거리로 업그레이드 시켜 ‘메리 포핀스 리턴즈’로 귀환했다. 단순히 원작에 대한 오마주에 그치기에는 이미 ‘최초’라는 수식어가 부담 됐을 이 영화는 실사, 2D 애니메이션, 3D 컴퓨터 렌더링 기술을 모두 사용하며 진일보한 과학기술로 작품의 수준을 향상시켰다. 매장면마다 제작진의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다. 과학과 예술의 결합으로 관객의 눈은 즐겁다. ‘시카고’를 연출했던 ‘롭 마샬’ 감독은 뮤지컬영화라는 장르 영화에 특화된 연출자임을 이번에도 여지없이 증명해냈다.

전작의 ‘줄리 앤드루스’가 연기했던 따뜻한 감성의 메리 포핀스는 ‘에밀리 블런트’가 맡아 시크하고 단호하지만 속정 깊은 캐릭터로 재탄생됐다. 이 둘의 캐릭터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춤과 노래에 이토록 재능이 있었나 싶을 만큼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는 에밀리 블런트의 변신이 놀랍다. 또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배우 ‘메릴 스트립’은 메리 포핀스의 사촌 톱시 역으로 분해 독특한 러시아 억양과 이미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에서 검증된 노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열연을 펼친다. 작은 배역에도 이름값 톡톡히 하는 신스틸러다.

현실에서는 참 어려운데, 판타지의 세계에서 ‘권선징악’은 놀랍도록 선명하게 실현된다. 악독한 은행장(콜린퍼스)은 은행에서 쫓겨나고 마이클과 아이들은 집을 되찾는다. 영화 시작부터 짐작했던 해피엔딩은 등장인물들이 풍선을 타고 날아오르는 장면으로 아름답게 승화된다. 동심(童心)을 찾은, 정확히 말하자면 동심을 믿게 된 어른들을 상징적으로 연출해낸 동화 같은 장면이다.

마법을 기대하기엔 녹록치 않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기에 온갖 마법이 다 통용되는 2시간이 좋았다. 그렇게라도 가끔은 머리 아픈 이곳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긴장 가득한 현실의 정신줄을 놓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불가능한 것이 더 많다고 믿게 된, 나를 비롯한 모든 어른들을 다독이는 메리 포핀스의 주문도.

“모든 것이 가능해, 불가능까지도!”

 

● 권상희는 동덕여대 방송연예과와 국민대 대학원 영화방송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2년부터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등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했고, 고구려대학 공연예술복지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한 뒤 문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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