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원(가운데)이 2일 도르트문트와 경기에서 골을 터뜨린 뒤 기뻐하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 홈페이지 캡처

[한국스포츠경제=심재희 기자] "지동원을 왜 대표팀에 뽑는지 잘 모르겠다." 친한 후배기자와 축구 이야기를 하다가 지동원의 대표팀 발탁을 두고 여러 차례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후배는 지동원의 특별한 강점을 잘 모르겠다고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필자의 판단은 달랐다. "공격수로서 지동원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많다."

지동원이 오랜만에 대형사고를 터뜨렸다. 2일(이하 한국 시각) 독일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멀티골을 폭발했다. 아우크스부르크 소속인 그가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골문을 폭격했다. 혼자 두 골을 몰아치며 2-1 승리의 주역이 됐다. 최근 3경기 연속 공격포인트(3골 1도움). 골을 기록한 상대가 독일 분데스리가 최고명문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라 더 고무적이다.

개인적으로 지동원의 플레이를 처음으로 유심히 본 건 2010년 12월 30일 시리아와 A매치다. 당시 지동원은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폭발했다. 후반전 들어 손흥민과 함께 교체 투입되어 후반 38분 결승골을 작렬했다. 유병수의 패스를 받아 슈팅 페이크로 수비수 한 명을 따돌린 뒤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시리아 골 네트 상단을 갈랐다. 섬세한 볼 터치, 간결한 드리블, 정확한 슈팅이 모두 돋보였다. 만 19살이었던 지동원은 2011년 아시안컵에서 4골을 터뜨리며 한국이 3위를 달성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2011년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로 떠나기 전 K리그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는 지동원을 직접 본 적이 있다. 전남이 치른 K리그 경기를 중계하면서 더 가까이서 지동원의 플레이를 관찰할 수 있었다. 중계석에서 바라본 지동원의 위력은 대단했다. 오프 더 볼 상황에서 상대 뒤 공간을 파고들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고, 동료와 호흡도 매우 좋았다. 패스의 정확도, 스피드, 슈팅력, 수비 가담력도 수준급이었으며 침착한 돌파와 마무리로 골까지 뽑아냈다. 약관의 나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모든 부분에서 좋은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육각형 공격수'의 자질을 잘 갖췄다고 느꼈다.

축구가 진화하면서 공격수 스타일도 많이 바뀌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센터포워드들은 중앙에서 득점을 터뜨려주는 임무만 맡았다. 윙이나 미드필더들의 크로스와 패스를 받아 해결하는 게 공격수 능력의 척도였다. 때문에 1990년 초반 이전까지 센터포워들은 대부분 수직적으로 움직였다. 피지컬이 좋고 공중볼 싸움에 능하며 슈팅력을 갖춘 선수가 좋은 공격수로 통했다.

1990년대 말쯤부터 윙포워드 개념이 생겨나면서 기존의 센터포워드들은 힘을 쓰기 어려워졌다. 수직 움직임만 하면서 중앙에서 해결하는 공격수의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윙들이 인사이드 커터 형태로 꺾어 들어와 득점을 하고, 여러 선수들이 상대 골문 근처에서도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골을 노리는 팀이 많아지면서 과거의 센터포워드들은 살아남기 힘들었다. 수직 움직임보다 대각선과 가로로 뛰면서 전방위 움직임을 가져가는 '연계형' 공격수가 대세를 이뤘다. '가로본능'을 갖춘 센터포워들이 팀 내 주축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제 '센터포워드'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 원톱이든 투톱이든 스리톱이든 더 폭넓게 움직이면서 패스도 하고 골도 넣고 수비도 하는 공격수만 살아남는다. 축구가 발전하면서 공격이 더 다양해졌고, 포워드들의 능력도 업그레이드 됐다. 현대축구의 유능한 공격수들은 중앙, 측면, 셰도까지 자리를 가리지 않고 변신할 수 있다. 완성도와 파괴력에서 월드 클래스에는 못 미치지만 지동원은 현대축구 공격수의 기본을 모두 잘 갖췄다.

유럽에서 9년째 생활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부족한 부분과 숙제도 있지만 지동원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다. '지동원'에 대해 의견이 갈린 후배에게 다시 뜻을 전달하면서 글을 맺는다.

"지동원이 기록한 굵직한 한방(A매치 시리아전, EPL 시절 맨체스터 시티를 무너뜨렸던 골, 2012 런던올림픽 8강 영국전 득점, 최근 도르트문트전 멀티골 모두 왼발 피니시)을 떠올려 보면 '왼발 골'이 많다. 기본적으로 양 발을 다 잘 쓰고, 공격 마무리 시점에 침착하면서도 과감하다. 상대를 압도할 만한 스피드와 파워를 갖추고 있지 않은 듯해 애매하게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팀에 플러스를 안길 줄 아는 선수다. 벤투호에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다만, 리그든 대표팀이든 좀 더 꾸준한 활약을 보였으면 좋겠다."

심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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