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스타의 정원 풍경.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만일 꼭 유통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적어야겠다.'

트드드드드드드드드…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조용히 음악이 깔리기 시작한다. 마마스앤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1965)이다. 덤덤하고 일견 경쾌하게도 들리는 멜로디에 입힌 고독한 가사. 잿빛 뉴욕의 하늘 아래서 캘리포니아의 푸르름을 꿈꾸는 이 노래를 모르는 이들은 많이 없을 것이다. 이 같은 노래의 유명세 뒤에는 영화 '중경삼림'이 있다.

왕가위 감독의 1994년작 '중경삼림'은 감각적인 연출로 여전히 많은 젊은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목적과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의 단상은 시대를 뛰어 넘어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다. 기억의 유통기한을 이야기하는 '중경삼림' 속 경찰 223의 독백은 한 편의 영화가 남기는 여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명작은 유효기간 없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계속 그 자취를 남긴다.

'중경삼림' 촬영지인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1980~1990년대 홍콩 영화계는 그야말로 전성기였다. '영웅본색', '무간도' 등 새로운 공식의 액션 영화들이 인기를 끌며 '홍콩 누아르'라는 장르가 탄생했고, '아비정전', '중경삼림'의 왕가위처럼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사이를 미묘하게 줄타기하는 개성 있는 영화인들도 여럿 빛을 봤다.

1,000만 영화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국내 영화계도 한 때는 홍콩의 빛에 가려져 있었다. 전성기 시절 홍콩 영화계의 활약은 아시아 내에서 두드러졌다. 많은 국내 영화인들이 이 때의 홍콩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는다. 비록 이젠 침체기에 접어들어 있지만 그 시절 홍콩 영화를 여전히 많은 이들은 그리워하고 있으리라.

홍콩 영화에 대한 향수를 지닌 이들에게 홍콩은 반가운 여행지다. 시내 곳곳에서 다양한 작품의 흔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센트럴과 미드레벨을 잇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교통 체증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만들어졌지만, 때로 그 보다는 '중경삼림'의 추억을 더듬는 여행객들의 발길로 더 붐빈다. 약 800m에 달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주위 풍경을 구경하노라면 어느 샌가 '중경삼림'에서 이 에스컬레이터 옆에 있던 경찰 663(양조위)의 방을 찾게 된다.

황후상 광장 풍경.

'영웅본색' 역시 홍콩 영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영웅본색' 속 소마(주윤발) 덕에 왕년에 트렌치 코트에 이쑤시개 좀 씹었던 이들이 어디 한, 둘일까. 주윤발이 트렌치코트를 멋들어지게 입고 폼 좀 잡는 장면은 홍콩의 황후상 광장에서 촬영됐다. 황후상 광장은 사방이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사이에서 물길을 졸졸 뿜어내는 분수대와 그 주위에 앉아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현지인들의 대비가 묘한 감상을 자아낸다.

공사하고 있는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
스타의 정원에서 볼 수 있는 홍콩 영화인들의 핸드프린팅.

침사추이의 바닷가를 따라 난 해안 산책로에서는 양조위, 오우삼, 이연걸, 홍금보 등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스타들의 핸드프린팅을 만날 수 있다. 이 일대는 '스타의 거리'라 불리고 있는데, 아쉽게 올해 상반기까지는 공사 관계로 출입하기 어렵다. 대신 스타들의 손도장과 사인은 언덕 위에 마련된 스타의 정원으로 옮겨졌다. 푸른 바다, 높은 빌딩, 영화 촬영 현장을 형상화한 동상 등도 모두 스타의 정원에서 만날 수 있다. 좋아하는 스타의 손도장에 자신의 손을 대어볼 수 있는 건 덤이다.

사진=정진영 기자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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