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과거 농협 및 지방은행들이 차지하고 있던 시·군·지자체 금고에 시중은행 진출
4대 시중은행. /사진=각 은행 로고

[한스경제=권혁기 기자] 올해 '금고지기'를 재계약하는 지방자치단체가 50여곳에 달해 은행간 쟁탈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과도한 출연금 경쟁으로 '제 살 깎아 먹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8일 금융권과 각 지자체에 따르면 올해 금고를 바꿀 지자체는 대구시, 울산시, 경상북도, 광주 동구·서구·북구, 전북 전주시, 김제시, 부산 동래구 등 50여개다.

은행들은 지자체 금고를 운영하기 위해 지역사회기여 및 자치단체와 협력사업 명목으로 출연금을 제시하는데 돈이 많은 은행들이 자금력으로 '판'을 흔들고 있다.

그동안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이 수도권, 지방은 NH농협은행과 '토박이' 은행들이 금고지기를 맡아왔다. 하지만 지난 2012년부터 금고 지정방식이 공개입찰로 바뀌며 변화가 발생했다. 행정안전부(당시 행정자치부)는 2015년 '지방자치단체 금고지정 기준' 예규를 일부 개정하면서 4대 시중은행들이 지방 금고 진출에 물꼬를 트게 됐다.

◆ 시중은행이 지자체 금고를 원하는 이유

대부분 지자체는 1금고와 2금고로 나눠 운영한다. 1금고에는 모든 세수인 일반회계 분야, 2금고는 특별·기금회계 등 특정분야가 담겨 있다. 정부 교부금, 지방세, 기금 등이 들어오며 세출, 교부금 등의 출납 업무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각 지자체별로 4조~6조원 규모의 예산을 갖고 있어 큰 예산을 안정적으로 예치, 관리한다.

지자체 금고에 선정되면 주거래은행 자격이 주어져 지자체 공무원 및 가족들이 고객으로 편입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는 243곳이다. 그중 신한은행이 23개, 우리은행이 18개, 하나은행이 15개, 국민은행이 12개의 지자체 1금고와 2금고를 맡고 있다.

농협은행은 150여곳의 지자체 금고를 독점 하고 있다. 지난해 농협은행은 출연금 및 협력사업비 명목으로 538억 7800만원을 지출했다.

그러나 지난해 국민은행이 광주광역시 광산구 금고 선정에 출연금 64억 4000만원을 제시하면서 20억원을 써낸 농협은행을 제치고 30년 만에 금고지기가 됐다.

이에 농협은행은 입찰 절차에 심의위원 명단이 유출되는 등 공공성과 공정성이 침해됐다며 광산구를 상대로 계약체결절차 이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결국 법원은 해당 사건에 대한 판단이 나올 때까지 계약 체결을 미루라고 명령했고, 2금고를 따낸 광주은행도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2금고 계약 또한 미뤄지고 있다.

광산구 관계자는 "농협이 조건부 재심의를 주장하는 사이 광주은행까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면서 상황이 여러모로 꼬여버렸다"며 "현재로서는 종전 계약을 연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1도 1행 원칙에 자리 잡았던 지방은행들

1960년대 5·16 군사정부 시절 '1도 1행 원칙'에 따라 10개의 지방은행이 영업을 시작했다. 금융업무의 지역적 분산과 지역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다 1998년 외환위기와 함께 IMF(국제통화기금)가 요구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 8% 미만인 부실은행들의 구조조정으로 다수의 은행들이 하나로 합쳐졌다.

강원은행과 충북은행이 조흥은행으로 변모했고, 동화은행은 1982년 설립된 신한은행에 흡수됐다.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이 하나로 뭉쳐 현(現) 신한은행이 됐다.

우리은행은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쳐진 한빛은행이 다시 평화은행과 한지붕을 쓰면서 2002년 지금의 상호로 변경했다.

KEB하나은행은 충청은행, 보람은행, 서울은행, 외환은행이 합쳐졌다. 장기신용은행, 대동은행, 동남은행, 주택은행은 KB국민은행으로 재탄생했다.

현재 지방은행으로는 BNK금융지주 부산은행·경남은행, JB금융 전북은행·광주은행, DGB금융 대구은행, 제주은행(신한금융지주 자회사)이 있다.

시중은행 중 흡수합병한 지방은행을 바탕으로 신한은행이 강원 2금고와 충북 2금고를 맡았다. 하나은행은 대전 1금고와 충남 2금고 등을 담당했지만 대부분 지자체 금고는 농협 또는 지방은행 차지였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국민은행은 광주은행이 운영하던 광주 남구, 전북은행이 맡았던 전북 군산시 금고 등을 차지했고, 신한은행은 대구은행을 대신해 경북 안동시 금고 출납을 담당한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출연금으로 3000억원을 써내 우리은행이 1915년부터 유지한 서울시 1금고를 맡게 됐다. 이로 인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다.

6개 지방은행들은 시중은행들의 지자체 금고 유치에 반발하고 있다. /사진=각 지방은행 로고

◆ 과도한 출연금 경쟁, 은행 제 살 깎아 먹기

2015년 지자체 금고 선정 평가기준으로 ▲금융기관의 대내외적 신용도 및 재무구조의 안정성(30점) ▲자치단체에 대한 대출 및 예금금리(15점) ▲주민이용 편의성(18점) ▲금고업무 관리능력(19점) ▲지역사회기여 및 자치단체와 협력사업(9점) ▲기타사항(9점)이 제시됐다. 지역사회기여도 배점이 낮아지고 은행의 경영능력에 대한 점수 비중이 높아졌다.

하지만 출연금 명목인 지역사회기여 및 자치단체와 협력사업 외에 항목은 대부분 비슷한 수준이라 변별력이 없어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다.

이에 지난 11일 부산·대구·광주·제주·전북·경남은행 등 6개 지방은행 노사 대표가 지자체 금고지정 기준 개선 때 지방은행 입장을 배려해 달라는 공동 호소문을 발표했다.

지방은행들은 "최근 일부 시중은행이 출연금을 무기로 지방 기초자치단체 금고 유치에 나서고 있다. 출연금의 많고 적음에 따라 결정되다시피 하는 현 자치단체 금고지정 기준은 개선돼야 한다"며 "시중은행이 지방자치단체 금고로 선정되면 공공자금이 역외로 유출돼 지방에는 자금 혈맥이 막히고 지역 경제는 더욱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중은행의 지자체 금고 운영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출연금으로 지자체 금고지기로 선정되는 게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지방은행의 지자체 금고 독점이 지속돼 왔기 때문에 지역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는 입장도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자격이 주어진다면 어떤 은행이든 지자체 금고에 진입할 수 있는 자율경쟁의 시대"라면서도 "출연금을 많이 지출할수록 지방 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장점도 있지만 과도한 출연금 경쟁은 결국 은행들의 제 살 깎아 먹기가 되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권혁기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