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27일 대한항공 제57기 정기 주주총회 개최
조양호, 주주 손에 밀려난 첫 총수 '불명예'
KCGI, 한진칼에 공격할 명분, 정당성 얻나

[한스경제=강한빛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핵심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사내이사직에서 내려오게 됐다. 주주 손에 물러나는 첫 총수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 그가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이다.

 

그래픽=이석인 기자

◆20년 공든 탑, 2.6%p에 무너졌다

대한항공은 27일 오전 대한항공 본사에서 제57기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 등 4개 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은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찬성 비율이 반대 비율보다 월등히 높음에도 스스로 만든 ‘정관’에 발목이 잡혔다.

대한항공 정관은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관에 따라 조 회장이 연임되기 위해선 찬성 66.6%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표결 결과 찬성 64.1%, 반대 35.9%로 2.6% 남짓한 지분을 확보하지 못해 연임안은 부결됐다. 조양호 회장이 이사회에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3분의 2’ 정관이 오히려 경영권을 잃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편 이날 주총에서는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제외한 재무제표 승인, 정관 일부 변경, 이사보수한도 승인 등 나머지 안건은 모두 원안대로 통과됐다. 조양호 회장과 함께 이사 선임 안건에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렸던 박남규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예정대로 선임됐다.

그래픽=이석인 기자

◆'땅콩 회항'에서 조 회장 퇴출까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대한항공의 최대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오너 일가의 도덕성 문제와 ‘갑질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며 조 회장에 대한 여론이 갈수록 싸늘해졌기 때문. 특히 주총 하루 전날 대한항공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보태며 결정타를 날렸다. 외국인과 기관, 그리고 소액주주들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섰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과 한진칼(29.96%) 등 특수관계인이 33.3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서 국민연금이 2대 주주로 11.5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이 20.50%, 기관과 소액주주 등 기타 주주 34.59% 순이다.

국민연금은 주총 하루 전날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열어 조 회장의 대한항공의 총수 일가는 2015년 '땅콩 회항' 사건에서 시작해 '물컵 갑질' '대학 부정 편입학' '폭행 및 폭언' 등 각종 사건에 연루되면서 주가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현재 조 회장은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앞서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은 조 회장의 재선임 안에 반대투표를 권고했다. 이외에도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직원연대 등도 반대에 동참했다. 참여연대는 조 회장의 연임 반대를 위한 의결권 위임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KCGI와 한진그룹/사진=연합뉴스TV

◆‘촛불혁명’과 ‘유감’ 사이…29일 한진칼 주총은?

이번 주총 결과를 두고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의결권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는 "역사적 사건"이라며 "그야말로 국민들이 주인인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이 힘을 합쳐 대한항공의 잘못된 경영을 바로잡은 자본시장의 촛불혁명"이라고 말했다.

한편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유감을 표했다. 배 전무는 “그동안 조 회장이 대한항공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해 왔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은 결정으로 판단된다”며 “사법부가 판결을 내리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대원칙에도 반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번 결과로 오는 29일 열리는 한진칼 주주총회에 시선이 모아진다. 한진그룹은 '한진칼→대한항공·한진(자회사)→손자회사→오너일가'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한진칼은 현재 표 대결을 부담을 덜은 상황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국내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주총 안건으로 요구한 주주제안에 대해 한진칼 주식 보유 기간이 상법에 규정된 6개월이 안 된다는 이유로 주주제안에 제동을 걸었다. 따라서 이번 주총 결과는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제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진칼과 KCGI의 대결이 장기전으로 이어진다는 평이 우세하다. 'KCGI 1호 펀드'의 경우 환매 제한을 10년, 최장 만기를 14년으로 맞춰 '단기 수익보다는 경영개선을 통한 장기적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항공 주총에서 그룹 총수인 조 회장이 강제 퇴출됨에 따라 KCGI의 비판과 공격에 명분과 정당성이 더해졌다는 게 시장 안팎의 해석이다.

강한빛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