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플레이 제공

[한스경제=신정원 기자] 박찬욱 감독이 영화가 아닌 드라마 연출가로 관객을 만났다. 왓챠플레이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이 바로 그의 첫 TV시리즈물이다.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은 존 르 카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1979년 이스라엘 정보국의 비밀 작전에 연루되어 스파이가 된 배우 찰리(플로렌스 퓨)와 그녀를 둘러싼 비밀 요원들의 숨 막히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 스릴러다. 지난해 영국 BBC와 미국 AMC에서 방영된 방송판에서 시간 제한, 방송 심의에 따라 제외된 장면들을 포함해 재연출한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은 소설을 읽자마자 매혹적인 이야기에 빠졌다며, 방송판에 못 담은 흥미로운 장면들을 감독판에 담았으니 기대해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리틀 드러머 걸', 영화가 아닌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일단 시간이 문제였다. 130분 영화 분량에는 도저히 넣을 수 없는 스토리였다. 그래서 TV나 스트리밍서비스 등 새로운 플랫폼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거부감이 없던 건 아니다. 드라마를 선택하면서 희생도 따랐다. 극장 상영을 포기하는 건 뼈를 때리는 고통이다. 극장 상영은 웬만하면 잃고 싶지 않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둘러싼 다국적 갈등을 그린다는 게 외국인 입장에서 다루기 어려웠을 텐데.
"제작사인 영국 BBC나 미국 AMC가 나를 감독으로 최종 선택할 당시 분단 국가라는 출신 배경과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크게 작용한 듯하다. 외부인이기에 더욱 객관적이고 날카롭게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끝없는 분쟁, 뭔가 하나 공격하면 더 크게 앙갚음하는 폭력의 악순환은 한반도에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동병상련이 있었다. 이들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실수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도 하고, 인터뷰 등으로도 자문을 구해 만들었다."
 

왓챠플레이

-방송판과 감독판, 가장 핵심적 차이는 무엇인가.
"찰리의 시계 달린 라디오를 중요하게 봐야 된다. 배터리와 관련된 신이 나오는데,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다. 감독판은 플래시백(과거 회상)으로 편집하고, 방송판에서는 현재 시제로 편집을 했다. 그 차이가 결정적으로 다르다. 또 로맨스 장면을 많이 넣었다. 두 남녀 사이에 원작 보다 유머도 있고, 따뜻하고 달콤한 감정을 넣었다. 찰리와 어떤 남자 사이에 정사 장면이 있는데, 그것을 지켜보는 베커의 장면이 클래이막스이기도 하다. 베커가 의도해서 만든 환경이기 때문에 찰리가 그렇게 하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연인으로서는 마음이 찢어지는 순간일 것이다.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경계, 거기서 그려지는 복잡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모습은 원작엔 없는 장면이다."
 
-류성희 감독이 아닌 '팅거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의 마리아 듀코빅 미술 감독과 호흡을 맞춘 소감은 어떤가.
"영화 미술은 배우가 놓인 환경 전체를 디자인하는 일이 아닌가. 장소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미술 감독의 일이 시작된다. 산도 여러 산이 있고, 하나의 산에도 여러 개의 봉이 있다. 어딜 선택하느냐가 이 영화의 성격을 좌우한다. 그러고 나서 그것을 꾸미는 일이 진행된다. 하나를 더 한다면 메이크업과 의상에도 콘셉트를 제공하고, 그것을 관찰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미술 감독의 일이다. 마리아 미술 감독의 미술은 '디 아워스' 때도 좋았고 '팅거 테일러 솔저 스파이' 땐 더 좋았다. 특히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속 영국 정보기관 MI6의 회의실이 감동적이었다. 마리아의 생각에서 꾸며진 회의실인데, 굉장히 독창적이다. 정보부원들도 재밌다고 하더라. 실제 함께 일해보니 '척하면 척' 손발이 잘 맞았다."
 
-의상 콘셉트나 색상에 신경을 많이 쓴 것처럼 보인다.
"70년대를 배경으로 그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대게 히피, 보헤미안 룩이 많았다. 우리는 79년을 배경으로 하니 그런 룩은 조금 자제하자고 했다.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런던에서 활동하는 젊은 배우라면 유행에 민감할 테니 80년대 룩을 미리 앞당겨온 설정을 뒀다. 일부 보헤미안적인 느낌은 남아있다. 또한 젊은이들의 이야기, 사랑 이야기가 담겼으니 다른 접근을 해보자 해서 '블록컬러'를 사용했다. 연출진끼리 만든 용어인데, 하나의 색을 통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옷, 실내장식, 벽 등에서 선명한 원색, 대담한 색을 쓰자고 했다. 극 중 가디 베커가 찰리에게 '대담한 색이 어울리는 것 같다'며 노란색 원피스를 선물하는데, 그것 역시 찰리의 대담함, 활력, 용기 등을 표현하는 것이다."
 

왓챠플레이

-플로렌스 퓨는 어떤 매력을 가진 배우인가.
"찰리라는 캐릭터를 생각했을 때 호기심, 용기, 대담성을 지닌 사람이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스파이라는 위험한 일에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그건 찰리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언제든지 이 일을 그만 둘 수도 있고, 빠져나갈 수도 있다. 빠져나간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다. 그런 상황을 봤을 때 플로렌스 퓨가 아니라면 '집에 가지 왜'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캐스팅 당시 이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저 친구라면 관객들이 의아함을 보이지 않겠다'라는 믿음이 생겼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영화 '아가씨'와 비교가 많이 될 것 같다. 본심을 숨기고 연기를 해야 하는 숙희와 찰리가 많이 닮았다.
"숙희도 그렇고 찰리도 본색을 숨겨야 하는 인물이다. (내가) 그런 걸 좋아한다. 자신의 진심을 감추고 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자신조차 모르는 상황이 놓이는 것.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차기작은 정해졌나.
"할리우드에서 작업하는 서부극과 국내 미스터리 수사물이 있다. 서부극은 남성중심적이고 폭력적인 성격의 작품이다."

신정원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