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혜빈 / ARK엔터테인먼트

[한스경제=신정원 기자] 가수로 데뷔해 연기자로 성공하기까지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배우 전혜빈은 '가수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이겨내기 위해 누구보다 혹독하게 작품에 임했다.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만 해도 방송 35편, 영화 6편이 넘는다. 꾸준히 필모그래피를 쌓으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넓힌 전혜빈은 이제야 자신에 딱 맞는 역할을 만났다. 그는 최근 종영한 KBS 2TV '왜그래 풍상씨'에서 5남매 중 유일하게 큰 오빠 마음을 헤아렸던 셋째 이정상 역으로 열연했다. 한층 더 성숙해진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며 호평을 받았다. 전혜빈은 "배우로 전향한 뒤 오로지 나 스스로만 믿고 차근차근 길을 걸어왔다. 내가 결정한 것들이 '잘 못된 게 아닐까', '나 혼자 뒤처진 거 아닐까' 후회한 적도 있지만, 결국엔 내가 선택한 일들이 맞았다는 걸 지금에서야 느낀다. 올해는 시작부터 기분이 참 좋다"고 웃음 지었다.
 
-유준상, 오지호, 이시영, 이창엽과의 남매 연기가 실감 났다.
"연기였지만, 진심을 다해 역할에 몰입했다. 실제 형제처럼 치고받고 싸우고, 서로 문제를 해결해주다 보니 진심이 나오더라. 정말 울화통 터지고 슬프고 그랬다. 살면서 잘 겪어보지 못했던 감정이라 그런지 유독 더 정이 갔다. 가족이 어떻게 보면 사랑하지만 애증의 관계일 수도 있고, 다양하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족은 힘일까 짐일까' 생각을 많이 했다. 짐 같은 가족인 줄 알았더니, 그 가족이 모이면 힘이 되는구나라는 걸 촬영하면서 많이 느꼈다."
 
-유부남과의 불륜 때문에 오빠 유준상한테 머리를 맞는 장면이 있었다.
"너무 세게 맞아서 앵글 밖으로 튀어 나가고, 가방이 다 뒤집어져 NG가 났다. 스태프들이 뛰어와 '괜찮냐'고 하길래, '구급차를 대기시켜 달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어쨌든 연기 잘 끝내고 집에 왔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하더라. 자려고 보니까 머리가 엄청나게 부어있었다. 이틀 동안 베개를 못 베고 잤다. 미안했는지 준상 오빠가 계속 괜찮냐고 전화하더라. 미안해서 얘기 안 했지만, 너무 아팠다.(웃음)"
 
-캐릭터의 말도 안 되는 답답한 모습 때문인지 '막장 드라마'라는 말도 많다.
"삶의 우여곡절을 극대화해 드라마틱 하게 만들다 보니 막장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다 보니 시청자들이 더 답답해하고 속상해한 거 아닐까. 그 답답함을 대변할 수 있는 단어가 없어서 막장이라는 말이 나온 것 같다. 인물의 상황과 갈등을 드라마틱 하게 그리기 위해 강렬한 장면을 넣은 건 있지만 흔히 말하는 막장 드라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우 전혜빈 / ARK엔터테인먼트

-연기지만 '이 캐릭터는 정말 속 터진다' 생각한 인물 있었나.
"이시영 언니가 연기했던 화상이. 열등감, 피해 의식,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잡혀 혼자 오해하니까. 화상이가 욕을 먹어 선뜻 편은 못 들었겠지만, 누군가는 '나도 저런데'라며 공감했을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눈물 나고 속상하다. 남매들이 원한 건 단지 날 인정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그런 감정이 이입돼 대본 리딩 하면서도 눈물 나고 그랬다."
 
-실제 이시영은 어떤가.
"원래 성격인지, 역할에 푹 빠져서 그런 건지 몰라도 평소 5남매 단톡방(메신저 단체 대화방)에서도 화상이처럼 말한다. '오빠, 어떻게 좀 해봐봐'라고 하는데 너무 재미있다. 장난을 심하게 쳐서 외상이(이창엽)를 울린 적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모습도 사랑스럽다. 특유의 발랄함으로 현장을 재밌게 만들었다. 반면, 연기할 땐 또 엄청난 노력파다. 아마 많은 배우가 언니를 통해 자극받을 거다." 
 
-시청률 20%를 자랑하는 인기 드라마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주변 반응이 있나.
"외상이가 칼 맞고 병원에 실려오는 장면을 촬영 중이었다. 당시 대기실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어떤 분이 오시더니 남편이 간암이라고 하더라. 풍상이 네처럼 남편이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왔다고 했다. 상황이 너무 똑같아 드라마도 못 보신다고. 내 손 꼭 잡으시면서 '오빠 살려서 해피 엔딩으로 끝내달라. 그래야 우리 가족들이 희망을 볼 것 같다'고 하는데, 진심 어린 마음이 느껴졌다.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으신 분들이 이입을 많이 하신 것 같다. 드라마가 재미만 주는 게 아닌 희망을 줄 수 있거나 가족을 용서하는 계기 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허투루 하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드라마 '또 오해영' 팀이 응원 오기도 했던데, 우정이 남다른 것 같다.
"보통은 커피차를 보내는 게 전부인데, '또 오해영' 송현욱 PD님, 한동현 촬영감독님, 현진이가 응원차 찾아왔다. 문지인이라는 친구도 개인적으로 친한데 같이 왔더라. 고마운 걸 넘어서 감동이었다. 솔직히 가수로 데뷔해 연기자의 길을 걷기까지 힘든 시절을 겪었다. 색안경 끼시고 보는 분들이 많아 욕도 많이 먹었다. 그래도 내 스스로를 믿고 차근차근 배우의 길을 걸으니 좋은 분들을 만나고, 곁에 두는 일이 생기더라. 내가 결정했던 것들이 맞았던 거구나 생각이 들고, 인생 잘 살았구나 싶다."
 

배우 전혜빈 / ARK엔터테인먼트

-어느덧 데뷔 17년 차다. 이제야 빛을 발하는 느낌이 드는데 어떤가.
"한순간에 스타가 되는 친구도 있고, 돌고 돌아서 자기 영역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난 차근차근 올라가야 오래가는 배우가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뿌리를 깊게 내려야 튼튼히 걷지 않겠나. 다른 사람들이 비행기 타고, 엘리베이터 타고 갈 때 나는 돌 하나에 시멘트 얹고 한 계단씩 걸어올라간다. 이렇게 한 작품 끝날 때마다 '또 단단하게 세웠구나' 느낀다."
  
-슬럼프가 온 적도 있나. 어떻게 견디는지 궁금하다.
"그냥 겪는다. 겪으면서 힘들어한다. 술 먹고 울기도 하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런 시간이 있어야지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그게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은 노하우가 좀 생겼다. 죽었다 깨어나도 가기 싫은 운동을 시작하거나 꽃이나 전시회 등 예쁜 것을 눈에 담는다. '좋다'는 느낌을 0.01개라도 만든 뒤 그 다음 일주일은 집 밖으로 안나간다든지 망가진다.(웃음)"
 
-'왜그래 풍상씨' 이후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하다.
"영화 '럭키' 때 만난 감독님이랑 영화 한 편을 찍었다. 감초 같은 역할이지만, 올 가을쯤 개봉할 예정이다. 또 작은 영화 한 편도 영화제에 출품한다. 이제 새로운 작품을 해야 되는데, 아직 정해진 건 없다. 잘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새로운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

신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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