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우울증, 자살위험에 노출된 콜센터 직원들
콜센터 직원들이 일반 직원들보다 우울증, 자살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김형일 기자] #1. A은행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남성 B씨는 고객을 응대하다가 욕설을 들었다. B씨는 욕설을 삼가해 달라고 고객에게 정중히 요청했지만 고객은 막무가내로 욕설을 퍼부었다. 결국 B씨는 이러한 고객들 때문에 병원을 찾았고 우울증 판정을 받았다.

#2. C은행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여성 D씨는 남성 고객과 통화를 하다 깜짝 놀랐다. 남성 고객이 D씨의 신체 부위를 언급하면서 성희롱을 시작한 것이다. D씨는 불쾌했지만 고객의 전화를 먼저 끊으면 안 된다는 규정으로 인해 음담패설을 계속해서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은행 콜센터 직원 상당수가 고객들로부터 폭언과 성희롱을 경험하고 있는 가운데 은행들이 이 같은 ‘감정 노동자’들을 위한 피해 대책을 강구하고 나섰다.

피해 예방을 위해 정기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심리 상담과 감정노동법 상시 교육도 진행한다.

9일 경기 안산시 정신복지센터와 고려대 병원이 감정 노동자 489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3분의 2가 고객에게 폭언을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이들 중 44%는 우울감을 갖고 있었고, 자살고위험군도 18.2%에 달했다. 이들의 우울증유병률은 일반 노동자들보다 5~6%p 높았다.

◆민원인의 폭언에 스트레스 받는 감정노동자

서울노동권익센터의 ‘금융산업 감정노동 실태분석’ 보고서를 보면 콜센터 등 금융산업 감정노동자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 1위가 ‘민원인의 과도하고 부당한 언행 요구‘였다.

콜센터 직원들을 상대로 한 민원인들의 폭언과 무시가 상상을 초월해서다.

콜센터 직원들의 말은 귀담아 듣지 않고 마구 욕설을 하거나 심한 수준의 성희롱까지 거침없이 이어지기 일쑤다.

금융노조는 2021년까지 3년에 걸쳐 감정노동 문제에 대한 단계적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무용지물인 감정 노동자 보호법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금융당국은 지난해 10월부터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에 나섰다. 콜센터 직원들이 고객으로부터 당할 수 있는 폭언, 성희롱 등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업무상 발생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질병이 생기면 산재보험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업무상 질병에 명시했다.

하지만 시행 6개월이 지난 현재 과태료 부과는 단 한건도 없었다. 고용노동부는 관련 신고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감정 노동자가 하청업체에 소속돼 있는데 보호 의무는 하청업체에 있고, 업무만 원청업체에서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언어폭력을 당해도 감정 노동자에 대한 빠른 보호조치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 근로자들의 주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신고 전화가 들어오고는 있는데 어떤 내용인지는 자세히 파악하고 있지 않다”며 “앞으로 감정노동에 취약한 사업체를 선정해 현장 점검을 하겠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이 콜센터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 예방 교육에 나서고 있다. /사진=각사 CI

◆피해 예방에 나서는 은행들

은행들은 피해 예방 교육을 통해 감정 노동자들의 고충 덜어주기에 힘쓰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이달 중 서울시와 감정노동 관련 업무 협약을 추진할 예정이다.

농협은행은 카드 고객센터에 980여명, 은행 고객센터에 860여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을 위해 월 단위로 교육계획을 수립해 피해예방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협력사 직원을 포함해 총 800명을 상담센터에 두고 있는 신한은행은 협력업체와 재계약을 할 때 필요한 평가 항목에 직원 면담 횟수, 심리치료, 피해 예방 교육 실시 현황을 포함한다.

아울러 자체적으로 피해 예방 교육을 통해 고객 응대 매뉴얼을 전달하고 있다. 고객이 언어적 폭력을 가하면 1차 경고 후 2차 ARS(자동응답)로 전환된다.

KEB하나은행은 700명이 서울과 대전에 위치한 ‘손님케어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직원만족센터’를 운영해 고객 응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직원만족센터에서는 심리상담과 감정노동법 상시 교육을 실시한다.

아울러 하나은행은 손님케어센터 근무자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 정착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942명의 콜센터 직원을 위해 월 1회 민원현황 등을 통한 ‘케이스스터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반기별로 직원보호 교육과 신상품 및 신서비스 교육을 수시로 한다.

콜센터 직원으로 1000여명을 두고 있는 KB국민은행은 산업안전보건법을 기반으로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ARS에는 폭언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한다는 메시지를 넣었고,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를 대비해 고객응대 매뉴얼과 교육을 수시로 실시하고 있다.

다만 외주직원이 대다수여서 교육 등은 외주업체에 맡기고 국민은행은 내용을 수시로 점검한다.

J트러스트 그룹(JT캐피탈·JT친애저축은행·JT저축은행)은 지난 5일부터 ‘감정노동 피해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오는 19일까지 주 1회씩 총 3회에 걸쳐 실시되는 이번 교육은 지점 창구 직원과 고객 서비스 센터 직원 100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교육내용은 문제해결 중심적 사고전환, 고객 응대 역량 강화, 갈등 상황 해결 능력 향상 등으로 진행된다. ‘마음 시뮬레이션 만들기’, ‘감정소진 예방 포스터 제작’ 등 직원의 감정적 피해를 치유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감정 노동자들의 고충을 알고 있다”며 “대부분이 협력업체 소속이라 교육을 강제할 수 없지만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고 있는지 체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들이 콜센터 직원들을 나의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대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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