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즉위 30년(1448)에 정권 위기를 맞는다.

2년 전 숨진 소헌왕후를 위한 내불당 건립이 발단이었다. 궁궐에 불당을 짓는다는 소식에 승지들을 포함한 문무 관료는 한 목소리로 결사반대를 외쳤고, 집현전 학사들은 단식 투쟁도 불사했다. 성균관 유생들은 학내에 대자보를 붙이고, ‘태평성대가 끝났다’는 비난 상소를 올렸다. 그들은 성균관을 뛰쳐나가 사부학당, 전국 향교의 유생과 동맹휴학에 이어 상인들을 설득해 좌판을 걷도록 했다. 생필품 가격 폭등 속에 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세종은 물러서지 않았다. “왕후를 위한 일이기에 불당건립을 철회할 수 없다. 나는 불교를 좋아한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한다.

유교가 국시인 나라에서 불교를 옹호한 것이다. 이는 왕위를 건 사랑이었다. 임금이 유교의 나라를 포기하는 순간, 반정의 빌미가 될 수 있고, 신변 안전도 담보되지 않는다. 조선의 개국 정신은 유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종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나라 체제에도 눈 감는 대담함을 보인 것이다.

생과 사를 넘어서는 세종과 소헌왕후의 사랑은 자녀들에게는 축복이었다. 세종의 왕자와 공주는 유년시절을 안정되고, 평온하게 지냈다. 여기에 세종의 자녀가 영재로 큰 비밀이 숨어 있다.

세종의 장남 문종은 문학, 수학, 음악, 천문, 음운, 병법에 통달했고, 말 타기와 활쏘기에도 능했다. 차남 세조는 문무(文武)와 수학, 주역, 예능까지 두루 겸비한 다방면 천재였다. 3남 안평대군은 그림과 글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고, 4남 임영대군은 군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5남 광평대군은 수학과 천문학, 스포츠에 일가견이 있었다. 6남 금성대군은 학문 능력이 뛰어났고, 7남 평원대군과 8남 영응대군은 기억력 수재로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울 정도였다. 정의공주는 수학과 음운에 능하고 불교에 조예가 깊었다.

부부금실은 자녀에게 평온을 선물하다. 정서가 안정된 아이는 매사 긍정의 눈으로 보며 두뇌도 활성화된다. 세종은 소헌왕후를 극히 예우했고, 자녀들은 이를 보고 자랐다.

최근 역사작가 이상주가 쓴 ‘세종대왕 자녀교육법(다음생각 간행)’에서는 세종 자녀들의 영재성 발휘 최고 원동력을 남편의 아내 사랑으로 꼽고 있다.

세종대왕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자녀들의 관심 분야를 꼼꼼히 살피고, 그에 맞는 교육을 했다. 이 같은 내용은 조선왕조실록 등의 각종 사료를 통해 확인된다. 책에서는 세종대왕 자녀교육 특징으로 아이의 엄마 사랑을 비롯하여 효도, 식사 대화, 일벌백계, 형제의 우애, 큰 그림 보기, 책 선물, 스스로 하기, 롤 모델, 자신감 갖기 등 총 10가지의 큰 틀에서 설명하고 있다.

조선왕실 비화에 밝은 저자 이상주 작가는 문헌, 구전, 현장 취재를 종합한 세종대왕 스토리 발굴로 인기가 높다. 지은 책으로는 세종의 공부, 조선명문가 독서교육법, 태조와 건원릉 등 10여 종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세종대왕 자녀교육법

다음생각/이상주/248쪽/15000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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