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피플] "올리버 스톤 감독의 전화, 희망을 배웠죠"
[이슈&피플] "올리버 스톤 감독의 전화, 희망을 배웠죠"
  • 정진영 기자
  • 승인 2019.04.16 0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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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화려한 조명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만이 연예계의 전부는 아니다. 그런 스타를 발굴하고 콘텐츠를 기획하는 제작자, 조명을 받는 것이 아닌 비추는 기술자, 한 편의 작품이 될 이야기를 찾고 쓰는 작가,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연출가 등 카메라 밖에서도 연예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스포츠경제가 연예계를 한층 풍성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만나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코너를 신설했다. <편집자 주>

시나리오만 쓰는 전문 작가로 살기 퍽퍽한 국내 영화 시장에서 김문주는 집필을 쉬지 않는 부지런한 작가다. 글을 쓸 때 가장 마음이 편하고 자연스럽다는 그는 사실 과학자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막연하게 로봇이 좋았던 김 작가를 영화계로 이끈 건 대학생 무렵 찾아온 방황의 시간. 올리버 스톤, 피터 위어 등 힘든 시절 자신에게 위안을 줬던 감독들에게 김 작가가 편지를 쓴 건 그 때문이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작품이 있다고.

"몇 가지 있는데 하나가 '오춘기'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년 여 전에 시작된 작품이다. '여고괴담3'와 '요가학원'의 윤재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일본 쪽에서 풀려고 하고 있다. 나는 원안으로 참여를 했다."

-어떤 내용인가.

"한 중년남성에게 사춘기 같은 게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흔히 사춘기 올 때가 지나서 오는 사춘기를 '오춘기'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

-실제 사춘기를 늦게 겪은 걸로 알고 있다.

"대학교 무렵 겪었다. 사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과학자가 돼야겠다는 꿈이 있었다. 과학자는 뭐랄까, 그맘때쯤 '유행하는 꿈'이었다. '태권브이'나 '마징가' 같은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 때였는데 '나도 과학자가 되면 저런 로봇을 만들 수 있겠지' 했었다. 문과적인 생각으로 시작된 꿈이었던 거다. 때문에 수학, 물리는 정말 하기 싫었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자연과학 쪽이면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은 거다. 그래서 천문학과를 선택했다. '별'이라는 게 참 낭만적으로 들리지 않나. 그런데 내가 몰랐던 게 있다. 천문학의 기본이 물리와 수학이라는 사실이다. (웃음) 그러다 보니 공부하는 게 재미가 없었다. 관측하는 것도 재미없었고. 대학교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집에선 당연히 아쉬워했다. 남들이 알아준다는 서울대학교까지 보냈는데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그래서 타협을 했다. 졸업장은 가져다드리고 나는 내 길을 찾는 걸로. 그렇게 늦게 꿈을 찾기 시작했다."

-어쩌다 영화 쪽에 발을 들이게 됐나.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만 해도 영화를 생각하진 않았다. 외국어를 해놓으면 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에 1년 정도는 일본 다니면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그 다음 해에는 중국에 가서 공부를 했다. 졸업 후 3년째 되던 해는 호주에서 보냈다. 영화에 대한 지식을 얻은 건 중국에서였다. 1996년도에 베이징 필름 아카데미에서 한 1년을 있었다. 중국어 과정을 들으면서 종종 영화 관련 수업도 들었다."

베이징 필름 아카데미 재학 시절 중국 배우 자오웨이(오른쪽)와.

-중국에 있을 때 영화 쪽으로 나가야겠다고 결심한 건가.

"확실히 마음을 굳힌 건 호주에 있을 때다. 계속 생각을 해 봤는데 나한테 재미있는 분야가 영화뿐이더라. 생각해 보면 공부하기 싫거나 심신이 지쳤을 때 나는 비디오방에 갔었다. 그만큼 내가 재미있어하고 위안을 받는 분야라는 뜻이었으니까 영화 일을 하면 되겠다 싶었다. 이종사촌이 씨네2000에 있어서 혹시 거기서 일을 해볼 수 있느냐고 했는데 버럭 화를 내더라. '여기는 그렇게 쉽게 먹고 살 수 있는 데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그래서 고민을 하다 감명 깊게 본 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대사관에 찾아가서 사카모토 준지, 올리버 스톤, 피터 위어, 마틴 스콜세지,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감독들의 주소를 알아내서 편지를 썼다. '나 좀 받아 달라. 영화를 하고 싶다'는 내용으로."

-답장이 왔나.

"한 두 달쯤 기다렸을 거다. 답장을 기다리면서 천문학과 후배들하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후배들이 '말 같지도 않은 짓을 했다'고 놀리는 거다. 정신차리라는 말을 잔뜩 들으니까 진짜 눈물이 났다. 이거 말고는 갈 길이 없는 것 같은데 너무 막막한 거다. 그래서 점까지 봤다. (웃음) 그 때 점집에서 5, 6군데서 답이 오는데 그 가운데 두 군데가 진지하다고 해주더라.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확 풀어져서 기다렸다. 편지를 보낸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미국에서 처음 답이 왔다. 피터 위어 감독이 '지금은 영화를 찍고 있지 않으니 영화를 찍게 되면 다시 연락을 하라'고 썼더라. 플러스펜 같은 걸로 아래 서명을 했는데 펜이 약간 맛이 간 거였다. 색이 흐려진. 그게 더 생생했다. 그러다 며칠 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안타깝게도~' 어쩌고 하는 전화였다. 전화가 왔다는 게 신기하고 감격스러워서 '땡큐 땡큐' 했다. 그러니까 그 여자가 내가 못 알아들은 줄 알고 '아니, 안타깝게도~'하면서 같이 일 못 하게 됐다는 말을 또 하더라. 그래도 또 '땡큐 땡큐' 했다. 지금 생각해도 감격스러운 일이다. 그러다 야마다 요지 감독에게 연락을 받았고, 그러면서 일본에 가서 조연출로 영화 일을 하기 시작한 거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쓰게 됐나.

"일본에서 영화 일을 할 때 사카모토 준지 감독이 내게 '감독이 되고 싶으냐. 그러면 글을 쓰라'고 하더라.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사실 생각해 보면 그 때 감독에 대한 꿈에 확신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썼다. 2000년에 처음으로 '유성'이라는 시나리오를 썼다. 한일합작을 염두에 둔 작품이다. 경주를 배경으로 한국 고등학생과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온 일본 고등학생 사이의 사랑 이야기다. 준지 감독이 보더니 '유치하긴 한데 괜찮다'고 하더라. 그 이후부터 종종 시나리오를 썼다."

-국내 영화계에서 시나리오 전문 작가로 지내는 건 어렵지 않나.

"사실 그렇다. 감독에게 올인을 하는 시스템이 있긴 있다. 근데 나는 꼭 감독이 글을 잘 써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을 잘 볼 줄 알면 된다고 본다. 기본적인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흐름을 조절하는 게 감독의 역할 아닐까. 사실 영화계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감독을 생각을 했던 건데, 여러 일을 하면서 보니까 시나리오 쓰는 걸 내가 제일 재미있고 편하게 잘하는 것 같았다. 물론 앞서 말했듯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의 분업화가 잘 돼 있지는 않으니까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다. 번역이나 판권 판매, 현장 코디네이터, 통역 등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아르바이트를 계속 하고 있다. 아르바이트 할 만한 일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 (웃음)"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쓰면 좋을까.

"사실 뭐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 같진 않다. 요즘에는 가운데로 대사를 모으고 지문이 나오게끔 하는 형식들을 많이 쓰는 것 같은데 그 정도 틀을 지키면서 쓰면 될 것 같다. 시나리오 쓸 때 중요한 건 남이 보는 거라는 걸 인식하는 것 같다. 남이 보고 이해할 수 있게 써야 한다. 너무 자세할 필요는 없지만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알아야 한다. 옷이 바뀌면 옷이 바뀌었다고 써주고 손의 묘사가 필요하면 묘사도 해야 한다. 좋은 시나리오가 나쁜 영화는 될 수 있지만 나쁜 시나리오로 좋은 영화는 안 나온다는 말이 있다. 작품 전체를 100%라 하면 50% 정도의 틀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어떤 작품을 좋아하나.

"재미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웃음) 최근 국내 영화 가운데서는 '범죄도시'를 재미있게 봤다. '영웅본색', '죽은 시인의 사회', 옛날 '로미오와 줄리엣'도 좋아한다. '컨저링' 1편도 인상깊었다. 사건이든 감정적인 것이든 긴장감이 유지되면 관객들은 영화관에서든 집에서든 그 영화를 쭉 본다고 생각한다.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다."

사진=본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