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상당수 국내 기업에서 견제 작용 없어
금호아시아나 본사/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김동호 기자] “피를 토하는 심정이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결정 소식을 전하며 한 말이다. 박 전 회장은 “회사가 처한 어려움을 현명하게 타개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그룹 유동성 위기 해결책으로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키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 전 회장이 ‘재개 5대그룹 진입’을 선언하며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연이어 사들인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고질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어왔다. 기업 인수를 위해 무리하게 끌어들인 차입금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의 무리한 결정을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박 전 회장이 그룹 총수이자 대표이사, 이사회 의장직을 모두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룹 경영을 책임지는 대표이사와 그의 직무 집행을 견제, 감독해야할 이사회의 의장직을 모두 동일인이 독점하면서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된 셈이다.

현행 상법 제393조엔 이사회의 권한이 규정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이사회는 회사의 중요한 자산 처분 및 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등 회사의 업무집행을 이사회의 결의로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사회는 이사의 직무 집행을 감독할 것을 명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국내 기업에선 이 같은 견제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30일 대신지배구조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30대 그룹 소속의 상장기업 179개사 중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는 기업은 총 143개사다. 무려 80.0%의 기업에서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이 동일인이란 얘기다.

특히 30대그룹 상장사 중 30개사와 6개 그룹의 지주회사(LG, GS, 한진칼, 두산(지주회사격), CJ,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에선 총수 등(특수관계인 포함)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는 30대 그룹 소속의 상장기업 중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우려가 있다고 지정한 규제대상에 18개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총수 등 특수관계인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는 기업도 11개사나 됐다. 이들 기업은 상대적으로 일감 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우려가 다른 기업에 비해 더 높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표=대신지배구조연구소 제공)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안상희 본부장은 “총수 등이 경영진을 대표하는 대표이사와 경영진에 대해 견제 기능이 있는 이사회의 의장을 겸임하는 경우, 이사회의 투명성 확보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사회의 감시와 견제를 통한 책임경영 확보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총수 등 특수관계인이 상대적으로 많은 LG와 GS그룹의 지주회사인 ㈜LG와 ㈜GS는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는 이사회 의장이 총수로 되어 있다”며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 측면에서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가 더 긍정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정부 등 감독당국의 규제나 국회에 의한 입법 등 타율적인 지배구조 개선보단 기업과 주주, 정부 간 이해관계자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단 주장도 나온다.

안상희 본부장은 “국내 기업의 경영환경을 고려할 때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무조건 분리하는 것이 주주가치에 긍정적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며 “국내 주요 대기업이 과거 빠른 성장 과정에서 보여 왔던 대규모 투자 결정이나 IT, 제약·바이오 등 일부 업종에서의 기술도입 결정 등의 경우에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겸임이 오히려 기업가치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사례가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를 감안하면 정부에 의한 타율적인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이사회의 책임 경영을 활성화하려는 기업의 자발적인 노력 등이 지배구조 개선의 출발점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로 2019년 정기주총을 전후로 그룹 총수들이 이사회 의장직을 겸임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이어졌다. SK그룹의 최태원 SK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직 사퇴를 발표했으며, LG그룹도 일부 주력 계열사에서, 금호아시아나(총수 박삼구)와 한진, 동원(김재철) 그룹도 이사회 의장 분리가 확정됐다. 삼성을 포함한 코오롱(이웅렬), 효성(조석래), 동부(김준기)그룹은 이미 지난해부터 이사회 의장이 분리됐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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