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연극 '환희, 물집, 화상'은 재미있는 작품이다. 답을 내린 것 같으면서도 아리송하고 관객과 등장인물들이 같은 질문에 대해 함께 고민한다.

5일 서울 마포구 산울림 소극장에서 '환희, 물집, 화상'이 막을 내렸다. 페미니스트에게는 동반 1인까지 티켓을 30%나 할인해 줬던 이 작품은 대놓고 페미니즘 연극을 표방한다.

미국 NBC 드라마 '로 앤 오더 성범죄전담반'으로 유명한 미국의 극작가 겸 TV작가인 지나 지온프리도가 쓴 이 작품은 2013년 '퓰리처상' 연극 부문 최종 후보로 올를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

'환희, 물집, 화상'은 산울림 소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기 전 지난 해 7월 '제 1회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먼저 공개됐다. 대학원 이후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두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페미니즘을 실천하려는 여성들이 실생활에서 겪게 되는 고민과 딜레마, 세대를 관통하며 변화해온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를 다룬다.

극에는 모두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대학원 졸업 후 저명한 학자로 살아가고 있는 캐서린(정윤경)과 캐서린의 남자 친구였던 던(배윤범)과 결혼해 가정주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그웬(황세원), 그리고 그웬과 던의 집에서 베이비시터로 일을 하는 20대 여성 에이버리(이지혜)와 캐서린의 모친인 앨리스(홍윤희)다.

캐서린, 그웬, 던은 대학원 재학 시절 매일같이 술을 마시며 교류하던 사이. 절친했던 세 명은 대학원 이후 서로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캐서린은 엄마 앨리스가 심장질환을 앓자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찾는 대신 커리어를 택한 과거를 후회하기 시작하고, 그웬은 잘나가는 학자인 캐서린이 부럽다. 대마초와 포르노를 끊지 못 하는 던은 캐서린 옆에 있었을 때 그나마 자신이 가장 야망에 불타 있었던 게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극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새로운 선택을 하려 하는 캐서린, 그웬, 던의 사적인 이야기와 그웬과 에이버리가 수강하고 있는 캐서린의 여성학 강의다. 이 강의에 앨리스까지 함께하게 되면서 페미니즘이 각 세대에 따라, 또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두 이야기가 합쳐지면서부터다. 캐서린, 그웬, 던 세 사람의 상황이 엉키기 시작하면서 이 사적인 영역이 강의 내용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에이버리 역시 자신의 연애사에 이들의 이야기를 대입하기 시작하면서 극은 한층 몰입도 있게 흘러간다. 알고 있는 것과 실천하는 것. 이 간극 속에서 네 명의 여자들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처절하게 아파하고 그러면서도 변화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가. 연극은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고민을 관객들에게도 함께 던지며 페미니즘이 나아갈 방향을 물을 뿐이다. 정윤경, 황세원, 이지혜, 홍윤희 등 네 여성 배우들은 속도감 있는 연기로 작품이 담고 있는 방대한 양의 페미니즘 관련 논의들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단순한 배경 이상인 실험적인 무대 효과들과 전달력 있는 배우들의 연기는 '환희, 물집, 화상'에 힘을 불어넣는 또 다른 기둥이다.

사진='환희, 물집, 화상' 포스터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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