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한진빌딩/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강한빛 기자] “사이좋게 이끌라”는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유언이 무색해지는가. 

그룹 경영 지휘봉을 잡을 명실상부한 총수 자리를 두고 한진가 상속자인 3남매에게 이상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고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한진칼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으로 그동안 그룹안팎에서는 당연시 해왔다. 

그런데 당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차기 총수를 지명하는 과정에 이르자 조원태 회장과 그의 누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여동생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사이에 갈등조짐이 노출돼 이른바 '3남매의 난'이 일어날 가능성에 재계 및 금융시장(증시)이 온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 늦어진 한진 총수 지정... “의사 합치 이뤄지지 않아”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월 25일 93개 대기업 집단에 공문을 발송해 4월 12일까지 대기업집단 및 동일인(총수) 지정을 위한 자료를 제출하도록 했다. 그 결과 당초 9일 대기업집단 및 동일인(총수) 지정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15일로 연기했다. 한진그룹의 의사 미결정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고 조양호 전 회장 대신 새로운 총수를 지정해야 하는데 한진 측에서 내부 조율이 되지 않았다며 아직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못했다. 동일인 지정 자료에는 상속세 납부 계획 등도 밝혀야 하는 등 행정절차가 만만치 않다.

공정위는 "한진이 차기 동일인 변경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한진 측은 기존 동일인인 조양호 회장의 작고 후 차기 동일인을 누구로 할지에 대한 내부적인 의사 합치가 이뤄지지 않아 동일인 변경 신청을 못 하고 있다고 소명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재계와 그룹관계자들 사이에선 조원태 한진칼 대표이사 회장이 고 조양호 전 회장의 공백을 채울 새로운 총수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했다.

더욱이 조원태 회장은 선친인 조 전 회장 장례를 마친지 1주일 만에 회장직에 오르며 ‘3세 경영’에 박차를 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진그룹의 경영권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지정 결과가 예정된 15일 전까지 합치를 이뤄내야 한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한진그룹

◆ 또 ‘난기류’ 만난 한진家... 3남매 간 평행선 달리나?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재계 일각에선 조 전 회장의 지분 상속을 포함해 경영권 승계에 있어 3남매 간 이견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진그룹은 지주사인 한진칼을 중심으로 ‘한진칼→대한항공·한진→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한진가 지분 가운데는 조 전 회장 지분이 17.84%(우선주 지분 2.40% 제외)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뒤를 이어 장남 조원태 회장이 2.34%,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2.31%,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2.30%를 각각 갖고 있다. 조 회장의 지분은 조현아, 조현민씨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반면 한진칼의 2대 주주인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강성부 펀드)는 14.98%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지난달 KCGI는 한진칼 지분 2.18%를 추가 매입하며 지분율이 14.98%로 올랐다. 점점 몸집을 늘리며 한진가를 압박하는 상황이다.

결국 조 전 회장의 보유 주식 17.84%가 누구에게 얼마나 상속되느냐가 관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공정위는 동일인 지정 시 경영활동 및 임원 선임 등에 있어 영향력과 보유 지분율 등을 함께 고려한다

한편 한진칼은 지난달 29일 접수된 증권신고서(채무증권)를 통해 제출일 기준 상속 대상, 절차 및 일정과 관련하여 확정된 바가 없음을 밝힌 바 있다.

한진칼은 “최대주주인 조양호 회장이 보유 중인 보통주(1055만3258주)와 우선주 (1만2901주)에 대해 상속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나 증권신고서 제출일 현재 상속 대상, 절차 및 일정과 관련하여 확정된 바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양호 회장 별세에 따른 내부 공백을 최소화하여 채권자 및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고자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해 여전히 상속 문제는 안개 속인 상황이다. 이를 놓고 보면 한진가 경영권 승계를 위한 내부 의사결정과정이 의외로 복잡하고 셈법이 까다롭다는 걸 유추하게 한다.

일각에서는 조 회장이 막대한 상속세 부담 때문에 상속을 제대로 이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 바 있지만 지난달 경제개혁연대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상속세와 관련해 한진그룹은 지배권 위협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진가 3남매와 KCGI가 얽혀있는 지분경쟁을 통한 경영권 확보가 어떻게 결말을 낼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지분경쟁 가능성이 증시에 전해지면서 9일 한진칼 우선주는 주가가 29.82% 가격제한폭까지 올라 5만7900원을 기록했다. 보통주는 장중 한때 12.73%나 급등해 4만2500원을 형성하다가 이후 상승폭이 둔화됐다. 증시 한 관계자는 "한진칼 주가가 오르면 상속세 부담은 더욱 커지고 그러다보면 경영권 승계에 대한 재무적 변수도 가중될 수 있다"며 한진그룹 경영권이 누구 손에 쥐어질지는 속단하기 힘들다고 평가한다. 

한편 다음 달 조 회장은 본격적인 글로벌 항공산업 데뷔 무대를 갖는다. 오는 6월 1~3일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조 전 회장의 공백을 채우고 IATA 연차 총회 의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IATA는 ‘항공업계의 UN’으로 불릴 정도로 전 세계 항공사 최고경영진과 관련 업계 종사자 1000여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다.

조 회장은 이번 협회를 통해 글로벌 무대에 자신의 이름과 대한항공을 각인시켜야 한다. 하지만 더 큰 과제는 밖이 아닌 내부에 있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 지적이다. "가족끼리 잘 지내라”는 선친의 유훈을 3남매가 어떻게 이해하고 실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강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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