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 위 느림보' 슬로 플레이어, 어떻게 봐야 하나
'필드 위 느림보' 슬로 플레이어, 어떻게 봐야 하나
  • 이선영 기자
  • 승인 2019.05.0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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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의 물리학자’로 불리는 브라이슨 디섐보는 대표적인 슬로 플레이어다. /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이선영 기자] 유럽프로골프(EPGA) 투어에서 뛰고 있는 에도아르도 몰리나리(38·이탈리아)가 슬로 플레이를 펼친 선수들의 명단이 담긴 자료를 공개해 파문이 일고 있다. 

몰리나리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골프 경기 시간이 너무 길다. 18홀을 도는 데 무려 5시간 30분이 걸린다. 슬로 플레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슬로 플레이 관련 통계 문서를 게재했다. 이 문서에는 EPGA 투어와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등에 출전한 선수들의 시간 지연에 따른 계시(플레이 타임을 재는 것), 규정 위반 횟수, 벌금 등이 적혀 있다.

슬로 플레이로 3000달러(약 347만 원)의 벌금을 낸 선수는 에릭 판 루옌(29·남아공), 아드리안 오테기(27·스페인), 루이 우스트히즌(37·남아공) 3명이다. 타이거 우즈(44)와 브라이슨 디섐보(26·이상 미국)는 한 차례 규정을 위반했다.  

몰리나리의 슬로 플레이 명단 공개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그의 SNS에는 “용기 있는 행동을 응원한다. 슬로 플레이는 엄연히 사라져야 할 비매너 행위”라는 글부터 “신중하게 경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며 반박하는 글까지 다양한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세계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영국왕실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는 올해부터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40초 룰’(40초 이내에 스트로크 권장)을 도입했다. USGA는 홈페이지에 새 규정을 소개하며 ‘선수들은 자신의 경기 속도가 다른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사전에 준비한 뒤 즉시 플레이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새로운 규칙 제정에도 슬로 플레이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슬로 플레이어는 J.B. 홈즈(37·미국)다. 홈즈는 지난 2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제네시스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퍼트를 하는 데 1분 20초 이상을 쓰는 등 늑장 플레이로 비난을 받았다. ‘필드의 물리학자’ 디섐보도 매 홀마다 캐디와 긴 대화를 나누고 연습 스윙을 반복해 빈축을 샀다. 브룩스 켑카(29·미국)는 “느림보 선수가 너무 많아 당황스럽다”며 “공을 치는 데 1분이 넘게 걸리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로리 매킬로이(30·북아일랜드)도 불만을 내비쳤다. 그는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는 슬로 플레이를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슬로 플레이어들도 할 말은 있다. 홈즈는 ”많은 상금과 포인트가 걸려 있는데 어떻게 빨리 치겠는가. 단지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디섐보 역시 “사람들은 짧은 시간 안에 샷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저는 생계를 위해 플레이를 한다. 일부러 천천히 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골프는 리듬의 게임이다. 고의든 아니든 슬로 플레이는 동반자의 경기 리듬을 무너뜨린다. 또 심리적으로 동요하게 만든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아울러 경기를 보는 팬과 갤러리들의 흥미도 반감시킨다. 미국 매체 USA TODAY는 “슬로 플레이를 이대로 방치하면 골프를 보다가 TV 채널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며 “슬로 플레이에 대한 규제를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