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 공연 마치고 팬들에게 인사하는 방탄소년단.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비틀스, 퀸, 마이클 잭슨 등 전설적인 스타들이 섰던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 방탄소년단이 입성한다. 이들은 다음 달 1일부터 무려 이틀 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월드투어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 영국 공연을 진행한다. 대형 기획사 소속이 아니었기에 '흙수저 그룹'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었던 이 K팝 그룹은 어떻게 전 세계를 호령하는 대형 그룹으로 성장했을까. 반짝이는 화면 속 세상에서 벗어나 현실과 부딪치며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하는 서사를 보여준 방탄소년단. 이들은 현실을 살아가는 아이돌이 판타지 속 스타들보다 더 강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줬다.

■ 어서 와, 아미 같은 팬덤은 처음이지?

지난 달 중순 앨범 '맵 오브 더 소울: 페르소나' 발매를 기념해 열린 기자 간담회. 이 자리에서 방탄소년단의 멤버 슈가는 '방탄소년단의 특별한 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딜 가나 우리 팬들이 열정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특별한 팬들과 만난 게 우리의 특별한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방탄소년단의 팬클럽 아미는 여러 면에서 특별하다. 흔히 아이돌 그룹의 팬이라고 하면 10대 소녀나 '삼촌팬'으로 일컬어지는 특정 남성 집단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미는 성별, 연령대, 심지어 국적도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다양하다. 손을 잡고 오는 모녀, 가족 단위 관객이 공연장에 가득하고 한국 문화 소비에 오히려 인색했던 해외 교포 2세들까지 포용했다.

특히 해외에서는 특정한 한 그룹을 열성적으로 판다기 보다 여러 K팝 스타들을 두루 좋아하는 'K팝 팬'들이 많은데, 아미는 예외다. K팝이 진출하지 못 했던 북미, 남미 지역에서부터 거대 팬덤을 키워왔기에 해외 어딜 가나 열성적인 팬들이 가득하다. 방탄소년단이 ABC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하면 생방송을 보기 위한 팬들이 일주일 넘게 센트럴 파크 인근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고, 방송국은 팬들의 안전을 위해 건물 주변에 펜스를 친다.

국내와 해외 팬덤이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점도 아미의 특별한 점이다. 아미 이전까지는 많은 이들이 해외 팬들을 '외퀴'라고 부르며 배척했다. 외국인과 바퀴벌레가 합쳐진 '외퀴'라는 말은 한국 문화를 제대로 알지 못 하면서 걸핏하면 논란 거리를 만들거나 국적이 외국이라는 이유로 여러 공연에서 전용 좌석을 꿰차는 팬들을 비난하는 말로 종종 쓰였다.

반면 아미들은 외국인 팬들을 '외랑둥이'(외국인과 사랑둥이를 합친 말)라 부르며 포용했고, 해외 아미들은 국내 팬들을 'K-다이아몬드'(Korean army diamond를 합친 말)라 부르며 화답했다. 이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을 전개하는 방탄소년단을 위해 화력을 보태고 방탄소년단이 음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지지한다. 활동이 국내에 치중되지 않는 방탄소년단에게 이런 팬덤 간의 끈끈한 유대는 큰 힘이 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5개 도시에서 열린 방탄소년단 투어 기념 팝업 스토어.

■ "스스로를 사랑하고 목소리를 내라"

웸블리 스타디움을 비롯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뉴저지, 브라질 상파울루, 프랑스 파리, 일본 오사카, 시즈오카 등에서 펼쳐지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이번 월드투어의 명칭은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다. 지난 해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 20개 지역에서 42회에 걸쳐 '러브 유어셀프' 공연을 진행, 모든 회차를 전석 매진시킨 바 있다.

4부작에 걸쳐 나온 앨범 '러브 유어셀프'에 이은 '러브 유어셀프' 공연을 통해 방탄소년단은 '러브 유어셀프', 즉 '스스로를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세계 전역에 전달했다. 같은 해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미국 뉴욕 UN본부에서 진행된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 행사에서 한 연설은 방탄소년단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RM은 당시 "나는 어제 실수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어제의 나도 나다. 오늘의 나는 내가 만든 모든 실수들이 모여 만들어졌다. 내일의 나는 지금보다 아주 조금 더 현명해질지도 모른다. 그 또한 나다. 이런 실수과 결함이 나이고 곧 내 삶의 별자리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들이다. 나는 지금의 나 자신 그대로, 그리고 과거의 나와 미래에 되고 싶은 나까지 모두 그대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UN 공식 홈페이지 대문 장식한 방탄소년단.

또 이 때 나온 이야기가 "여러분의 이야기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이번 투어의 제목인 '러브 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는 "여러분의 신념을 듣고 싶다. 당신이 누구든, 어디에서 왔든, 피부색이 무엇이든, 성 정체성이 무엇이든 간에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라.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이름을, 목소리를 찾으라"던 RM의 말과 궤를 같이 한다.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떻게 자라느냐에 따라 고민과 좌절의 경험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취업이 되지 않아 절망하고 누군가는 사회적 미의 기준에 맞지 않는 외모 때문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간다. 방탄소년단은 앨범 안과 밖에서, 무대 위와 아래에서 꾸준히 '스스로를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서로 다른 고민을 안고 있을 전 세계인들을 하나로 묶었다.

■ 결국 진심은 통한다

방탄소년단 이전에도 현실의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가수들은 많았다. 특히 아직은 음악을 하면 '딴따라' 취급을 받았던 1990년대까지 이런 경향이 짙었다. 아이돌 가수들이 학교폭력, 기성세대와 갈등, 차별 등 여러 사회 문제를 노래했고 이에 사람들이 열광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아이돌 스타들의 문화가 주류가 되면서 점차 흐려졌다. 성공만 하면 큰 부와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은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직업 상위권을 놓치지 않을 정로도 일종의 사회 기득권층이 됐다. 기득권이 아무리 사회 문제를 논해 봤자 공감대를 형성하긴 어려운 법. 결국 2010년대 아이돌 스타들은 누구나 공감할 법한 사랑 노래를 주로 하거나 흥미로운 세계관과 스토리텔링을 설정, 현실에 지친 이들에게 도피처가 되는 판타지적인 존재로 사랑을 받게 됐다.

미국 뉴저지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가득 메운 관중.

이런 상황에서도 방탄소년단은 현실의 이야기를 놓지 않았다. 데뷔 때는 학교에서 느끼는 각종 불합리와 10대가 바라본 세상을 날카롭게 묘사했다. 이후 멤버들이 20대에 접어들자 '청춘'을 주제로 그 시절 겪게되는 사랑의 홍역과 세상의 유혹 등을 노래했다. 이후 '윙스'와 '유 네버 워크 얼론'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피, 땀, 눈물을 흘리며 삶을 살아내는 이들을 연대케 한 방탄소년단은 '흙수저 아이돌'로 시작해 글로벌 스타가 된 현재까지의 발자취를 훑고 그런 자신들의 삶을 인정하며 '러브 유어셀프'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타고난 것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이 결정되기 쉬운 세상에서 '흙수저 아이돌'로 태어난 방탄소년단의 끈질긴 서사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여기에 이들이 성공한 이들이 자주 하는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는 식상한 영웅주의 대신 "꿈이 없어도 괜찮다. 네가 뭐라도 괜찮다. 있는 그대로의 너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한 건 인상적이다. 큐티, 섹시, 카리스마, 힙, 시크 등 어떤 수식어, 판타지에 매몰되는 대신 현실로 나와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낸 이들이기에 할 수 있고, 통할 수 있던 말이었다.

RM은 지난 해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콘서트 개최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이제 대중은 굉장히 수준이 높다고 생각한다. 진심과 진심이 아닌 것을 금세 구별한다. 진심을 전달하되 이걸 똑똑하게 전달하는 건 어렵다. 우리는 본업(음악)에 충실하면서 SNS를 통해 진심을 좀 더 잘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방탄소년단은 이제 단순한 가수가 아니다. 이들은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그 안에서 느낀 점을 음악 안과 밖에서 진실되게 전할 줄 아는 스피커다.

사진=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UN 공식 홈페이지 캡처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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