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진석 PD / tvN 제공

[한국스포츠경제=신정원 기자] 각박한 삶 속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힐링을 선사하고자 tvN 예능 프로그램 '풀 뜯어먹는 소리'(이하 '풀뜯소')를 마련한 엄진석 PD는 되려 본인이 힐링을 받았다. '풀 뜯어먹는 소리'는 10대의 학생 농부 한태웅과 생활하는 모습을 담아낸 무공해 힐링 예능. 농사에 대한 진정성과 학생답지 않은 구수한 말투를 지닌 한태웅의 활약과 출연진들의 예상치 못한 케미, 농촌의 초록색 풍경으로 월요일 저녁 힐링을 책임졌다. 엄진석 PD는 촬영 때마다 스태프들과 힘을 얻는다며 '풀뜯소'를 시즌 3까지 이어온 뿌듯한 소감을 전했다. 1년 반이라는 긴 시간을 농촌에서 보내면서 모내기 등으로 바쁠 때도 있었지만, 다급한 현대인들에게 주위를 둘러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 만족했다. 엄 PD는 다음 시즌이 기획된다면 해외로도 눈을 돌려 세계의 농업 형태를 알아보는 기회를 갖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풀 뜯어먹는 소리'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나.
"요즘 다들 각박하고 다급하게 살고 있지 않나. 그분들에게 천천히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생각해보길 바랐다. 한태웅이라는 학생 농부를 소개하면서 새로운 시각과 사고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사실 시즌 3까지 올 줄은 몰랐다. 벌써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모내기도 두 번이나 했다. 뿌듯함이 큰 것 같다."
 
-중학생이었던 한태웅 군이 벌써 고등학생이 됐다. 농부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는 태웅 군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나.
"일단 그 친구는 너무 대단하다. 중학생의 남자아이라면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어릴 때부터 그런 뚜렷한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 게 놀라웠다. 어른들이 배워야 되겠다고 느낀 건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알더라. 더 갖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현재에 만족하지만 꿈이 있기에 나아간다더라.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게 놀라웠다."
 
-처음 섭외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한 동료 PD가 '이 친구 정말 안도 안 되는 캐릭터'라며 유튜브를 보여줬다. 그때는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생각했다. 실제로 만나보지 않고는 답답하더라. 전화번호와 주소를 겨우겨우 알아내 찾아갔다. '만들어진 모습일 거야'라는 의심을 안고 갔는데 자연스럽게 트랙터를 몰고 있어 깜짝 놀랐다. 인사를 나누면서 '진짜가 여기 있었구나' 생각했다. 사실 출연 결정은 쉽게 나지 않았다. 농번기여서 농사일이 바쁘다고 했다. 학교는 빠져도 농사는 빠지면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진심을 담아 '태웅이 너의 농사일을 도울테니 촬영을 함께 진행해보자'라고 제안했고, 일주일 뒤에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엄진석 PD / tvN 제공

-시즌 3에서는 농어촌을 지키고 있는 전국의 청년 농부와 어부들을 만났다.
"재미있던 게 농사짓는 아이들끼리 지역에 상관없이 메신저 단체방이 있더라. 고등학생 농부인 (한)태웅이와 (이)정민이를 포함해 4~5명으로 이루어진 '벼 뜯어먹는 소리'라는 단체방이 있다. 서로 바쁘니까 만나진 못해도 이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더라. 어이없으면서도 멋있었다. 실제로 전국의 청년 농부, 어부들을 만나면서 놀랄 때가 많았다. 울산에 사는 22살의 (고)정우는 혼자 살면서 해남으로서 일을 꿋꿋이 해나가더라. 어떤 분이 말하길,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할 땐 사명감이 있지 않고는 못한다고 했다. 사명감으로 죽을 때까지 해야 된다고 하더라. 아직 평생을 바치지 않은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명감을 갖고 꿈을 키워나간다는 게 대단했다. 그 친구들을 보면서 제작진, 스태프 모두 힘을 얻었다."
 
-요즘 귀농을 꿈꾸는 도시인들이 많은데, 실제 접해본 사람으로서 추천하고 싶나.
"사실 나도 귀농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짧게 생각한 게 아니라 자연을 좋아하다 보니까 '나중엔 귀농을 해야지'라는 막연한 꿈을 꿨다. 그런데 실제로 접해보니 함부로 추천을 못하겠더라. 보이지 않는 전쟁이 존재한다. 조용한 시골에서 편안하게 사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도시보다 더 치열할 수도 있다. 사소한 일 하나도 사람 손이 간다. 철저한 계획과 동력이 없다면 농촌에서 살긴 힘들 것이다. 농촌 사람들도 하는 말이 '도시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3년을 못 간다'고 하더라. 기본적인 지식과 정보가 약하기 때문에 버티기 힘들다고 한다."
 
-이번 시즌에서 개그계 절친 박나래, 박명수, 양세찬을 꾸린 이유도 궁금하다.
"힐링도 중요하지만 어쨌든 우리 프로그램이 예능이니까 웃음도 중요했다. 세 분은 코미디계에서도 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출연자들끼리의 자연스러운 케미를 기대했다. 인위적인 재미는 우리 프로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실 박명수 씨가 흔쾌히 촬영에 합류할 거라 생각 못 했는데 생각과 달리 바로 출연에 응해줘 놀랐다. 평소 태웅이를 유심히 지켜봤다고 하더라. 실제로 이번 시즌을 하면서 박명수 씨와 태웅이의 케미가 가장 좋았다. 진짜 아들처럼 잘 챙겨주고, 책도 사다 주고 그런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박나래 씨는 대세여서 부른 건 아니고, 뭐든지 만능으로 해내는 모습을 보고 어쩌면 시골 예능하고도 잘 어울리겠다 싶었다. '야물딱지다'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잘 나누고 농사면 농사, 요리면 요리 다 잘하더라. '풀뜯소'를 통해 박나래의 또 다른 진가가 드러난 것 같다."
 

엄진석 PD / tvN 제공

-최근 게스트로는 '미스트롯' 송가인 등 톱 인기녀들이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태웅이의 SNS를 팔로우하고 있는데, 송가인 씨에 대한 팬심이 엄청나더라.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면 또 다른 긍정의 재미가 나오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섭외했다. 함께 촬영해보니 송가인 씨가 박나래 씨랑 비슷하더라. 사람 자체가 찰지다. 농사 쪽으로 지식도 많고. 또 '나래 주막'이라는 걸 했을 때 옆에서 제육볶음을 하는 걸 봤는데 손재주가 좋더라. 똑 부러지는 모습에 놀랐고 재밌었다."
 
-'풀 뜯어먹는 소리'가 시즌제로 이어지게 된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편해서 그런 게 아닐까. 편집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재미를 가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인위적인 것을 빼려고 했다. '풀뜯소'는 틀어놓고 화장실을 갔다 와도 이해가 되는 그런 편안함이 있는 것 같다. 초록이 주는 힐링도 있고. 청년 농부 한태웅이라는 특별한 마스코트도 우리 프로그램만의 매력이다."
 
-시즌 4에 대한 계획도 갖고 있나.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한 두 가지 생각해 놓은 건 있다. 일단 먼저, 국내에 아직도 이런 훈훈한 청년 농부·어부가 더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인물을 발굴하고 개발하는 것 자체가 PD들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쪽에 초점을 두고 있다. 두 번째는 태웅이가 농대를 목표로 준비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에 농업이 발달된 곳을 가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농업 선진국을 보여주고 싶긴 한데, 시청자들이 접해보지 못했던 다른 나라를 보여줘도 좋을 것 같다. 추천받은 곳이 몇 군데 있는데 현실적으로 이뤄질진 모르겠다. 가깝게는 중국이나 일본을 생각 중이다. 일본의 농업 형태는 우리나라가 따라가고 있다고 하더라. 일본은 오래전부터 어린 친구들이 농업을 직업으로 삼았다. 이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그들의 농업 생활을 엿봐도 좋을 것 같다. 기술적으로 선진화된 호주나 미국, 뉴질랜드도 생각 중인데, 더 찾아보려 한다."

신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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