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봉오동 전투 승리 이후 독립전쟁 더욱 활발해져
봉오동 전투. 3일 봉오동 전투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영화 '봉오동 전투' 포스터 캡처

[한국스포츠경제=조성진 기자] 3일 봉오동 전투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봉오동 전투는 중국 영토인 만주지역에서 한국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 본격적으로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전투다.

봉오동 전투에서 홍범도가 이끈 대한독립군, 안무가 이끈 국민회군, 최진동이 이끈 군무도독부가 연합하여 결성된 대한북로독군부와 한경세가 이끈 대한신민단의 독립군 연합 부대가 야스카와 지로 소좌가 이끈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를 쳐부수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

1920년 6월 4일 대한신민단의 독립군 부대가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에 진입해 일본군 순찰소대를 습격해 타격을 입혔다.

다음날 일본군 1개 소대 병력이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을 추격해오자, 대한북로독군부의 독립군은 삼둔자에서 일본군 추격대를 공격해 큰 피해를 입혔다.

일본군은 이를 핑계로 함경북도 나남에 주둔하던 제19사단에 월강추격대대를 편성하여 중국 영토를 침입하여 직접 독립군의 근거지인 봉오동 공격에 나섰다.

홍범도가 이끈 독립군 연합 부대는 봉오동의 산지에 매복하였다가 야스카와 지로 소좌가 이끈 일본군 추격대대를 삼면에서 포위하여 궤멸시켰다. 일본군은 수많은 병력이 사상을 당하는 피해를 입고 퇴각하였다.

한편 봉오동 전투는 1920년대에 독립전쟁이 더욱 활발해 지는 계기가 된 바 있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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