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화려한 조명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만이 연예계의 전부는 아니다. 그런 스타를 발굴하고 콘텐츠를 기획하는 제작자, 조명을 받는 것이 아닌 비추는 기술자, 한 편의 작품이 될 이야기를 찾고 쓰는 작가,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연출가 등 카메라 밖에서도 연예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스포츠경제가 연예계를 한층 풍성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만나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코너를 신설했다. <편집자 주>

백화점 남성복 매장에서 정장 파는 일을 했던 이정훈 씨가 연예계에 오게 된 건 우연한 기회에서였다. 알고 지내던 형에게 "백화점 일 힘들다"고 털어놓자 "그럼 너 매니저 한 번 해 볼래?"라는 제안이 돌아왔던 것. 지금은 유선, 김귀선, 윤병희 등 연기파 배우들이 다수 소속된 블레스이엔티에서 매니지먼트 실장으로 있는 14년차 노련한 베테랑이지만 처음 매니지먼트 업계에 들어왔을 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고. 배우들을 볼 수 있다는 데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화려함을 기대하고 왔던 이정훈 씨. 그 환상이 다 깨지는 데까지는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처음 매니저 일을 제안받았을 땐 어떤 심정이었나.

"정말 뭣모르고 시작했다. 그 때가 26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제대하고 나서 백화점에서 일을 하다가 매니저를 하고 있던 형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거다. 처음에는 배우 만나서 같이 다니는 일이라고만 생각해서 '재미있을 것 같네' 했다. 그런데 3개월 만에 환상이 다 깨졌다."

-그 때 왜 그만두지 않고 버텼나.

"당연히 그만둔다고 했지. (웃음) 소개시켜 준 형한테 '나 이거 못 하겠다'고 하고 같이 일하던 실장한테도 그만둔다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그 실장이 나한테 '끈기 없는 녀석이네' 하는 거다. 그 말 듣고 오기가 생겨서 버티게 됐다. 1년 버티고 그곳에서 나와서 다른 회사에 들어갔다. 그 때 정재영 배우를 만났고, 이후 정재영 배우 개인 매니저로 한 8년을 일했다."

-일하며 어떤 점이 그렇게 힘들던가.

"옛날엔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도 않았다. (웃음) 지금은 표준근로시간이란 게 있으니까 거기에 맞추려고 현장에서도 다 노력을 한다. 근데 전에는 그런 시스템도 없었으니까 촬영이 잡히면 계속 현장에 가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일이 언제 끝날지 가늠이 안 되니까 힘들었다. 또 촬영이란 게 변수가 많다. 야외 촬영이 잡혔는데 만약에 비가 온다고 하면 스케줄을 바꿔야 한다. 현장 상황에따라 스케줄 변동이 많으니까 개인적인 약속을 잡기가 힘들다."

-연애하기도 쉽지 않겠는데?

"매니저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진짜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결국 내가 너무 바빠서 만날 시간이 부족해지니까 헤어지게 됐다. 그 친구가 어느 날은 내게 '우린 왜 낮에 못 만나냐'고 하더라. 그 때만 해도 젊고 혈기 왕성할 때라 '내가 잘할게'라고 하고 붙잡았다. 그런데 결국 잘 안 됐다. 그러면서 점점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졌다. 그래서 요즘은 조명팀이나 분장팀 등등 이 업계 사람들하고 만나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서로 스케줄에 대한 이해가 있을 테니까."

-매니저라는 직업은 잘 알려져 있지만 매니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는 이들이 많다.

"배우들은 연기를 할 때 의상부터 시작해서 헤어, 메이크업, 전반적 콘셉트 등 신경써야 할 게 많다. 그걸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매니저다. 또 배우들이 잘못된 길을 갈 때 그걸 잡아줄 수 있는 파트너이기도 하고. 또 주변 사람들과 관계도 잘 살펴야 한다. 작품이 들어오면 제작사, 감독 등등을 보고 우리와 관계성을 살펴서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신인 배우의 경우에는 매니저가 배우의 특성과 캐릭터를 잘 살피고 그에 맞는 작품을 어레인지 하기도 해야 한다. 인지도가 높은 배우는 책(시나리오, 대본 등)이 들어오지만 그렇지 않은 배우는 매니저들이 찾아가서 자기 배우 이야기를 해야 한다."

-처음 배우와 만날 때의 마음가짐이라면.

"연인 사이라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 마음을 열고 대하지는 못 했을 것 아닌가. 배우와 매니저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서로 알아가는 과정,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그래서 처음부터 함께하는 배우가 참 좋다. 유명하지 않을 때부터 시작해서 유명해질 때까지. 그걸 경험하지 않은 매니저와 경험한 매니저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매니저들의 꿈은 엔터사 대표라는 말도 있더라.

"잘해서 매니지먼트 대표가 되겠다는 꿈, 진짜 유명한 배우 하나 만들겠다는 꿈 꾸는 사람들 굉장히 많다. 근데 나는 아니다. 그냥 나와 함께 일하는 배우들이 쉬지 않고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물론 배우들이 스타가 되고 많은 돈을 벌고 그러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서 마냥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진 않다.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인 것 같다. 내 담당 배우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내 서포트가 그 행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배우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건 절대 하고 싶지 않다."

-평생 직장이라고 보나.

"젊었을 때는 평생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일에 재미가 붙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그래서 지금은 계속 하고 싶다.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현장에도 나가고 싶고."

-'매니저란?' 한 마디로 정의해 준다면.

"동반자. 배우와 같이 커나가고 행복해지는 존재."

사진=임민환 기자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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