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동학농민운동, 조선 말 농민들이 뭉쳐 외세에 대항
동학농민운동, 우금치전투 패배 후 실패
동학농민운동 정신, 갑오개혁으로 이어져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은 조선 말 농민들이 뭉쳐 외세에 대항한 반외세 운동이다. / 동학농민운동 백산봉기 기록화

[한국스포츠경제=조성진 기자] 동학농민운동은 조선 말 농민들이 뭉쳐 외세에 대항한 반외세 운동이다.

조선 말기 전라 지역은 땅이 기름져 농사가 잘 되었으나 정작 농민들은 궁핍한 생활을 했다. 당시 농민들은 많은 세금을 내야 했고 관리들의 수탈도 심했기 때문이다.

이 무렵 전파된 동학은 농민들의 억울한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동학은 "모두 평등하며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사상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고부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수탈을 참다못한 농민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다.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은 황토현에서 관군과 싸워 이기고 정읍, 고창, 영광, 함평, 무안을 차례로 차지한 후 계속 진격해 전주성을 점령했다.

농민군의 기세에 놀란 정부는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했고, 청을 경계하던 일본도 조선에 군대를 보냈다.

농민군은 외국의 군대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이 주장하는 개혁의 내용을 알리고, 조선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면 해산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정부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관군과 농민군 사이에 휴전을 한 전주 화약을 했다.

하지만 전주 화약 이후 농민군은 전주성에서 물러났으나 조선정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동학농민군이 해산한 뒤 정부는 청과 일본의 군대에게 되돌아 갈 것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오히려 경복궁을 점령하고 일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혁을 강요했다.

이에 동학농민군은 일본을 몰아내고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다시 일어섰지만, 공주 우금치전투에서 조일연합군에게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후 동학농민군은 전라도로 후퇴하면서 병력을 재정비하여 다시 봉기를 할 기회를 엿보았으나 전봉준 등이 체포되면서 동학농민운동도 실패로 돌아갔다.

한편 동학농민운동의 정신은 갑오개혁으로 이어졌고, 농민군은 항일 의병 투쟁으로 이어졌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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