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영화 ‘기생충’에서 오랫동안 잔상을 남기는 인물이 있다. 바로 가사도우미 문광 역을 연기한 배우 이정은의 이야기다. 초반과 후반 극명하게 다른 그의 압도적인 연기는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문광이 박사장(이선균)네 집 초인종을 누른 순간부터 영화의 장르가 달라진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작 tvN ‘미스터 션샤인’의 함안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사로잡았다.

-‘기생충’ 속 반전 인물로 스포일러 때문에 공식석상에는 나오지 못했다.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할 것 같다.

“사실 내 마음은 나보다 박명훈이 수면 위로 올라왔으면 한다. 인터뷰를 즐겁게 하는 모습을 보는 게 기분이 좋다. 올 것이 왔구나 싶다. 잘 되는 작품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생각보다 크다. 어딜 가도 ‘기생충’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영화는 문광이 돌아오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바뀐다.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나.

“사실 내가 찍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것보다 내 얼굴이 귀여운 편이라 감독님에게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잘 살 수 있을지 많이 물어본 것 같다. (웃음) 2시간 넘게 특수분장을 했다. 지문에는 ‘술 취한 문광이 얼굴에 상처를 입고 벨을 누르며 모니터에 이야기한다’라고만 적혀 있었다. 상처가 왜 있는지는 감독님도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문광이 다시 돌아온 목저에만 충실하고자 한 것이다. 최대한 겸손하고 예의 바르게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는 것 같다.”

-기택 가족의 이름은 ‘기생충’에서 따왔다고 한다. 문광이란 이름의 뜻은.

“봉준호 감독님이 내게는 정보를 많이 주지 않았다. 여러가지로 해석하게 되는 것 같다. 문광이니까 미칠 광이라는 느낌도 있다. 캐릭터 자체가 약간 사이코같은 느낌이 나지 않나.”

-연교 역을 맡은 조여정과 호흡도 돋보였는데.

“조여정의 연기 열정이 보통이 아니다. 배우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모든 장면에 아주 부드럽게 스며든다. 그렇게 부드럽고 완벽한 매끄러운 연기는 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연교 역할의 장점이 조여정으로 인해 잘 발휘됐다. 날 해고하는 장면에서 정말 마음 아파했다. 그 마음이 느껴졌다. 동료배우로서 완전 동화같은 일이다.”

-기택가족과 몸싸움도 그렇고 크고작은 부상이 나올 법한 장면이 많았는데.

“다들 액션 욕심이 있었다. 화면 안에서 쟁탈전이 벌어져야 했다. 확실히 같이 어울려서 생활하다보니 유쾌하게 잘 찍었다. 오히려 액션신을 할 때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문광 역에 공감할 수 있었나.

“근세(박명훈)를 숨겨야하는 문광의 입장에서 애틋한 마음을 느꼈다. 가족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잘 살아보겠다고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 장대한 계획을 세워도 노동에 대한 부지런함이 없기 때문에 가난해지는 거라고 얘기하지 않나. 근데 그런 건 아니더라. 문광의 입장에서는 남편을 탓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기생하게 되는 삶에 애틋함을 느꼈다.”

-박명훈과 공연 무대에서부터 쭉 인연을 이어왔다. 이번에 부부로 만나보니 어땠나.

“감독님이 여러 명의 후보들을 보는 과정에서 좀 마른 형의 배우들을 찾은 것 같다. ‘재꽃’에서 박명훈의 연기를 너무 좋게 봤다고 했다. 나한테 ‘짧은 장동건’이라며 남편 정말 잘생겼다고 주입시켰다. (웃음) 워낙 누나 동생으로 친하다. 극중에서도 나이 차가 있는 커플로 나오지 않나. 영화에서 내가 죽어가면서 ‘안 보여’라고 말할 때 울었던 박명훈의 울음소리가 여전히 생각난다.”

-매 작품마다 자연스러운 연기로 호평받고 있다. 비결이 있다면.

“작품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어떤 경우는 과하게 연기해야 하고, 어떤 경우는 절제해야 한다. 그래서 늘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고민하게 된다. 고민을 반복하고 갈증을 느끼다 보면 뭐 하나는 건지게 된다. 경험해 보지 못하면 벽에 머리라도 박아야 하는데 그러면서 해결이 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선배가 ‘후배들에게 연기 못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라’라고 했다. 그동안 너무 잘했다고만 평가 받은 사람이 내려올 때 얼마나 힘들겠나.”

-‘미스터 션샤인’ 김태리부터 ‘눈이 부시게’ 한지민 등 후배들과 호흡이 좋다.

“내가 나이를 먹었고 그 사람보다 인생을 더 살았다고 해서 배우에 대한 존중을 버리면 안 된다. 누구나 선의를 품고 존중하면 좋은 장면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런 내 태도를 후배들도 ‘젊다’고 느낀 것 같다. 사실 내가 결혼을 안 했기 때문에 기혼자 캐릭터를 소화 못할까봐 고민을 많이 했다. 배우가 참 좋은 직업인 게 상상이 가능하다는 거다. 상상을 반복하다 보니 내 성격이나 태도도 진취적으로 바뀐 것 같다.”

사진=윌엔터테인먼트·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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