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발행어음 등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신용공여, 대기업 집중...당초 취지와 달라
단기금융사업자를 비롯한 대형 증권사들의 신용공여가 대기업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김동호 기자] "벤처·중소기업을 비롯한 혁신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을 확대하라."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 KB증권 등 단기금융사업(발행어음)을 영위하는 초대형 증권사에 특명이 내려졌다.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의 조건을 갖춘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게도 마찬가지 임무가 내려졌다.

금융감독당국은 이들 증권사들이 당초 사업허가 취지와는 달리 발행어음 등을 통해 조달한 자금의 사용을 대기업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개선토록 할 방침이다. 국회와 금융감독원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을 함께 하고 증권사들의 사업방향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1년만기 발행어음의 자금 특성상 금융당국의 요구에 다소 무리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발행어음 사업이 이제 시행초기인데다 벤처나 중소기업에 투자하기엔 1년이란 만기가 너무 짧다는 설명이다. 또한 일반 투자자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기 위해선 아직은 보수적인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기업 신용공여(대출) 규모는 10조원을 넘어선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중소기업보다 대기업 위주의 신용공여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7곳의 지난 2월 말 기준 신용공여 총액은 29조2000억원이다. 기업 신용공여액을 증권사별로 보면 메리츠종금증권이 3조10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미래에셋대우(1조5000억원), NH투자증권(1조4000억원), 한국투자증권(1조3000억원), KB증권(1조1000억원), 신한금융투자(1조원), 삼성증권(5000억원) 순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기업 신용공여액 중 프로젝트파이낸싱이나 인수금융 등 중소기업 기업금융, 중소기업 대출 등에 사용된 금액은 3조934억원(30.9%)에 불과했다. 반면 대기업 기업금융과 대출에 쓰인 자금은 무려 6조9087억원(69.1%)으로 조사됐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지난 달 말 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발행어음 업무 현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향후 업무방향 등에 대해 논의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게 발행어음 업무를 허용한 것은 벤처,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공급 확대 뿐 아니라, 기업금융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였다"며 "발행어음 업무 허용시 1년 미만의 만기를 가진 발행어음의 특성으로 인한 유동성 문제, 만기 불일치 문제 등 여러 이슈가 제기되었고, 금융당국은 이를 충분히 검토해 제도를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기업금융에 우선 사용되도록 유도하되, 만기 1년이라는 발행어음의 특성을 감안해 기업금융 의무비율을 70~80% 수준이 아닌 최소 50% 이상으로 설정했다. 또한 발행어음 업무의 안정적 도입을 위해 시행초기 단계에서는 기업금융 의무비율(50%)에 대한 경과규정도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자금 조달 및 운용상 자금의 만기 불일치 등 건전성 관리를 위해 유동성비율 규제와 자기자본의 200%까지만 발행 총량을 허용하는 등 가이드라인을 설정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자기자본 4조원 이상 등 충분한 손실흡수능력을 갖춘 금융투자업자에게만 발행어음 업무를 제한적으로 허용한 것도 발행어음 조달 자금의 특성을 감안한 것"이라며 "당초 기대보다 혁신기업에 대한 투자가 미흡한 측면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조건은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이다.

그는 다만 "발행어음 업무가 아직은 초기 단계라는 점을 감안할 때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기업금융 역량은 좀 더 시간을 두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며 "혁신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이 보다 확대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 필요성도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금융투자업계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발행어음 등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많아 안정적인 수익이 필수적인데, 중소기업이나 벤처 투자 등으로 손실을 볼 경우 이를 모두 증권사가 떠안아야하는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특히 투자에 따른 손실이 발생할 경우 해당 투자집행에 대한 책임론과 비난이 난무하는 것 역시 개선돼야 할 부분으로 지적된다.

실제로 지난 상반기 웅진그룹의 코웨이 인수자금을 지원했던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최근 웅진그룹이 코웨이 재매각에 나섬에 따라 당시 자금집행 근거 등을 두고 구설수에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투자증권이 웅진그룹에 인수자금을 지원할 당시에는 상당히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빌려줘 주변의 부러움을 샀는데 지금 웅진이 코웨이를 재매각하면서 상황이 변하자 일부에선 당시 결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면서 "대기업 자금지원도 이렇게 뒷말이 나오는 상황에서 벤처나 중소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자금 지원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자금집행에 대한 독립성과 프로세스가 확립되고 단기성과에 연연하는 투자문화가 개선돼야만 중소, 벤처기업이나 혁신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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