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양국간 분쟁에 피해는 한국만 확대... 장기화때 "중국만 이득 볼 것"
KIEP "WTO제소도 국가 책임협약 근거한 대응 펼쳐야" 주장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EUV 라인 전경/사진=삼성전자

[한스경제=김창권 기자] 한국경제연구원은 일본에서 가져오는 반도체 관련 소재·부품의 물량이 30%만 부족해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한일 경제갈등 이전을 기준으로 잡을때 2.2%정도 추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일본이 대(對) 한국 수출규제 강화 의지를 내비치면서 국내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력도 커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국내 산업계에서는 어떤 대응과 조치로 이번 위기를 해결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지난 4일 개시된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조치는 당초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3개 소재·부품 등에만 적용돼 반도체 업계로 국한돼 있었다. 8월 중 안보상 우방국인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할 것으로 알려져 파급력은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경우 화학약품, 전자부품, 공작기계, 차량용 전지, 탄소섬유 등 첨단소재, 통신기기 등 전략물자로 분류될 수 있는 다수 품목에 추가 수출규제가 이루어질 것으로 재계에서는 예상하고 있다. 때문에 일본 수출업체가 전략물자를 한국에 수출할 때마다 해당 건별로 일본정부의 승인이 필요하게 됐다. 국내 산업계는 이에 따른 피해 감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사업 발등에 불떨어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당장 국내 산업계에서는 일본의 소재 수출 제재에따라 반도체 분야에서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의 로드맵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를 벌리기 위해 화성캠퍼스에 신규 극자외선(EUV) 라인을 활용해 생산량을 증대하고, 국내 신규 라인 투자도 지속 추진할 계획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신규 EUV라인은 7나노(nm) 이하의 EUV 파운드리 공정에 일본산 포토레지스트가 필수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일본 정부는 7나노 EUV 공정에 적용되는 이 제품에 대해 수출을 규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EUV 공정 기반의 7nm 제품을 출하 계획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TSMC와의 본격적인 1위 추격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재료 수급 문제로 인해 삼성전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SK하이닉스 역시 EUV 공정을 활용한 10nm 미만 D램 양산을 위해 지난해 말 EUV 전용 공장인 M16이 착공에 들어간 만큼 소재 수급에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이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 가운데 하나인 에칭가스를 국산화로 대체하기 위해 품질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테스트 결과 국내 업체가 생산한 핵심 소재가 일본 제품과 상당한 품질 격차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는 국산 에칭가스를 채택하더라도 실제 적용까지는 최소 3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독보적 점유율로 기술을 축적해온 일본 업체를 당장에 대체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일본산 에칭가스는 순도가 높지만 국내산 제품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99.999%의 순도를 유지해야 하지만 국산기술은 일정한 순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일본의 수출 규제로 생산 자칠이 발생하게 되면 반도체 수출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익명의 한 경제연구원은 “이번 사태는 경제적 파급력이 큰 사안이지만 정치적 갈등이 껴 있는 만큼 일부 기업에서 경제적 영향에 대해 쉽게 논의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업들이 소재 비축량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당장에 생산 중단은 없는 만큼, 장기화되면 올해 경제 성장률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수출규제 장기화에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 몫

일본의 수출 규제 발표에 따라 무역관련 전문가 10명 중 9명은 일본 정부의 제재에 따라 한국기업 피해는 눈덩이처럼 확대될 것으로 우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일본 교역·투자 기업인, 증권사 애널리스트, 학계·연구계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한 이번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들 전문가는 일본의 대 한국 수출제재 조치가 장기화 될 경우 ‘한국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응답이 62%에 달했고, ‘일본이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응답은 12%에 그쳐 약 5배에 달하는 차이를 보였다.

일본의 수출제재에 대한 한국기업의 피해정도에 대해 전문가들은 ‘매우 높다(54%)’거나 ‘약간 높다(40%)’고 응답했다. 또 전문가들은 일본의 수출제재 조치에 대해 우리 정부의 가장 바람직한 대응방법으로 외교적 대화(48%)를 우선순위로 꼽았다. 이어서 부품·소재 국산화(30%), WTO 제소(10%), 2차 보복 대비(6%) 등의 순이었다.

엄치성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일본의 대 한국 수출제재가 장기화될 경우, 3개 소재 외에 다른 소재에서도 추가제재가 예상된다”며 “일본이 세계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 소재들이 많아 이번 제재가 장기화되기 전에 조속히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일 무역분쟁에 따른 양국의 GDP변화 /사진=한국경제연구원

한일 무역분쟁으로 반도체소재 부족시 국내 GDP 감소… 장기화시 중국만 이득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일 무역분쟁의 경제적 영향으로 국내 GDP감소가 2.2%까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조 연구원은 "일본 수출규제로 국내 반도체 기업이 소재(30% 감소시) 부족으로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한국의 GDP는 2.2% 감소하는 반면 일본의 GDP는 0.04%로 피해규모의 차이가 크게 발생하는 것"이라며 "일본 정부의 제재에 대해 한국이 수출규제로 대응한다면 한국과 일본은 각각 GDP 3.1%, 1.8% 감소로 손실이 확대된다"고 예측했다. 기업이 물량 확보에 실패해 부족분이 45%로 확대될 경우 한국의 GDP는 4.2%~5.4%로 손실은 더 커진다. 일본이나 한국이 각각 무역규제를 펼치게 된다면 결국 한국만 손해를 크게 볼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조 연구원 “한일 무역분쟁은 관세부과로 대립하는 일반적 무역전쟁과 달리 상대국 핵심 산업의 필수 중간재 수출을 통제해 공급망을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한국이 보복할 경우, 한국과 일본 모두 GDP 감소하는 '죄수의 딜레마'로 전개될 우려가 크다”고 강조했다.

관세전쟁은 국내 기업이 대응할 여지가 존재해 0.15%~0.22%의 GDP 손실에 그칠 것으로 평가되지만 생산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제재조치는 국내 전후방 산업효과 외에도 수출 경쟁국의 무역구조까지 변화시키므로 경제적 파급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

한일간 무역분쟁으로 인해 수혜을 받을 국가로는 중국이 꼽혔다. 미국은 미미한 수준에서 수혜를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 연구원은 “한·일 무역 분쟁으로 확대되면 최대 수혜국은 중국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미국의 GDP 증가는 미미한 수준(0.03%)이지만, 중국의 GDP는 0.5~0.7%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이 주도하던 전기·전자산업의 경우 한국의 생산이 20.6%, 일본의 생산이 15.5% 감소하는 반면 중국은 2.1% 증가하게 돼 독점적 지위가 중국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정부 WTO에 제소도 검토, 맞대응은 신중해야

상황이 이렇자 한국 정부는 직접적인 맞대응 보다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외교적 상황을 빌어 해결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는 23일부터 이틀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의사회에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가 정식 의제로 상정됐는데, 이는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한국 정부는 또 일본의 수출규제를 두고 WTO에 정식 제소도 검토하고 있다. WTO에 제소를 하면 한일 양국은 60일간 협의를 가지게 되고, 여기에서 해결이 안 되면 분쟁처리위원회를 거쳐 최종 판단을 기다려야 하지만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국제통상법에 근거해 보다 즉각적인 효력으로 일본을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했다. KIEP는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강화에 대한 국제통상법적 검토’ 보고서를 통해 ‘보다 즉각적인’ 효력을 가질 수 있는 상응조치로 우리 정부가 일반국제법상의 국가 책임협약에 근거한 대응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산 상품 또는 서비스의 시장접근 제한, 관세인상, 대일본 수출제한, 기술 규정과 표준 인증심사 강화 등을 취할 수 있다고 설명이다.

상응조치는 사전에 일본에 손해배상 청구를 통지하고 교섭을 제안해야 하지만, 필요한 경우 긴급 대응조치가 가능하다. 다만 이번 수출규제 강화로 인해 한국이 입은 피해에 비례하는 수준만큼만 대응조치가 가능하다.

이천기 KIEP 무역통상실 무역협정팀 부연구위원은 “WTO 체제 내에서는 불법이므로 일본이 한국을 WTO에 제소할 수 있고, 일본 측의 추가적인 보복조치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 반도체 부품 공장의 모습./사진=연합뉴스

 

김창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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