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11시 기준 멜론 실시간 차트. 발라드 곡들이 가득하다.

[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한여름. 이 맘 때면 해마다 차트에서는 듣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것 같은 청량한 사운드의 댄스 곡들이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리만치 차트가 차분하다.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tvN 주말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OST인 거미의 '기억해줘요 내 모든 날과 그때를'과 태연의 '그대라는 시', 헤이즈의 '내 맘을 볼 수 있나요' 외에도 6일 멜론 실시간 차트에는 장혜진-윤민수가 함께 부른 '술이 문제야', 송하예의 '니 소식', 벤의 '헤어져줘서 고마워', 황인욱의 '포장마차',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등 차트 상위권에 발라드 곡들이 가득하다. 한쪽에서는 "신선하다"고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차트가 너무 덥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신기한 현상. 이런 트렌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 '여름=아이돌' 공식 깨졌다

발라드 강세는 여러 음원 차트들에서 두루 비슷하게 나타났다. 지니의 경우 7월 월간차트에서 10위권 내에 무려 6곡의 발라드 곡이 랭크돼 있었다. 장혜진-윤민수의 '술이 문제야'가 차트에서 1위에 올랐고 벤의 '헤어져줘서 고마워'(2위), '송하예의 '니 소식'(4위),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7위), 김나영의 '솔직하게 말해서 나'(8위), 황인욱의 '포장마차'(9위)가 10위권 내에 자리했다. 청하의 '스내핑' 많이 유일하게 5위에 이름을 올리며 아이돌 댄스 곡의 자존심을 지켰다.

이 기간 동안 아이돌 스타들의 활동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귀를 기울이면', '오늘부터 우리는' 등 청량한 서머 송으로 사랑받았던 여자친구가 '열대야'로 컴백해 활동했고,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NCT드림이 '붐'을 발매했으며, '자체제작돌'로 이름을 알린 베리베리도 '태그 태그 태그'로 컴백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슈퍼 신인' 있지는 '아이씨'로 뮤직비디오 조회 수 자체 신기록을 경신하며 순항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막강한 파워가 차트에서는 비교적 덜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해 이맘 때 블랙핑크, 트와이스, 에이핑크 등 아이돌 스타들이 차트에서 경합을 벌였던 것과 사뭇 대비되는 풍경이다.

지난 해 7월 지니의 월간차트에서는 댄스 곡들을 다수 찾을 수 있다.

■ 대세는 SNS… 그런데 왜 발라드만 통할까

이 같은 발라드 강세에 대해 많은 관계자들은 '유행'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발라드 장르의 한 곡이 인기를 끌면서 자연히 그와 비슷한 음악을 찾고자 하는 리스너들의 욕구가 생겨나며 차트가 발라드로 채워졌다는 것. 한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지금 같은 차트 구성이 하루 아침에 일어난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듣기 편안하고 심플한 멜로디의 노래들이 SNS를 중심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이런 흐름이 차트에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면서 "그런 트렌드를 읽은 뮤지션과 기획사들이 비슷한 스타일의 노래들을 많이 발표했고, 그 결과가 현재 차트에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지난 달 지니의 월간차트. 발라드 곡들이 가득하다.

이 관계자의 설명처럼 SNS는 이제 음악을 소비하는 하나의 새로운 방식이다. 특히 스스로 동영상을 촬영하고 업로드하는 1인 크리에이터들이 늘면서 인기 있는 곡을 자신만의 버전으로 커버하고 공유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확산됐다. 퍼포먼스와 보컬을 모두 연습해야 하는 댄스 곡과 다르게 노래만 부르면 되는 발라드의 경우 커버 붐이 일어나기 쉽고, 때문에 똑같이 SNS에서 인기를 끌더라도 차트까지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SNS가 차트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광고, 청탁성 게시물들도 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인기 있는 SNS 페이지의 경우 게시물 하나를 올리는 데도 수십 만 원이 든다"면서 "싼 가격은 아니지만 인기 페이지에 글 하나 올리는 것만으로도 차트 순위나 화제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투자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문제는 이 같은 게시물들이 '광고'인 줄 모르는 소비자들이 대다수라는 점. 이 관계자는 "좋은 노래라고 해도 '광고'라는 말이 붙으면 뭔가 평가절하가 되는 듯한 느낌 아니냐. 그러니 굳이 광고라고 하지 않고 SNS에 노출을 시키는 편"이라면서 "이용자들 입장에서는 광고와 일반 게시물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진=멜론 실시간 차트 캡처, 지니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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