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영화 ‘봉오동 전투’는 원신연 감독에게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155억 원이 투입된 대작인 이 영화는 1920년 6월, 독립군이 일본의 대규모 정규군을 상대로 거둔 첫 승리를 다룬 작품이다. 익히 알려진 독립군이 아닌 무명 독립군의 이야기인데다 일본의 역사 훼손으로 인해 실제 고증이 담긴 자료는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환경 훼손 논란, 극한으로 치닫은 한일 관계 등이 겹쳐지며 몸살을 앓았다. 원 감독은 “아무리 신중하게 접근한다고 해도 예상할 수 없는 게 늘 있는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영화 속 황해철(유해진), 이장하(류준열), 마병구(조우진)는 가상의 주인공인데.

“실제 인물들을 베이스로 하긴 했다. 일본군들을 봉오동 골짜기까지 끌고 간 무명의 독립군들이 캐릭터에 전부 투영돼 있는 것이다. 황해철은 접경지를 넘나들며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을 대입시켰다. 류준열이 맡은 이장하는 분대장으로 돼 있지만 여러 분대장의 모습을 담았다. 마병구는 실제로 두만강을 건너서 자리잡은 촌민 중 일부가 마적인데, 그 모습을 투영했다.”

-역사를 바탕으로 했지만 역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아 힘들었을 법한데.

“봉오동 전투에 대한 고증이 많지 않다. 일제가 많이 훼손하기도 했고. 1945년까지는 우리 이야기가 거의 없다. 우리 이야기를 말살 시키는 게 일본의 정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간신히 남아있는 몇 사례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까지 찾아내서 조합했다. 왜곡을 피하기 위해 철저히 자료조사를 하자는 마음뿐이었다. 고증이나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왜곡까지는 아니더라도 만약 잘못된 사례가 있다면 밖으로 드러나길 바란다. 내가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 전투에 대해 더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유해진의 북한사투리가 참 자연스러웠다.

“유해진의 장점이 생명력인 것 같다. 그 생명력을 이번 영화에서 지켜봤다. 생명력은 바로 자유에서 온다. 애드리브를 할 때도 빛이 발한다. 사투리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마저 유해진을 보고 놀랐다. 아주 초인적인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봉오동 전투’를 하면서 대한민국에 있는 산은 다 가 본 것 같은데 유해진은 웬만한 데는 다 다녀온 곳이더라. (웃음)”

-류준열의 와이어 액션신은 원래 시나리오에 설정되지 않은 부분이라던데.

“원래는 와이어 액션을 찍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현장의 협곡을 보며 이장하의 모습을 좀 더 와일드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보통 배우들은 와이어가 등장하면 선입견을 갖는다. 그런데 류준열은 ‘우리는 와이어 안 해요?’라며 먼저 물어봤다. 그 신만 하루 종일 찍었다. 몸으로 받아들이는 게 대단한 친구다. 타고난 느낌이 있다. 잘 하는 데다 적극적이기까지 하다.”

-주요 캐릭터들의 사연을 어떻게 만들고자 했나.

“늘 주인공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든다. 이번 영화 같은 경우 현대의 장르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실로 기록돼 있는 역사적 시각을 근거로 하지 않나. 시대의 특징이나 시대정신 이런 부분들을 알지 못하면 한 발도 나갈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한 인물을 만들 때도 ‘눈이 어쩌면 그럴까. 무엇이 너를 그리 만들었니’에 대한 과거가 있어야 했다. 인물의 매력, 캐릭터의 특징보다 시대정신, ‘어떻게’보다 ‘왜’에 집중했다.”

-‘시대정신’이란 어떤 것일까.

“캐릭터마다 각각의 사연이 있다. 신파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선 사연에 집중을 해야 한다. 인물의 사연에 집중하고 그에 반응하는 상대 캐릭터를 보여줌으로써 상대와 관객이 느끼는 울림의 감정이 커진다. 이 ‘봉오동 전투’는 각 캐릭터들이 기구한 사연도 있고 내면의 상처가 있지만 사연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소년병이 외치는 ‘우리가 왜 싸우는지를 잊었어요’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대의를 향해 달려간다. 신파나 애국심 고취로 가지 말자고 생각했다. 신파적인 설정을 최대한 덜어냈다.”

-키타무라 카즈키, 이케우치 히로유키, 다이고 코타로 등 실제 일본배우 출연을 고집한 이유는.

“일본군 캐릭터는 일본배우들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시대를 이야기하는 영화에 일본배우들이 출연해야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너무 큰 메시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 영화를 하는데 있어서 일본군 캐릭터를 한국배우가 연기하는 건 생명성이 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독의 소신일 수도 있지만 일본배우가 일본군 캐릭터를 해야 그 자체로도 역사 왜곡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일본배우들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출연 의사를 밝혀 놀라기도 했다.”

-후속작인 ‘청산리 전투’도 계획 중인가.

“열망한다.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캐스팅 과정에서 한 배우가 물었다. 왜 이런 영화가 계속 만들어지는 것이냐고. 저들이 반성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계속 왜곡하고 반성하지 않으니까라고. 이런 측면에서 ‘청산리 전투’라는 영화를 열망한다. 그렇지만 이 현실들이 좀 더 나아졌으면 한다. 영화 한 편보다 그 시대를 사신 분들을 더 깊이 헤아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진=쇼박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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