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손현주는 오로지 연기력으로 대중에게 인정받은 배우다. 1991년 KBS 공채 탤런트 14기로 데뷔한 후 꽤 긴 무명시절을 보냈다. 그가 대중에게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은 고(故) 최진실과 함께 출연한 MBC 드라마 ‘장미빛 인생’(2005)이다. 배우로서 입지를 쌓기까지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손현주가 가장 꺼렸던 장르는 바로 사극이다. 데뷔 초 낙마 사고를 겪은 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극에 출연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광대들: 풍문조작단’을 통해 사극을 찍고 말에 올랐다. 극 중 한명회로 분한 손현주는 “‘광대들: 풍문조작단’으로 사극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며 웃었다.

-영화의 어떤 점에 매료돼 출연을 결정했나.

“과연 이게 가능할까 싶었다. 아무리 영화적인 상상력을 더한 팩션이지만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많은 배우들이 한명회를 연기했지만 광대들을 갖고 노는 한명회는 없었다. 굳이 역사공부를 하지 않아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수염, 뾰족한 귀 등 특수분장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기존 한명회보다 광이 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수염도 길게 붙이고, 귀도 특수분장으로 만들었다. 여기 있는 광대패들 중에 시간이 가장 많이 걸렸다. 조진웅을 비롯한 광대패들은 대부분 분장이 다 일찍 끝났다.”

-한명회를 연기하며 가장 고민한 점이 있다면.

“수많은 배우들이 한명회를 연기했는데 모습이 다 다를 것이다. 내가 맡은 한명회는 세조(박희순) 정권 말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진짜처럼 보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지금까지 굉장히 작은 사람들이 한명회를 연기했지만 막상 그림을 보면 한명회는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다. 역사적 사실과 함께 새로운 모습을 가미하려고 했다.”

-분노하거나 속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 거의 없었다. 톤 조절을 어떻게 했는가.

“세조 입장에서 보면 공신이라고 생각했다. 세조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눈물이 났다. 물론 단종을 폐위하고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를 도륙했다는 말이 있지만 세조가 본 한명회는 충신이었을 것이다. 영화 안에서만큼은 진정성을 가지려고 했다.”

-조진웅과 주고 받는 호흡이 영화의 볼거리이기도 하다. 현장에서는 어땠나.

“너무 오래된, 내 친구이자 동료다. 욕심 많고 자기 껀 확실히 책임지는 친구다. KBS2 주말극 ‘솔약국집 아들들’로 10년 전에 만났다. 그 때 조진웅이 드라마를 처음 찍었을 것이다. 나는 연극무대에서 나와 드라마를 많이 하고 있을 때다. 방송 시스템을 잘 몰라서 알려주기도 했다. 그 때부터 친해져 꾸준히 연락했다. 조진웅 그 자체만으로 기대감, 신뢰감을 느낀다.

-1991년 KBS 대하드라마 ‘삼국기’ 촬영 도중 말에 밟히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감독의 말에 상처 받았다고.

“‘쟤 치워’라는 말을 들었다. 몸도 아픈데 마음도 아팠다. 무명시절이었다. 기억을 애써 안 하고 싶지만 지금도 기억난다. 그 일로 당분간 사극에 출연하지 못했다. 그 이후 자연스럽게 사극 안 하는 배우로 인식됐더라. 이번 영화를 통해 사극 트라우마를 극복했다. 힘든 장면도 많았고 고통스러웠지만 재미있었다.”

-실제로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나.

“없다. 지금까지 30년을 총알처럼 달려왔다. 드라마 ‘첫사랑’을 찍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다. 권력을 갖게 되면 내 자세도 많이 달라질 것 같다. 그럼 연기를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직업 자체가 광대다. 이 얼마나 행복한가.”

-광대라는 직업이 행복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일단 구애를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 선택에 책임감이 더 생긴다. 자신이 맡은 것에 대한 것들은 책임 져야 하는 게 광대다. 광대는 시대를 대변하는 거울이라고 늘 얘기하지 않나. 가려운 모습을 긁어주고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광대다. 광대는 나와 똑같은 것 같다. 싫은 건 싫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게 광대 아닌가. 광대도 두려움 없이 산다.”

-어떤 작품에 주로 끌리는 편인가.

“처음 접한 소재나 사람들과 작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숨바꼭질’도 그렇다. 일단 ‘이런 내용이 있어?’라는 생각이 들면 책을 다시 보는 편이다. 읽어보고 딸에게도 권한다. ‘숨바꼭질’ 역시 딸이 재미있다고 해서 출연하게 됐다. 그 때는 어렸는데 벌써 대학생이 됐다. ‘아빠, 이거 너무 무섭다’며 출연하라고 하더라. (웃음)”

-무명 배우들 프로필을 들고 다니며 제작진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좋은 배우들을 소개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다. 서로 좋자고 하는 거다.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연극을 보려고 한다. 친한 배우들도 있고, 안 친한 배우들도 있지만 눈에 띄는 배우는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기본이 탄탄한 친구들이 연기를 하면 그만큼 작품이 잘 되기도 한다. 지금 촬영 중인 드라마 ‘저스티스’에도 그런 친구들이 꽤 있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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