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국가대표라는 '왕관'의 무게 느끼게 한 박항서의 분노
[기자의눈] 국가대표라는 '왕관'의 무게 느끼게 한 박항서의 분노
  • 박대웅 기자
  • 승인 2019.09.0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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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은 4일 예의 없는 태국 취재진의 행동에 이례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며 강하게 불만을 표시했다. /연합뉴스
박항서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은 4일 예의 없는 태국 취재진의 행동에 이례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며 강하게 불만을 표시했다. /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박대웅 기자] '모든 정치적 요소를 철저하게 배제한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내세운 타협 불가 절대원칙이다. 뒤집어 보면 축구만큼 정치적 요소 특히 내셔널리즘(국수주의)을 강하게 내포한 종목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일본에게만은 질 수 없다"는 한국을 보면 이해가 더 쉽다.
 
베트남도 예외는 아니다. '쌀딩크' 박항서(60)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이 대로(大怒)했다. 박항서 감독은 4일(이하 한국 시각)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5일 태국 방콕 북부에 위치한 랑싯의 타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태국과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및 2023 중국 아시안컵 예선 1차전을 하루 앞두고 언론 앞에 섰다. 잦은 전쟁 등 역사적 배경이 깔린 베트남과 태국은 우리의 한일전 못지 않게 뜨거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기자회견장에 등록된 태국 취재 인원은 600여 명에 달했고, 베트남에서도 50여 명 넘는 취재진이 원정을 갔다.
 
평소 온화한 성품으로 알려진 박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 중 자신의 말이 베트남어로 전달되는 순간 이례적으로 태국 축구협회 관계자를 불러 강한 어조로 항의했다. 그는 무례하게 기자회견장 뒤편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태국 취재진을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이들의 잡담은 스피커를 타고 전달되는 박 감독의 말이 묻힐 정도로 컸다.
 
박 감독은 화를 감추지 않았다. "예의를 안 지키면서 우리에게만 예의를 지키라고 하는가"라고 언성을 높인 뒤 "인터뷰 할 때에는 조용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듣기 싫으면 나가라고 해 달라"고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박 감독의 메시지는 태국 축구협회 관계자와 영어 통역을 통해 전달됐고, 태국 취재진은 그제서야 입을 다물었다.

 
표면적으로 일부 몰지각한 행동을 박 감독이 꾸중한 것이지만 베트남 현지 반응은 뜨겁다.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예의 없는 태국 언론을 꾸짖으며 베트남의 자존심을 지켰다고 평가한다는 게 현지 교민들의 설명이다. 

 
'가문의 영광'이라는 국가대표는 '왕관'에 버금가는 무게다. 국가대표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2017년 당시 레알 마드리드 감독을 맡고 있던 주제 무리뉴는 포르투갈 축구협회로부터 짧게라도 대표팀 감독을 맡아줄 것을 제안 받는다. 하지만 클럽과 계약이 돼 감독직을 수락할 수 없었다. 무리뉴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포르투갈 대표 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띄웠다.
 
"저는 포르투갈 국민입니다. 감독직을 제안 받았을 때 느낀 감정은 한마디로 자부심이었습니다. 국가대표로 뛰는 동안 권위를 드러내지 마십시오. 대가를 바라지도 마십시오. 대표팀 안에는 오로지 자부심과 긍정적인 태도만 존재해야 합니다. 모두 함께 승리를 따내야 합니다. 만일 패한다면 그마저도 영광스러운 일이 되도록 합시다."

 
과연 "듣기 싫으면 나가라"고 꾸짖은 박 감독의 분노가 베트남 대표팀을 하나로 묶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