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봉태규 / iMe KOREA(아이엠이코리아) 제공

[한국스포츠경제=신정원 기자] 내년에 마흔을 바라보는 봉태규(39)는 요즘 '존중'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지낸다. 최근 SBS '닥터탐정'을 통해 산업현장의 사회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UDC 수석연구원 허민기를 연기한 그는 현장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호흡하면서 존중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배웠다. 박진희를 통해 협업의 의미를 다시 되새겼으며, 막내 스태프부터 연차 높은 스태프가 모두 동등하게 존중받는 모습을 보며 '좋은 작업 현장'을 느꼈다. 실제 가정에서도 아내와 자녀를 가족 구성원이기 전에 한 개인으로 존중한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아내를 '하시시박 작가님'으로 부르며 애정을 드러냈다. 연기도, 내면도 이미 충분히 성숙한 봉태규는 앞으로 더 주변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점을 신경 썼나.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허민기에 대해선 '날라리' 설정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인 작가님이 생각한 날라리와 제가 생각한 날라리가 조금 달랐다. 아무래도 공부를 오래 하셨던 분이라, 날라리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있었다. 감독님과 얘기한 결과 의사로서 체면을 좀 없애려고 했다. 실제 접했던 일부 의사들의 권위적인 모습 등을 빼기로 했다. 그래서 산업재해를 당한 피해자, 재벌, 같은 직업의 사람을 만났을 때 다 똑같이 대했다. 그러면서도 감정에 몰입할 땐 최대한 노력했다. 예를 들어, 에탄올 때문에 눈이 먼 피해자를 봤을 때 감정을 최고로 터뜨렸다.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리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PD 출신인 감독님께서 '산업재해 현장 속 피해자들은 감정에 기승전결이 없다'고 조언해 더욱 감정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제작발표회 때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본인과 어울린다고 했는데.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는 의사와 다르다. 실제 산업재해가 발생한 곳에 가서 회사 대표와 작업 환경들을 살펴보며 취재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외과, 내과 의사였다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을 거다. 그런데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는 다른 환경에 놓여있는 의사라 선입견이 없어서 그런지 잘 맞더라. 오히려 상상력을 풍부하게 발휘해서 연기할 수 있었다. 특수한 상황에 놓인 의사라 다양한 사고가 열렸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제작발표회 때 '내 몸에 잘 맞는다'라고 말했다.(웃음)"
 

배우 봉태규 / iMe KOREA(아이엠이코리아) 제공

-SBS '리턴' 이후 1년 만에 복귀했지만 시청률이 아쉬웠다.
"사실 드라마 초반, 중반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중후반에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여타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요 인물이 사건을 이야기하고 해결하지만, 우리는 9~10부터 피해자 위주로 이야기가 그려졌다. 주요 캐릭터들은 피해자의 행적을 쫓는 장치로 머물렀다. '피해자 중심'의 익숙지 않은 구조가 그려지면서 상업적 재미와 멀어졌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작품은 의미 있게 남는 게 중요했다. 피해자들을 작품의 장치로 이용하지 않고 그들의 아픔을 얼마나,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진심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걸 출연자분들이 욕심내지 않고 동의해줘 보람됐다."
 
-'닥터탐정'이 의미 있는 작품인 또 다른 이유도 있나.
"촬영 현장이 너무 좋았다. 종영 크레딧을 보면 막내 스태프 순으로 이름이 올라간다. 모두가 동등하게 존경받고 일하고 있구나, 존중해주는 환경이 이런 거구나 느껴 기분이 남달랐다."
 
-박진희랑은 '리턴'에 이어 두 번째 인연이다. 호흡이 어땠나.
"'리턴' 땐 스쳐 지나가는 정도였다. 그래서 이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 더욱 기뻤다. 박진희라는 배우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배우다. 그런 분들이랑 함께 하면 긍정적인 게 한 눈을 팔 수가 없다. 상대가 워낙 열심히 하니까 내가 열심히 안 하는 게 티가 난다.(웃음) 6개월 동안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한 좋은 자극제였다. 또 박진희 씨는 여성이 1번 메인에 놓인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보여줘야 하는 가장 좋은 태도를 보여줬다.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항상 열려있는 자세로 대했고, 그들의 말을 먼저 듣고 난 다음에야 의견을 내고 그랬다. 모두의 연기를 조화롭게 만들면 더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데뷔한지 벌써 20주년이 됐다. 소감이 어떤가.
"약간 슬프다. '리턴'때까지만 해도 체력이 떨어지는 느낌은 없었는데, 이번엔 힘들었다. 그래서 끝나자마자 운동부터 끊었다.(웃음) 데뷔 20주년이라고 해서 특별히 느끼는 건 없지만 한 직업을 20년씩이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배우라는 게 선택을 받아야 되는 입장이고, 개인이 잘 하는 것보단 주변에서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중요한데,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개인적인 소회보다는 현장에서 더 성실하게 일하고, 주변분들한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 봉태규 / iMe KOREA(아이엠이코리아) 제공

-최근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도 얼굴을 비춘 적이 있다. 또다시 출연할 생각은 없나.
"사실 '슈돌'에서 하차한 이유는 시하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이다. 출연 당시 장모님 댁에 가면 많은 분들이 시하를 알아봤다. 그런데 시하가 내성적이다 보니 주변의 갑작스러운 관심을 힘들어했다. 그래서 그만뒀는데 요즘 다시 촬영이 하고 싶다고 한다. 드라마 촬영장에 왜 본인을 빼고 가느냐고 화를 낸다.(웃음) 작년 '슈돌' 촬영 때 삼촌들이 젤리, 장난감을 줬기 때문에 '촬영장은 좋은 곳'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슈돌'과 드라마 촬영장은 다르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현장에 데려갔는데도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더라.(웃음) '슈돌'을 재미있게 촬영했기 때문에 기존에 나온 콘셉트보다 새롭고 재미있는 예능이 있다면 출연하고 싶다. 예를 들면 하시시박 작가님과 단둘이 어딜 간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아내를 언급할 때 꼭 '하시시박 작가'라는 호칭을 쓰던데.
"아내라는 호칭을 쓰면 부부라는 틀 안에 갇힐까 봐 그렇다. 결혼했다 하더라도 한 개인이 먼저 존중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내라는 말은 '남편에 속한 여성'을 지칭하지 않나. 그게 잘 못 됐다는 건 아니지만, 하시시박 작가 개인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사석에서는 작가님의 이름을 부르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하시시박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게 존중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시하도 그렇다. '내 아들'이라고 표현하기 보다 '시하'라고 부른다."

신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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