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편집자] 영화에서 ‘프레임’은 한 장면, 한 장면의 사진을 말한다. 사진은 모든 상황을 보여주고 진실만을 알려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진의 같은 장면이라도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고 어디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따라서 똑같은 현상, 사건, 상황, 장면이라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180도 달라지게 된다.

영화 ‘커런트 워(전류전쟁)’는 1880년대 전기산업시장을 놓고 경쟁관계에 있던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가 직류와 교류방식으로 맞서며 치열한 대결을 벌였던 실화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에디슨의 인물 됨이다. 발명왕의 위인전기로 잘 알려진 천재 과학자 에디슨이 사실은 사업가적 면모를 지닌 쇼맨십의 천재였다는 관점이다. 에디슨이란 위대한 인물과 업적에 가려졌던 민낯을 보게 된다.

새로운 이미지 ‘프레임’이 에디슨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커런트 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 에디슨의 색다른 이면의 모습을 ‘프레이밍’한 영화다.

세간에서 ‘프레임’이라는 단어가 유행되고 있다. ‘프레임’은 어느 특정집단에서만 일어나는 이슈가 아니다. 우리사회 어느 분야에도 ‘프레임’에서 비켜나 있지 않다. 동물로만 여겼던 개에 대한 인식이 가족이란 ‘프레임’으로 바라보면서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우리아이’로 호칭이 변화하고 있다.

파생상품에 은행이란 ‘프레임’을 씌우면 ‘고위험’보다 ‘고수익’이 더 부각되는 게 불편한 진실이다. 사회적 편견과 특정 주장만으로 촉발된 ‘프레임’이 검색어를 놓고 편가르기를 하고 있다. 서있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지듯이 ‘프레임’은 사실의 싸움이 아니라 인식의 싸움이다.

일찍이 한비자가 “물이 그릇이 네모나면 물이 네모나게 되고, 그릇이 둥글면 물도 또한 원형이 된다(우방사방 우원수원, 盂方水方 盂圓水圓)”고 말한 것처럼 ‘프레임’은 무수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확증편향의 정보편식에서 벗어나 ‘프레임’ 밖 사실도 아우르는 ‘상자 밖 생각’이 필요한 이유다.

심리학에서 본 ‘프레임’은 구조와 틀의 ‘고정관념’이다.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프레임’을 통해서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에 불확실성이 늘어날수록 ‘프레임’을 통한 자기합리화도 늘어나게 된다. 세상사에 대해 ‘다름’을 ‘틀림’으로 생각하는 편견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게 된다. ‘프레임’이라는 이름아래 시작된 고정관념과 통념이 ‘공감부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진정한 명의(名醫)는 환자에게 내린 자신의 진단이 틀렸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고 한다. 이제 ‘프레임’이 세상과 대치하는 수단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는 ‘마음의 창’으로 진화되기를 바란다.

칼럼리스트=이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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