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재능기부의 산업적 진화'... 설해원 레전드 매치가 남긴 것
[현장에서] '재능기부의 산업적 진화'... 설해원 레전드 매치가 남긴 것
  • 양양=박종민 기자
  • 승인 2019.09.22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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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설해원 셀리턴 레전드 매치 포섬 경기에 나선 아니카 소렌스탐과 박성현. /세마스포츠마케팅
21일 설해원 셀리턴 레전드 매치 포섬 경기에 나선 아니카 소렌스탐(왼쪽)과 박성현.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한국스포츠경제=박종민 기자] ‘재능기부의 산업적 진화.’

21일과 22일 양일간 설해원 셀리턴 레전드 매치를 취재한 후 드는 짧은 생각이다.

강원도 양양 설해원에서 열린 대회 첫날 박세리(42) 도쿄 올림픽 여자골프 대표팀 감독, 아니카 소렌스탐(49ㆍ스웨덴), 줄리 잉스터(59ㆍ미국), 로레나 오초아(38ㆍ멕시코) 등 과거 세계 여자골프를 호령했던 전설들과 현역 최고의 선수들인 박성현(26), 렉시 톰슨(24ㆍ미국), 에리야 쭈타누깐(24ㆍ태국), 이민지(23ㆍ호주)가 2인 1조를 꾸려 샷 경쟁을 벌였다.

현장에서 만난 주최 측의 한 관계자는 “포섬(공 하나를 번갈아 가며 치는 방식) 경기가 열린 21일엔 판매한 티켓 2000여장이 다 팔렸다. 갤러리들 또한 모두 대회장을 찾았다”고 귀띔했다. 총 상금 1억 원이 매 홀 일정액씩 걸려 있는 스킨스 게임이 열린 둘째 날에도 대회장에는 1200여명이 운집했다. 스킨스 게임 우승자인 이민지는 800만 원을 자신의 이름으로 강원도 산불 피해 돕기 성금 기부를 하게 됐다. 주최 측은 이민지의 기부금을 포함해 1억 원을 강원도 산불 피해 이재민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사실상 재능기부의 진화된 형태다. 대회 티켓 정가는 12만 원으로 일반 대회에 비해 크게 비싼 편이다. 하지만 게임 방식을 변화 시켜 흥미를 높이고 선수들의 기부를 이끌어냈다는 게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박성현의 팬클럽 ‘남달라’ 회원 이상의 씨는 “박성현 프로님을 비롯해 세계 여자골프 전설들을 한 자리에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흥미 요소였다. 주최 측에선 1일 1회 도시락도 제공했다. 서울에서 먼 거리를 이동해 왔지만, 티켓 값이 아깝진 않았다”고 언급했다. 또 다른 회원인 황옥희 씨와 김경회 씨는 “첫째 날 밤 인근 솔비치 리조트에서 박성현 프로님과 팬들이 함께하는 생일 축하 파티 자리가 마련됐다. 바쁜 일정 탓에 30여분 간만 진행됐지만, 프로님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러 온 200여명의 팬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화끈한 팬 서비스를 보여주셨다”고 전했다.

박성현은 21일 포섬 게임에서 소렌스탐과 한 조를 이뤄 우승을 차지했다. 박성현은 “소렌스탐과 플레이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좋은 얘기들을 저한테 많이 해주셨다. 특히 소렌스탐이 자신은 몰리야드 단위로 거리를 조절할 수 있었다는 말을 했다. 그걸 듣고 ‘난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번 경험이 앞으로 골프를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생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성격인데 소렌스탐이 노래도 불러줬다. 26년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고 못 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소렌스탐 역시 “박성현의 멀리 나가는 드라이버 샷에 감탄했다”고 덕담을 건넸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전, 현직 스타들의 우정이 돈독해지고 팬들에게도 평생 잊혀지지 않을 추억거리가 선사된 대회였다. 현역 선수들은 자신들의 롤 모델과 함께 플레이하며 동기부여와 기량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주최 측은 팬들의 관심이 이어져 이미지 제고 등 홍보 효과를 누렸다.

갤러리들은 커다란 만족감을 나타냈다. 대회장을 방문한 또 다른 박성현 팬 카페의 한 회원은 “박성현 프로님을 비롯해 대회에 나선 전설적인 선수들이 샷을 할 때, 어느 대회보다 조심스럽게 응원을 했다. 선수들은 물론 뜻 깊은 대회의 운영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봐 반드시 샷을 한 후 응원을 펼쳤다”고 말했다. 성숙한 갤러리 의식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했으며 스타 선수들의 기부를 통해 재난 지역에 대한 관심도 유도했다.

박성현은 “매년 기부를 해오고 있지만, 이번엔 8명의 선수가 뜻을 모아서 강원도 산불 지역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그래서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선수와 주최 측, 갤러리, 지역 사회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대회 모델이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