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편집자] 올해 추석은 폭염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찾아왔다. 이른 추석에 가을장마와 태풍까지 겹치면서 햇곡식과 햇과일을 수확하는 풍요로움이 부족해 아쉬움이 컸다. 나라 안팎의 어수선하고 뒤숭숭한 세상사 탓에 여유로운 명절 분위기를 누리는 것이 어쩌면 사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짧은 추석 연휴기간 때문에 넉넉함 보다 왠지 부족함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따듯하게 덕담을 주고받는 정감과 환한 보름달 아래서 만끽하는 명절의 풍경만은 올 추석도 여느 때처럼 변함이 없었다.

못내 넉넉함의 여유가 아쉬웠던 추석이 남긴 소회에 불현듯 경제를 둘러싼 짙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경제를 설명하는 많은 수치들이 ‘마이너스’ 영역에서 움직이고 있다. 경제흐름과 전망을 상징하는 금리가 미국을 제외한 주요 선진국들에서 ‘마이너스(Negative)’로 확산되는 추세다. 사실 ‘마이너스 금리’는 일반인과는 거리 먼 새로운 경험이다. 물가인상률과 세금을 차감한 실질금리가 아닌 명목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는 환경은 분명히 낯설다.

‘마이너스 금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국가에서 자국의 경기를 살리기 위해 도입한 글로벌 저성장이 낳은 기현상이다. 은행과 고객간의 예금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지준예치금에 대해 보관수수료를 물림으로써 적극적인 대출을 유도하는 정책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이너스 금리’ 영역이 확장되어 전세계 투자등급 국채의 34%수준이 ‘마이너스 금리’로 거래되고 있다. 지난주 이웃나라 일본도 단기 정책금리를 마이너스0.1%로 결정하면서, 개인예금에 대해 계좌관리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 할 가능성이 높아 지고 있다.

지금까지 ‘마이너스 금리’는 경기둔화와 디플레이션의 경기순환적 요인으로 촉발됐다. 그런데 앞으로 구조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마이너스 금리’ 결정에 수명연장과 기술혁신의 보다 구조적 요인이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개인은 미래지출을 위해 저축하면서 현재지출을 희생하는데 따른 대가를 ‘시간선호’라 하여 금리로 보상받게 된다.

하지만 수명이 길어지게 되면 현재의 돈보다 미래의 돈을 더 선호하는 ‘역(逆)시간 선호’가 발생한다. 한편 기업의 기술혁신은 자본을 덜 쓰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투자 감소로 저축 수요가 줄어들게 된다. 고령화의 인구구조와 기술혁명으로 ‘마이너스 금리’가 기조화될 개연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마이너스 금리’가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지만, “돈을 맡기면 이자가 붙는다”는 상식이 깨지는 세상이다. 금리의 경제적 역할이야 실상은 명분이 아니라 해법이다. 흑묘, 백묘를 가리지 말고 경제활력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경제에도 ‘마이너스 금리’ 등장이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듯 하다.

칼럼리스트=이치한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