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정진영 기자] 화려한 댄스와 보컬 실력을 자랑하던 댄스 가수에서 'OST의 퀸'으로, 또 한 가정을 꾸린 아내이자 엄마로. 지난 20여 년 간 백지영은 가수로서, 또 인간으로서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아 신보 '레미니상스'(추억담)를 발매한 그는 이런 변화의 과정을 통해 한층 단단하게 다져진 내면과 실력을 한 곡, 한 곡에 담아 풀어냈다. 특히 한층 힘을 뺀 덤덤한 전개가 눈길을 끄는 신곡 '우리가'는 백지영의 과거가 아닌 미래를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고, 또 마음 먹었던 것보다 한층 더 기쁘기도 했던 지난 시간들을 통해 백지영은 음악에서도 삶에서도 힘을 빼는 법을 배웠고, 이를 통해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20주년이 되는 해에 신보가 나왔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나.

"'레미니상스'는 20주년 기념 앨범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앨범이다. 활동은 '새벽 가로수길' 이후로 3년 반 정도 만이다. 햇수로는 4년 만이다. 작년 중반기부터 곡을 받았고, 이후로는 녹음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20주년 기념 음반이다 보니 정규를 기대한 팬들도 있을텐데.

"물론 나도 정규를 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정규앨범을 만들기에 1년이라는 시간은 좀 짧더라. 사실 나는 20주년에 크게 무게를 싣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내년이 20주년이네' 하며 19주년 때 더 긴장되고 설렜던 것 같다. 그런데 팬 분들이 좋은 의미를 부여해주셔서, 그 분들께 좋은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앨범 작업을 했다. 녹음을 열심히 했으니 좋게 들어 주셨으면 한다."

-20주년 앨범인데 스스로 칭찬하거나 자축하는 듯한 트랙이 없다.

"세상에. 그런 생각은 전혀 못 했다. (웃음) 그렇구나. 자축을 할 수 있었겠네…"

-타이틀 곡 '우리가'에 대해 설명해 달라. 개인적으로 이전보다 담백해진 느낌이다.

"내가 가진 음색 자체가 마이너적인 느낌이 있다. 그래서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다른 분들보다 편안하고 수월하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녹음을 할 때 디렉팅 하는 분들은 내게 감정을 많이 빼 달라고 요구한다. 원래 가진 음색이 있는데 거기에 감정까지 실으면 너무 처절해지고 듣기에 부담스러워진다는 거다. 이번 '우리가' 녹음을 할 때는 심지어 '밝게 불러 달라'는 요구까지 받았다. 그래서 소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그런 느낌으로 표현을 해 봤는데, 막상 들어 보니 정말 따뜻하더라. 처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 좋다."

-뮤직비디오에 지성이 출연했는데.

"개인적으로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배우가 나와 나이 차가 크지 않길 바랐다. '백지영의 감성'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배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클로즈업 했을 때 아름다운 남자였으면 좋겠고, 오열이라고 하면 조금 오버인 것 같은데 아무튼 진한 눈물 연기가 가능한 배우였으면 했다. 그 때 지성이 떠올랐다. 지성 배우가 오케이를 해 줘서 출연까지 이어졌다."

-뮤직비디오 결과물에 만족하나.

"내가 연기를 잘 모르지만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저렇게 눈물을 흘리려면 얼마나 몰입을 해야 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 현실 상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앞뒤 맥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사가 있는 것도 아니잖나. 그냥 내 노래만 듣고 몰입을 해서 연기를 해 주시니 신기하고 마음에 들 수밖에 없다. 잘 보면 지성의 눈이 다 부어 있다. 얼마나 몰입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는지가 눈에 보이니까 소름 돋더라."

-최근 '온라인 탑골공원'이라고 옛날 음악 방송을 틀어주는 온라인 방송이 인기다. 데뷔 때 무대도 나오던데 혹시 봤나.

"물론 봤다. 나보고 '탑골 청하'라고 하시는 것도 알고 있다. 정말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그런 옛것들이 재조명되는 게 데뷔가 20년 전인 나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오그라들면서도 되게 재미있고 유쾌하더라."

-데뷔 시절을 떠올려 본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힘 밖에 없는 그런 무대를 했다. 그래서 아마 내게 파워풀하다는 말들을 해주셨나 보다. 그만큼 내게 열정과 체력도 있었고. 옛날이어서 그런지 좋아 보이고 유쾌하다. 지금은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을 거다. 벌써 그런 때가 됐다."

-'새드 살사' 같은 라틴풍 음악을 당시에 했다. 최근 라틴 음악이 유행인데 다시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 없나.

"엄청 있다. 그래서 레퍼런스도 작곡가 분들에게 많이 드리고 했는데, 가장 큰 문제가 가사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곡이 아니고 내가 레퍼런스를 드리고 '맞춰 써 주세요' 하면 배가 산으로 가는 느낌이 있더라. 그래서 메이드가 안 됐다. 라틴 쪽 정서가 내게 굉장히 잘 맞는 것 같다. 예전처럼 파워풀한 스타일의 음악은 안되겠지만 라틴 음악도 다양하게 변주가 가능하지 않나. 또 개인적으로 관절이 더 녹슬기 전에 댄스 넘버를 좀 해 보고 싶기도 하다."

-지난 20년을 돌아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때를 꼽자면.

"일부러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일부러 떠올리지 않으면 그런 순간을 꼽는 게 사실 쉽지가 않더라. 그냥 지금 떠오른 때는 역시 데뷔 때다. 그리고 '사랑 안 해'를 발표했을 때도 생각나고, 이상하게 '내 귀에 캔디' 했을 때 생각도 난다. 데뷔 초에는 기계처럼 일을 했던 것 같다. 생각할 여유가 없이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했다. 그러다 '사랑 안 해'를 했을 때는 일련의 시간들을 거치면서 내 안에 뭔가가 쌓였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 뒤에 '내 귀에 캔디'와 '총 맞은 것처럼'을 할 때가 되니 그제야 조금 무대가 뭔지 알게 됐고 내가 무대에서 하고 싶은 것도 생각하게 됐다. 앞으로도 많이 발전하고 성장하고 싶지만 너무 집착하거나 조금해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엄마가 됐다. 음악을 대하는 자세에도 변화가 생겼을까.

"인생에서 너무 큰 부분이 변했기 때문에 변화가 없다면 거짓말일 거다. 그런데 나는 노래를 할 때 내 감정을 끌어다 쓰는 보컬리스트는 아니다. 그 곡에서 감정을 끄집어내는 식으로 표현을 한다. 그래서 임하는 태도가 바뀔 수는 있겠지만 곡을 표현하는 보컬리스트로서는 바뀐 게 없다."

-앞으로 활동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연말에 투어를 진행할 계획이다. 타이트하게 투어가 결정된 것에 비해서는 공연이 잘 준비되고 있는 것 같다. 내년 이후로는 일단 여성 보컬리스트와 컬래버레이션을 한 곡을 낼 것 같다. 생각해 둔 선배는 있는데 아직 확정된 게 없어서 말씀드리기 어렵다. 의논하고 있다. 전국투어는 내년 3월 정도에 끝날 것 같고, 그 이후에 캐나다와 미주 지역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그 다음에 싱글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사진=트라이어스 제공

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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