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양지원 기자] 주로 강하고 센 캐릭터를 연기했던 배우 엄태구가 새로운 옷을 입었다. 영화 ‘판소리 복서’에서 미완의 꿈을 완성하기 위해 뛰어든 전직 프로복서 병구 역을 맡아 어수룩한 모습을 연기했다. 더벅머리에 어설픈 발걸음, 어눌한 말투로 기존의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줬다. 실제로도 말수가 적은 엄태구는 “병구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판소리 복서’에 꼭 출연했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단편영화 ‘뎀프시롤: 참회록’을 너무 재미있게 봤다. 감독님이 천재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영화가 장편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니 출연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대본이 내게 온다는 것 자체가 기뻤다. 물론 대본을 보고 내가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런 부담을 느낀 병구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나.

“방법은 두 가지였다. 일단은 복싱선수다 보니 자세가 중요했다. 가짜처럼 연기하면 관객들이 이입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2~3개월 동안 그런 자세를 한다는 게 불가능하지만 코치님과 함께 몸이 할 수 있을만큼 최선을 다했다. 목표를 높게 잡고 열심히 했다. 또 병구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다르다. 과거의 병구, 이후 10년 동안 방에만 있고 위축된 병구를 표현하고 싶었다. 위축된 병구를 연기하면서 답답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중간 과정에 훈련 신도 있고 이혜리가 등장하면서 내 답답한 면을 완화시켜준 것 같다.”

-판소리에 몸을 맞춰 복싱을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몸을 따로 써 본 적은 없고 마임을 배운 게 도움이 됐다. 배웠다고 말하긴 민망할 정도로 어릴 때 짧게 배웠었다. 판소리 복싱은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특히 마지막 4라운드 장면에 공을 들였다. 가락에 몸을 맡기면서 내버려뒀다.”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을 듯한데.

“정말 죽을 뻔했다. (웃음) 아무래도 영화에 롱테이크 신이 많다 보니 힘들었다. 전력질주도 정말 몇 년 만에 해봤다. 마지막 4라운드 장면은 한 테이크만 가도 실신할 정도였다. 체력적으로는 참 힘들었지만 화면으로 보니 뿌듯했다.”

-이번에 첫 호흡을 맞춘 이혜리와 호흡은 어땠나.

“정말 최고다. 참 밝다. 분위기 메이커다. 영화에서 병구가 민지(이혜리) 덕분에 웃고 밝아지지 않나. 나 역시 그랬다. 극 중 혜리와 로맨스가 보기 좋았던 분들이 있다면 이는 다 혜리의 에너지 덕이다. 타고난 친화력의 소유자다.”

-현대 문명의 개발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착이 담긴 영화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가장 생각나는 대사가 ‘저도 사라지고 잊혀지겠죠’이다. 사라진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지만 부모님도 나이 들어가시고, 키우던 강아지도 하늘나라를 갔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영화 역시 그런 주제를 담고 있는 것 같아서 매력적이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살면서 꼭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나.

“악역은 현실에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것 같다. 아직도 더 좋은 악역을 해보고 싶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 같은 연기를 하고 싶다.”

-송강호가 아끼는 후배로도 유명하다. ‘택시운전사’(2017) 출연 역시 송강호로 인해 이뤄지지 않았나. 어떻게 마음을 얻게 됐다고 생각하나.

“정말 아버지 같은 분이다. 송강호 선배 덕에 영화 현장에 잘 적응하게 됐다. 평소에 술을 못 마시는데 이렇게까지 현장에서 챙겨주신 분은 처음이었다. 너무 든든하고 기둥 같은 선배다.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분이 이렇게 챙겨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다. 이 일을 하며 자신감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마음을 어떻게 얻었냐고? 그저 선배 말을 열심히 들었을 뿐이다.”

-연기를 할 때 하고자 하는 방향성이 있나.

“캐릭터를 볼 때 이 사람은 착하다, 이 사람은 악하다라는 생각은 배제하려고 한다. 또 웃긴 장면이 있어도 웃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생각을 덜어내는 작업의 연속이 연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이 기계가 아니다보니 마음 먹은 데로 되지는 않지만 욕심을 부리면 망하는 것 같다. (웃음) 최대한 욕심을 안 부리려고 한다. 그 욕심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양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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