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인조, 반정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항복한 조선 16대 왕
인조. 22일 '인조'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위키백과

[한국스포츠경제=조성진 기자] 22일 '인조'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선 16대 왕 인조는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과 좌찬성 구사맹의 딸 사이의 맏아들로 1595년 11월 7일에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인조가 해주에서 출생한 것은 왜구의 침입으로 왕족들이 해주에 피신 중이었기 때문이다.인조의 조부인 선조는 14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늙어서 얻은 영창대군 외에는 모두 후궁의 소생이었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후 인조의 친부인 정원군은 광해군의 견제를 상당히 받았다.

후궁 인빈 김씨의 소생인 정원군은 4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자식으로는 인조 외에도 능원대군 보, 능창대군 전, 능풍군 명이 있었다. 아들 덕분에 죽어서 왕으로까지 추존된 정원군은 생전에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 아들인 능창군이 모반죄로 모함을 받아 17세의 나이로 죽임을 당하자, 그 뒤로 몸과 맘이 상하여 40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죽음은 후일 인조가 반정을 일으키는 배경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광해군은 당론의 폐해를 통감하고, 이를 초월하여 좋은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당시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실리를 취하는 중립외교 정책을 폈다. 그러나 이이첨, 정인홍 등 대북파의 무고로 친형 임해군을 사사했으며, 1613년(광해군 5년) 계축옥사가 일어나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왕후를 폐비시켜 서궁에 유폐하였다. 이와 같은 광해군의 패륜 행위를 명분삼아 서인 김류, 김자점, 이귀, 이괄, 심기원 등을 중심으로 반정을 일으켰다.

1636년 12월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었는데 청나라는 조선을 완전히 박살내고 복속시키기 위해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와 조정은 전쟁 수행 여부를 놓고 김상헌·정온을 중심으로 한 척화파와 최명길 등의 주화파 간의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으나, 주화파의 뜻에 따라 항복을 결정하고 삼배구고두례의 치욕을 경험했다.

조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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