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편집자] 21세기 들어 ‘공유경제’가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경제흐름의 핵심에 서있다. 한 제품을 여럿이 공유해 쓰는 경제활동방식이 산업전반에 걸쳐 확산되는 추세다. 

‘공유경제’와 함께 소유를 뜻하는 Ownership보다 사용권을 의미하는 Usership이라는 말이 뜨고 있다. 소유를 넘어 그 가치를 공유하는 접속의 시대가 되었다. ‘공유경제’는 비싼 소유 대신에 관리할 필요 없이 언제나 사용할 수 있고 가격도 싼 공유가 더욱 편리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호텔보다 경제적인 ‘에어비앤비’나 택시보다 싼 ‘우버’와 ‘그랩’ 그리고 ‘클라우드키친’, ‘태스크래빗’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는 ‘공유경제’를 표방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등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다. 

실상 ‘공유경제’라는 표현은 긍정적인 틀을 규정하고 있지만, ‘공유’라는 단어에서 익숙한 경제학 용어 ‘공유지의 비극’이 떠오른다. 미국 생물학자 ‘가렛 하딘’이 제시한 개념이다. 무책임한 이기주의를 비판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역설할 때에 자주 인용된다. 

중세시대 유럽의 한 마을을 상상해 보자. 이 마을에서 농부들의 가장 중요한 경제활동은 양을 키워 양털을 파는 일이다. 양들은 마을 주민들이 공동 소유하는 주변의 초원에서 풀을 뜯어 먹으면서 자란다. 처음엔 양들이 풀을 먹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만족스러워 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을의 인구가 증가하고 양의 숫자도 계속 증가하여 결국 초원은 황무지가 되고 말았다. 마을은 결국 황폐화된 방목장으로 생활기반을 상실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공유지의 비극’은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초지를 분할 소유하고 각자의 초지에 울타리를 치는 이른바 ‘인클로저 운동’이였다. 오늘날 등장한 ‘공유경제’는 인간성의 선한 측면만을 상기시키며 부정적인 측면에는 이목이 쏠리지 않도록 해준다. 

하지만 공유의 가치가 아무리 매력적이라 하더라도 확산에는 한계가 뒤따른다. 공유가 모두에게 이롭고 착한 경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공유로 대체되는 기존산업의 위축과 노동기회 상실이 그림자로 드리우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이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본능을 간과할 수 없다. 소유욕망이야말로 경제행위의 동인이다. 

더구나 인간에게는 어떤 대상을 소유하게 되면 그 대상을 객관적 가치보다 높게 평가하려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한다. 물건이건 사회적 지위이건 일단 자신이 소유하고 나면 그것을 갖고 있기 전보다 높게 평가하려는 ‘소유효과’가 작용해서다. 

공유는 공간과 시간의 사용가치를 높이는 생태환경일 뿐이다. 핵심은 삶의 풍요와 여유를 통해 창출하는 소비가치다. 소유와 공유는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경쟁과 상생의 관계로 존재해야 한다.

칼럼리스트=이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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